사울 레이터는 1952년 뉴욕 이스트 빌리지 10번가에 아파트를 얻어 201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곳에 머물며 거리 풍경과 오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많은 필름에 담았지만, 그는 평생 찍은 사진 중 극히 일부만을 현상했다. 레이터는 "세상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자신의 집과 스튜디오에 공개하지 않은 수천 장의 컬러 사진과 흑백 사진, 수만 장의 슬라이드와 음화, 수백 장의 회화 작품을 남겼다. 작가의 사후 설립된 사울 레이터 재단은 8만 점이 넘는 이 작품들을 전면적으로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발굴한 보석 같은 작품들을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 수록했다.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는 레이터가 자기 스타일을 발견해나가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작품까지 엄선된 사진들이 담겨 있다.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뜨린 대담한 구도, 거울과 유리에 비친 이미지, 그 모든 것의 바탕에 있는 유머 감각 등 레이터 고유의 접근법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은 내밀한 자화상과 가족사진, 처음 공개하는 미발표 컬러 슬라이드, 레이터의 삶과 예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두 여성, 데버라와 솜스에 관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어 더욱 특별하다. 가족과 연인을 비롯해 여러 지인의 모습을 찍은 명함 크기의 작은 조각 사진(스니펫)까지 수록했다.
"누군가는 나를 성공한 포토그래퍼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충분한 일이었고 행복했다." 사울 레이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본인의 삶도 예술도 내세우려 하지 않았고, 심오한 설명으로 작품을 포장하지도 않았다. 레이터는 언제나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의 시선은 세상 반대편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과 주변으로 향했으며, 찰나에 담긴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포착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사진에 그대로 스며들어 시간의 흐름에도 바래지 않는 독창적인 감성을 만들어낸다. 사진가가 사진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이라고 레이터는 말한 바 있다.
눈 내리는 풍경, 우산 쓴 여자, 고가 철도, 신호등의 빨간 불빛 등 우리 주변에 언제나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들, 너무 평범하여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일상을 다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그의 사진들은 마치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다른 어딘가가 아닌 바로 이곳에 아름다움이 있다.'
레이터는 무언가 자신의 시선을 사로잡더라도 대상에 접근하는 대신 거리를 둔 채 관찰하는 편을 좋아했다. 흔들린 초점으로 포착한 피사체, 빛과 그림자가 집어삼킨 전경, 멀리서 응시하는 그의 사진에는 마치 영원히 봉인된 비밀이 숨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레이터의 사진앞에서 우리는 오래오래 머물게 된다. 이것이 그가 사진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유이며, 한국,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국경과 세대를 초월하여 큰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