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결' 정기공연 "햄릿 : 여자의 아들"

글 입력 2014.04.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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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 여자의 아들>


 자신의 아버지를 독살하고 왕좌에 오른 삼촌 클로디어스, 그의 아내가 된 어머니 거트루드, 그들에게 분노와 원망의 칼날을 겨누는 햄릿.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인 <햄릿>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끊임없이 회자되고, 각색되고, 재창조 된 작품이다. 영화로, 연극으로, 또는 만화로, 고전식부터 현대식까지 다양한 해석과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계속해서 조명받았던 <햄릿>. 나 역시 책으로, 영화로 몇 번씩 접했던 작품이였다. 그래서 사실 <햄릿>이라는 소재는 내게 조금은 지겨운, 흥미가 떨어지는 존재였는데, 극단 '물결'이 만들어낸 햄릿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작품을 다 보고 난 뒤에는, 이 연극을 봐서 정말 다행이다.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햄릿사진1.jpg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아버지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로운 왕이 된 클로디어스와 그의 아내가 된 어머니를 향한 햄릿의 원망과 분노는 매서웠다. 어머니가 아닌 여자로서의 '거트루드'를, 그녀가 여자로서 가지는 욕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그는 클로디어스의 '여자'가 된 거트루드의 모습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라며 한탄한다. 여성을 '어머니와 창녀'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보았던 햄릿은 어머니 거트루드가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서의 욕구를 격렬하게 부정한다.
  그런 햄릿을 향해 거트루드는 소리친다. "나도 여자야!" 
 단순하고 짧은 말 한마디지만, 이 말 한마디는 거트루드가 남편의 동생인 클로디어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자로서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 왕의 '아내'이고 왕자의 '어머니'라는 이유로 묶어두어야 했던 욕망을 풀어준 클로디어스. 그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여자'로서의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이렇듯 작품은 여성으로서의 거트루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녀의 '어머니'로서의 모습 또한 잃지 않게 만들었다. 햄릿을 향해 "내 아들아.", "내 아들, 햄릿"이라 말하며 '아들'을 강조하는 그녀의 대사를 통해, 여자로서 클로디어스를 선택했지만, 아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트루드역을 맡은 배우가 아들 햄릿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자로서의 욕망을 숨기지 못하는 내적 갈등을 연기와 안무로 잘 표현해내 주어서 그녀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출가의 말에 따르면, "to be(존재)와 not to be(비존재)"로 대표되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갇혀있던 햄릿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 괴로워하지만, 점차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여자의 세계로 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극이라고 한다. 사실 프로그램북에 적혀있는 이 말을 처음 봤을 때는 음? 하며 봤었는데, 작품을 다 본 뒤에 다시 보니 그런 뜻이였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남편의 친동생과 부부가 된 여자, 요부라는 말까지 따라붙었던 거트루드를, 단지 아내나 어머니가 아닌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여자로서의 모습을 재조명하여, 아버지로부터 이어져왔던 이분법적인 시선. 즉, 세상을 수직과 수평으로 나누고, 이성적인 사고로 판단하는 '남성적인 시각'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던 햄릿이, 점차 거트루드의 영향을 받아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나누려 하기보단 포용하는 '여성적 세계관'을 이해하며 수직과 수평이 아닌 '원'의 순리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통해  <햄릿>이라는 작품을 색다르게 표현해냈다. 


햄릿2.jpg



 연극으로서의 이 작품은 이야기를 제외하고 무대연출만 보았을 때도 인상적인 작품이다.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조명, 연기 (사실 연기 때문에 무대에 안개끼는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분위기가 잘 맞아서 괜찮았다)로 인해 막이 전환될 때 마다 달라지는 분위기를 자연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잔잔히 들리는 배경음악, 뒷편의 큰 스크린을 통한 영상은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중간중간 무용을 하기도 하는데, 대사로 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적인 부분들이 그들의 춤을 통해 그들이 무대 위에서 느끼는 감정에 더 쉽게 몰입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점이 거트루드의 옷인데, 까만색 옷과 대비되는 빨간색 안감이 그녀의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야했던 갑갑한 현실과 대조되는 여성으로서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 처럼 보였다. 첫 등장에 클로디어스가 거트루드의 옷 단추를 풀어 안감을 보여주는데,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작은 소품, 손짓으로 표현해낸것이 인상적이였다.

 햄릿이 아닌 거트루드에 초점을 맞춰, 지금껏 존재했던 그녀에 대한 모든 편견들을 깨고 새롭게 창조한 작품, <햄릿 : 여자의 아들>. 내가 보았던, 앞으로 보게 될 '햄릿'을 다룬 작품 중 가장 신선하고 인상깊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써야 될 지 몰라서 본문에 쓰진 못했지만 오필리어의 몸부림(?)치던 연기가 정말 인상깊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미쳐서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몸부림치다 주저앉아서, "약속했잖아!!!!!" 하고 소리친 오필리어가 팍 엎어지면서 무대가 완전 암전되는데, 이 부분에서 소름이 쫙..

-그리고 이 연극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클럽씬이라고 해야되나? 갑자기 언니 오빠들이 클럽 무대의상 입고 열심히 춤추던 그 부분..햄릿과 오필리어의 감정선과 관계를 위해 필요했던 부분인건 아는데 그냥 그 부분이 너무 이상하고 생뚱맞았다. 언니 오빠들이 너무 클럽인에 빙의해서 열심히 춰서 그런건지..뭔지..모를...

[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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