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서 친구들이랑 미술을 배웠었습니다. 저는 선생님한테 저는 썩 좋은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고 싶어했었거든요. 선생님한테 맨날 자유화를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심지어 맨날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려댔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제가 끔찍하게 좋아하는 주제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잔혹한 초딩의 그림 세계에서는 도화지 중간의 경계선을 두고 사람은 천사가 되거나, 겉바속촉맨이 됩니다. 정말 미술 선생님이 저를 심리 상담가에게 보내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옳고 그름을 밝혀주는 것처럼 쩌는 상황이 어디있을까요? 우리는 절대적인 신의 판단 앞에서 맨몸이 됩니다. 그 순간 모든 경계와 권력을 해체되고, 가장 완벽하다고 착각했던 존재를 가장 나약하게 만듭니다. 신적인 개입 앞에서는 가장 진실된 모습을 보이게 되죠. 저는 한번도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그런 저에게도 멋진 상상입니다. 왜냐면 현실에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보통 우리는 늘 불안과 의심을 마음 한 구석에 박아두고 삽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인간은 아주 작은 진리조차 소유할 수 없게 태어났고, 요즘 양자역학에서 펼치는 논리를 보면 완벽한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삶에는 극적인 개입은 없기 떄문에 대체로 지루하고, 짜증날정도로 모호합니다.
하지만 짧은 순간,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상황을 잠깐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극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입니다. 감정의 찰나, 생각치 못한 돌파구, 번개와 같이 흐르는 감탄과 마음 한구석에서 퍼져나가는 황홀한 고통. 우리는 그 앞에서 삶의 순간에 전율합니다. 마치 신을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에요.
타로카드 20번이 그런 카드입니다. 신적인 상징으로만 해석되길 바라지 않아 서문이 길었습니다. 카드에서는 벌거 벗은 남자, 여자, 아이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하느님의 전령인 대천사 가브리엘(혹자는 미카엘이 인간의 죄를 심판한다는 점에서 미카엘로 보기도 합니다)이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깨어난 사람들은 신의 부름에 응답하고 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한시적인 인간의 육체와 대비되는 창대한 산맥이 배경에 깔려있습니다.
이제 카드에 있는 하나하나를 살펴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두 팔을 벌려 하늘의 지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태도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주는 방향을 공개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이들은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가브리엘의 나팔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십자가는 고대부터 사용된 가장 단순한 상징이며, 연금술과 점성술 및 기타 밀교에서는 네 가지 요소(공기(칼), 불(완드), 물(컵), 바람(동전))의 조합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중동에서는 동, 서, 남, 북의 네 가지 방향과 네 가지 바람으로, 아즈텍인은 교차된 특성에따라 신과 만나는 장소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균형잡힌 십자가는 균형적인 판단을 의미합니다.
또 본 카드의 숫자 20도 이와 관련해서 해석할 수있습니다. 수비학적으로 2+0은 2가 되고, '여사제'카드가 이 카드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사제는 흑백의 양면,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었음을 고려하면 이 카드의 의미가 조금 이해가 갑니다.
가브리엘의 나팔은 천사의 상징입니다.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번째 나팔 소리를 묘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나팔 소리는 재앙을 예고하는데, 이 카드를 해석할 때는 재앙이 아니라, 재앙 후 보상을 준다는 연속적인 의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팔소리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경각심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가브리엘이 부는 나팔소리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신성한 개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나팔에 달린 깃발자체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담한 표현이라 할 수 있죠. 우리는 어떤 것을 알릴 때 깃발을 꽂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