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이태영박사

글 입력 2014.10.05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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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9  29             

 

그때도 알았더라면 

 

모교를 찾았다


갈 제마다 깜짝 놀라는 건 학교와는 무관한 이대 앞 상점가는 더욱 번창해진다는 것과 그 번잡하고 어지러운 상가 행렬을 통과해 캠퍼스에 들어서면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안정되고 마치 큰 공기에 안기는 듯 넉넉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집수리를 하는데 시간도 예상보다 오래 걸리지만 예산도 견적보다 몇 배가 되니 속이 타고 있었다. 그 때에 모교에 발을 들여놓았고 놀랍게도 마음이 가라앉고 차분해지는 걸 느낀다

지금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이나 사직 터널이 생기기 훨씬 전, 대학을 가려면 세종회관 앞까지 10여 분을 걸어가 61번 버스를 타면 서대문 아현동 신촌을 지나 봉현동 이대 후문까지 돌고 돌아 한참이 걸렸다. 영문과 수업을 후문에 붙은 C관 건물에서 늘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앞문 쪽으로 갔다

바둑이 아저씨라고 사진 찍는 아저씨가 앞에서 반겼었는데 핸드폰으로 찍어대는 이 시대 그가 여기 있을 리 없지만 혹시나 하고 둘러보게 된다


대문이 없어진 자리. 왼편 벽에 배꽃을 일일이 구워 붙친 커다란 도자기 작품이 있고 중국 사람들에게 배꽃 학교에 오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이 나, 그 배꽃 梨花를 만져보기 위해 온다고 하고 실제 그 작품을 배경으로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월 수 금마다 채플, 예배를 보았고 클래식은 물론 최전성기의 클리프 리차드, 최희준까지 수 많은 공연을 했던 대강당이 눈에 들어 온다. 그리 가기 위해 수 백 계단을 족히 오른 것 같은데 이제 세어보니 겨우 45 계단이다


우측으로 마스 게임과 큰 행사를 한 운동장이 세계적인 프랑스 건축가가 지하 6층으로 지은 독특한 건물로 바뀌어 있다.  ECC 건물 기공식에 그 건물에 대한 한 줄의 시를 지어 3 언어로 붓으로써 그 액자를 스카프를 멋지게 한 건축가 도니미크 페로에게 주니 함박웃음으로 좋아했었다

세계 건축학도들과 건축 관심자들이 찾아오는 명물이 되었다지만 그러나 개교 기념일에 김활란 김옥길 선생님의 찌렁찌렁한 음성이 들려오던 소박한 옛 운동장도 나는 그립다

가을 빛으로 변하려는, 아직은 푸른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내 청춘은 어디에 있는가, 그 때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 후의 길을 가르침대로 제대로 찾아 왔는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대한민국 제 1호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요 법대 학장을 지내신 이태영박사 1914-1998 탄생 백주년 기념 학술행사가 법대에서 있었다

그는 이 시대도 필요로 하는 여성 리더십의 표본이다. 학문에서 뿐 아니라 거리에서 법정에서 사회 민주화를 위해 인권을 위해 앞에 나섰고 가족법 양성평등법 가정법률상담소 등 자신이 추진한 일이 보편화 되면 사회의 또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에 앞장을 섰다


장명수 이화여대 이사장이 기억하는 에피소드 중에는 이태영 선생이 법정에서 여성을 변론하는데 저쪽 남편이 '아니 남자가 축첩을 좀 했기로서니 ~' 라고 하여 스스로 죄를 지었음을 인정해 버린 웃지 못할 일과 후에는 피와 살이 되었지만 후배들을 많이 꾸중하신 것이 있다


아들 정대철 고문이 기억하는 일화 세가지도 있다

1943년 아버지 옥바라지 하시던 어머니가 자신을 집에서 낳는데 가위가 비위생적으로 보여 외숙모가 이빨로 탯줄을 잘랐고, 천을 가위로 잘라 누비 이불을 만들어 파시던 어머니가 질이 좋지 않은 가위로 수 없이 잘라 오른쪽 검지가 크게 비틀어져 버렸고, 사대부국 다닐 때에 어린이 회장 선거에 4,5,6학년 선거권이 있는 6백명 학생들 앞에서 한, 어머니의 웅변과 능변 덕분에 자신이 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했다

 
내게도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캠퍼스에서 뵈었고 1987년 가정법률상담소를 열기 위해 와싱톤에 오신 선생님을 1시간 TV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소외된 서민과 여성을 향한 헌신과 그 뜨거운 열정의 가슴이 감명이었다 그의 고향인 평안도에는 아직도 그런 여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인터뷰 후, 참정권을 박탈당한 남편 정일영 의원을 대신해 서울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는 아들을 밀어야 한다고, 미국에서 한국 투표를 할 수도 없는 나에게 힘을 다해 열변하신 모습이 인상에 깊다

  
내게 주신 따스함을 기억하고 130년 역사의 모교를 걸으며, 우리 앞에 이런 모범된 분들이 계셨었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이 인다

 
세월의 빠름과 덧없음, 스무살 청춘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 스승과 어른들이 그토록 주시려던 지혜의 말씀을 새겨듣고 가슴에 새겼어야 했다는 것, 넓은 세계와 미래로 어서 튀어 나가려 했었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며 높아진 하늘을 쳐다본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벽에 키 눈금 재듯
               같은 키이지만
               속마음이 조금씩 자라난 걸
               그래도 알게 되는
               모교의 교정

 
               이 가을
               저 키큰 나무는 무슨 열매를 맺을 것인가
               우리는 또 무슨 열매로 영글어 갈 것인가



2.png▲ 이대생 채플과 수많은 추억의 공연이 있는 이화여대 대강당 - 2014 9 24

3.png▲ 그리운 캠퍼스 운동장에 지은 세계적 건축의 ECC 건물

4.png▲ 어머니 이태영박사 탄생 백주년 학술행사의 정대철 고문

5.png▲ 바둑이 아저씨와 정문이 없어진 이대앞 배꽃梨花 작품을 중국인이 핸드폰으로 찍어주다 - 2014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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