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불친절'한 작품 ··· 그리고 남는 의문들
필자 주변에 지인 중 이 작품을 미리 관람한 분들은 호불호가 있었다. 특히 불호가 많았다. 그 이유는 작품 자체가 '모호하다'라는 것이었다. 필자 또한 공연을 보고 나온 뒤 극장을 나오는 관객에게서 느껴지는 반응은 '물음표'였다. 관객들은 거의 대부분 해결되지 않은 물음표가 생긴 채로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것 같았다. 필자 또한 공연을 보고 이 공연을 도대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리뷰 글을 작성해야 할지 길게 고민한 끝에 한 자, 한 자 느낀 점들을 남긴다.
우선, 가장 먼저 작품의 이야기 구조와 흐름이 관객에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말그대로 '전형적'이지 않았다. 이것이 한국 관객에게 이 작품이 호불호가 나뉘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치밀한 이야기의 구조에 맞춰 설계된 흐름을 관객이 잘 따라오도록 설명하는 여타의 다른 익숙한 이야기 구조가 아니다. 작품 속 일부 대사는 마치 심연에 잠겨 잠꼬대를 늘어놓는 듯한 대사도 있고, 대사로 듣기보다는 글로 읽어야 그나마 이해가 될 것만 같은 복잡한 비유가 섞인 대사도 있다. 벌어지는 사건들 또한 마찬가지다. 다소 '뜬금없다'. 앞과 뒤의 사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익숙한 드라마를 가지지 않았다. 이야기는 마치 의식의 흐름(?)처럼 유머러스했다가, 광기가 흘렀다가, 공포스럽다가, 재앙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에 박본 연출가는 모 인터뷰에서 K 팝뿐만 아니라 K 드라마의 특징도 빌려왔다고 밝혔다. 그가 발견한 K 드라마의 특징은 '여러 장르의 혼합'이라고 한다.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복수를 하고, 공포스럽다가 액션이었다가 다시 로맨틱으로 돌아오는 장르의 혼합이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즉 의도된 것이라는 거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야기를 나누는 커다란 줄기인 각 장의 구분은 K 드라마의 형식을 채택했다고 치자. '장르의 혼합'이라는 K 드라마의 특징도 빌려왔다고 치자.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관객의 시선에 기초해서, 그 의도를 알아챈 관객은 얼마나 될까? 관객이 못 알아채는 것 또한 의도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를 통해 박본 연출가는 관객에게 무슨 의도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박본 연출가가 K 팝과 K 드라마를 관람하며 느꼈던 생경함, 즉, 서양의 문화와는 다른 것에서부터 오는 낯설음을 관객 또한 느끼게끔 의도한 것일까?
그 의도가 무엇이 됐건, 관객에게 그 방법이 통했을지는 의문이다. 작품 속의 많은 디테일들을 (심지어 디테일적인 부분이 아니라 표면적인 부분일지라도) 숨겼을지언정, 관객들은 납득이 되지 않고 극은 계속해서 흘러가니, 관객들은 서서히 집중력을 잃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볼 테면 봐라, 연극은 흘러간다'고 얘기하는 '불친절'한 연극이었다. 이러한 불친절함 또한 충분히 매력 있다. 다만 다수의 관객의 취향은 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K 팝, K 드라마에 대해 표면적으로 머문 발견 ··· 다른 이야기 방식은 없었을까?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K 팝과 K 드라마에 대한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상에 대해 작품에서 얼마나 통찰력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K 드라마의 형식 중 박본이 발견한 특징은 '장르의 혼합'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K 드라마의 특징은 아니다. 작품의 토대가 되기도 한 K 팝에서의 '완벽성' 또한, 나름의 K 팝에 대한 신선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보이지만, 다소 표면적인 발견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 더욱 더 완벽한 아이돌을 추구하는 현상은 단순히 한국 연예 산업의 문제점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축적해온 한국의 대중이 갖는 집단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박본 연출가가 K 팝에서 발견했던 생경한 것들은 한국인 관객들에게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고, 따라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관객들이 느끼기에 원론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K 팝과 K 드라마의 특징과 그것들이 가진 문제점까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관객들의 일부는 쉽게 지루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하나의 대중 문화 흐름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패러디'가 주로 사용되는 것이다. 현재 큰 인기를 끌며 부캐 대란을 일으킨 유튜브 <피식대학>의 '한사랑산악회' 모습처럼 가상의 캐릭터를 창조하여 특정 세대를 패러디하는 방식도 있다. 혹은 부캐까지는 아니더라도, K 드라마나 K 영화를 통해 밈처럼 소비되는 패러디를 활용하는 방식도 있다. 유튜브의 <문명특급>에서 진행한 '숨듣명'처럼 90년대 생을 타깃으로 과거에 유행했던 K 팝이 유행하는 추세이므로, 이러한 부분들도 충분히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K 팝의 완벽성에 대해 다루면서도, 한편으론 그 완벽성을 추구하게끔 하는 그 이면의 것, 즉, 그것을 소비하는 대상인 대중에 대한 담론으로 확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됐건, 연출자는 한국인 관객의 머리 위에서 놀며, 보다 다른 매력적인 이야기 방식을 채택하여 관객을 끌어당기고, 관객이 '평소에 익숙했던 한국 문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 단면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게끔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독일계 한국인 '박본'의 K 문화를 향한 복잡한 파편 조각들
사실 필자는 공연을 관람하며 사랑이니, K 문화니 한 것보다도 독일계 한국인인 '박본' 연출가가 가진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는 게 재미있었다. 이게 이 연극이 가진 큰 재미라면 재미겠다. 이 '재미'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을 올리면서 연출자 박본을 포함한 모든 창작진들이 고민했던 흔적들과,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웠던 부분들에 대한 생략, 그리고 군데군데 작품에 반영된 K 문화에 대한 모습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창작진들이 작품에서 '재미 포인트'라고 삽입한 부분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지는 않았으나, '재미 포인트'라고 삽입했던 창작진들의 '의도'와 '관점'이 재미 포인트였다.
작품을 끝까지 매우 집중하여 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의 작품을 그저 작품으로서 관람한 것이 아니라, 연출자 '박본'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공연을 관람하며 내내 그(연출자)의 내면 깊은 곳에서 부유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일기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남긴 농담조가 섞인 낙서를 몰래 읽는 느낌이었다. 이런 재미는 지금껏 공연을 관람하며 처음 느껴본 재미였다. 그런 의미에선 꽤 흥미로운 작품이다.
박본의 이전 작품 중 독일에 대해 작업한 <도이칠란드>, 철저한 이방인의 시선으로 세르비아에 대해서 작업한 <유고유고슬라비아>에 이은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이 <사랑Ⅱ>이라고 한다.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과 수없이 그려지는 물음표 속에서도 필자가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인간 '박본'이라는 이가 바라 본 K 문화, 그리고 인간과 사랑에 대한 깊고 깊은 생각의 파편들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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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가진 특징을 좀 더 써보겠다.
이미지 출처 이다영(필자 본인)
무대 설명이 늦었다. 무대 공간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지구의 내핵'이다. 무대 디자인을 위해 스위스의 무대미술과 율리아 누스바우머(Julia Nussbaumer)가 함께했다. 무대 좌측 위쪽(하수 업쪽)에는 무대 천장까지 닿기 직전인 나무가 있고, 무대 바닥 전체는 이끼 같은 풀로 덮여져 있다. 무대 우측 아래쪽(상수 다운쪽)에는 물을 주기 위한 아담한 분수기가 있다. 무대 천장의 좌측(하수)에는 원통을 잘라놓은 것 같은 형태가 있었는데 이것은 지구의 내핵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이다. (그 장치 안에서는 풍선과 반짝이 가루가 떨어졌고, 조명이 설치된 듯 빛 표현도 이뤄졌던 것 같았다.) 무대 뒷면(하늘막 쪽)에는 원 모양의 통로가 있고 깊이를 둬서 그 안에 마치 기찻길처럼 수레를 끌고 이동할 수 있게끔 해두었다. 이 통로 또한 지구의 내핵과 지상을 잇는 통로이다. 무대는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숲이 떠오르는 디자인이었다. 이러한 판타지성이 공연 중간중간 사용되는 반짝거리는 종이가루들, 무드 등(?) 같은 불빛, 알록달록한 풍선 등으로 극대화된다.
이곳에서 살아생전 아이돌이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뒤 자살한 세 사람은 고군분투하며 완벽한 그룹을 만들기 위해 이무기와 테스트를 진행한다. 그러면서 사랑의 후속작, 사랑 그 이후의 것인 사랑2가 무엇일지 찾아나간다. 그들은 지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며, 자연스럽게 대사를 통해 K아이돌에 대한 담론, 사랑에 대한 담론들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