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일』에 담긴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세상을 떠난 예술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만, 동시에 이 평가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조성준 작가는 필립 로스의 책 『아버지의 유산』을 읽던 중에 그의 부고 소식을 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병든 아버지를 관찰, 기록하며 죽음에 골몰했던 아들도 결국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접한 작가는 한 인간이, 한 세계가 소멸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작가는 필립 로스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의 사연이 궁금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어떤 일을, 어떠한 마음으로 하였을까? 이렇듯 『예술가의 일』은 우리에게 예술가의 대표 작품만이 아니라, 일생을 바쳐 한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의 삶부터 먼저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예술가의 일』에는 오늘날 '전설'이라 불리는 예술가 33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내의 첫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부터 거리의 어둠을 수집한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일본 에도시대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글램록의 대표주자 데이비드 보위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시대, 국적을 넘나들며 강렬한 에너지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들의 삶을 면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조성준 작가가 들려주는 예술가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마치 부활한 듯 어느새 다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마르크 샤갈의 [도시 위에서], 프리다 칼로의 [엘뢰서 박사에게 보내는 자화상]. 이 작품들은 모두 예술가의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유명한 대표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이 왜 유명해졌는지, 어쩌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작품이 되었는지에 대한 답은 쉬이 내리기 어렵다. 여기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선 예술가의 '삶'과 '일'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예술가의 일』은 한 예술가의 세계가 탄생하는 시점부터 그들의 인생사는 물론, 당시의 문화·정치·사회적 흐름까지 담아낸 책이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가 서양의 일본풍 찬양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뭉크는 어떠한 상태에서 [절규]처럼 강렬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나?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안에는 당시 칼로가 느꼈던 아픔이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을까? 샤갈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는 사랑과 희망의 색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그 밖에도 화성에서 온 외계인 록스타로 불리던 데이비드 보위, 1200억짜리 낙서의 주인공인 그래피티 아트의 개척자 바스키아,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피카소도 경계했으며 "아무도 그보다 멀리 갈 수 없다"고 사르트르가 평했던 조각가 자코메티 등, 『예술가의 일』은 예술가와 그의 작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작품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한 예술가의 예술 세계를 총체적으로 그리는 데 도움을 준다.
『예술가의 일』은 시대와 장소, 그리고 장르에 따라 예술가를 분리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어떤 태도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여섯 개의 챕터로 분류했다.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어 다른 세상을 꿈꿨던 예술가들, 세상의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밀고 나간 예술가들, 세간의 편견을 자신의 예술로써 맞선 예술가들, 고독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오로지 예술만을 위한 최대한의 삶을 살다가 간 예술가들. 우리는 이런 예술가들로부터 치열한 예술 정신을, 더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운다.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는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앞에서 사진기를 들었고,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넌은 반전反戰을 외치는 혁명가가 되었다. 『예술가의 일』을 통해 예술가들의 삶 자체가 곧 예술이 되어 우리에게 위대한 유산으로 남았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