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조각전

글 입력 2014.03.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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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14.03.01 ~ 2014.05.11

장소 : 경기 |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요금 : 5000원

문의 : 031.955.4100



전시소개

<박찬용 조각전>
 
열두 마리 투견의 머리가 각각의 철창에 갇힌 채 벽에 걸려 있다. 상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싸울 정도로 호전성이 개량된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이다. 박찬용은 투견장을 몇 년 간 따라다닌 경험을 통해 연 전시 <투쟁, 그 영원함>(가나아트스페이스, 2000)을 시작으로 일련의 투견을 조각하였다.  
 
<싸움 개들이 희한한 게, 같은 농장에서 자란 것들끼리 더 잔인하게 싸워요. 남의 집 개하고 싸울 때보다 더 잔인하죠. 《너 이 새끼, 줄만 한 번 풀리면 어찌 되는지 두고 보자.》 이러다가 한 번 붙으면 죽을 때까지 싸우죠.> (작가 노트 중에서) 
 
박찬용이 만드는 세계는 폭력이 극대화된 거친 공간이다. 개는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인간은 그 죽음에 돈을 건다. <인류라는 종이 무언가를 성취하는 데에는 폭력의 힘이 크다>라는 작가의 시선처럼, 인간은 생존을 위한 싸움을 통해 진화하였고 싸움과 폭력은 다른 종들에게 전이된다. 투견은 인간의 폭력성과 자본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내는 이상한 현실이다. 사람이 <살인>을 넘어서 <개 죽이는 개>를 만드는 것이다. <개싸움을 처음 보면 징그럽다 그래요. 피 냄새도 나고. 그런데 한 번 보면 조금 있다 언제 하냐고 묻죠.> 작가가 만드는 세계는 폭력과 고통이 난무한다. 폭력을 가하는 이가 당하는 이에게 고통을 주고, 그 고통이 가하는 이에게 다시 되돌아 간다. 이런 폭력의 연쇄는 여러 독립된 상들이 모여 상황을 연출하고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박찬용의 일련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표현된다.  
 
이후 등장한「서커스」연작은 인간이 자신보다 강한 동물들을 다루는 또 다른 방식들을 보여 준다. 「서커스_길들이기」에서 회색빛 호랑이 한 마리가 꼬리를 곧게 치켜들고 계단을 내려온다. 그 앞에는 옷을 벗은 남자가 기다란 채찍을 휘두르며 서 있다. 「서커스_막이 오르다」라는 작품은 외발 자전거 타는 원숭이와 속옷의 금발 여인이 서 있다. 작가는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과학적 가설과 이브라는 여성의 존재를 그려 낸 종교적 신념을 함께 배치한다. 21세기에 과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승리했는지에 관한 우화라고 소개한다. 「서커스_먼 곳을 바라보다」는 곰과 그 목줄을 잡고 서 있는 조련사를 묘사한 회색 조각이다. 이 시리즈에는 호랑이와 회색 곰 그리고 침팬지와 같은 동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여기에 이들을 길들이는 조련사와 무희, 차력사 따위가 함께 어우러지는데 이들의 모습은 흡사 광대와 다를 바 없다. 인간은 주변 사물을 가능한 한 제가 욕망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왔다. 유전학이 충분히 발달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폭력적 욕구를 위해서 투견을,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에서 애완견을 만들었다. 자연에 문화가 삽입된다. 
 
「박제」시리즈는 들소나 숫양, 무스의 뿔을 소재로 한다. 박제란 동물의 가죽을 벗겨 썩지 않도록 한 뒤에 솜이나 대팻밥 따위를 넣어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물건이다. 실은 인간이 자신보다 강한 대상을 제압했을 때 만드는 트로피이다. 가정집 거실이나 회의실에 걸린 박제는 잔인한 폭력의 자랑스런 기록이다. 신작 <대형동물>은 라스코 원시 벽화에 등장하는 상상 속 거대 동물을 형상화한다. 약 2만 년 전 선사 시대에 크로마뇽인이 그렸다는 이 동물들은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는다. 과학이나 종교가 발달하지 않은 원시 사회의 인간의 야만 상태가 오히려 <인간적>이라고 작가는 믿는다. <고결한 야만>에 대한 작가의 순수한 동경을 그려내며, 역설적으로 오늘 한국 사회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여전히 동물의 왕국임을 보여 준다. 
 
박찬용이 표현하는 인간은 폭력으로 일궈 낸 문명을 고뇌하는 주체의 형상이다. 오스트리아 미술사학자인 곰브리치는 <고대 이집트 시대의 조각가를 일컫는 말에는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사람(he who keeps alive)》이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조각상이란 그 시작부터 그 대상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영원불멸한 신상神像의 구현을 목표로 했던 것이다. 원시 동굴벽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술, 마술적 목적을 상기시키는 이런 특징은 대리석 덩어리로부터 형태를 해방시키고자 한 미켈란젤로나 흙덩어리에서 생명을 창출한 로댕의 조각 작품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조각사의 흐름은 파주에서 작업하는 박찬용의 예술 세계까지도 이어진다. 그가 꾸준히 만드는 구상 조각들은 한국 현대 사회를 집어삼킨 일상 속 폭력의 형상에 대한 직접적이고 순수한 기록물이다.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박물관(그리스어로 Mouseion, 라틴어로 Museum)은 예술 수집품 대신, 식물원과 동물원을 가진 과학적인 박물관과 해부학을 연구하는 방 그리고 천체 관측을 위한 시설을 의미했다. 예술 작품의 수집과는 연관이 없었던 박물관은 20세기 이르러 그리스 조각작품의 원작이나 복제품, 금, 은, 상아, 거북이 등껍질로 만든 물건, 청동 같은 유물이나 희귀한 동식물을 보관하던 장소로 그 의미를 전유한다. 이번 박찬용의 전시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이라는 모더니즘적 미학을 간직한 전시 공간을 박제와 투견으로 가득 찬 <박물관>으로 번안한다. 고대 그리스 사원이나 인도의 신전이 주술적 대상이나 신상의 보호처였다면, 박찬용의 이번 전시는 폭력성이라는 한국의 신을 미술관에 새겨 넣는다.  
 
미술 평론가 최태만은 <한국의 구상 조각의 흐름은 모더니즘의 형식주의와 아카데믹한 구상 조각의 유미주의를 거부하고, 현실을 생생하고 실감나게 재현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국 리얼리즘 계열의 구상 조각은 무기력하고 감각적인 포즈를 취한 여성 누드나 모자상 등에서 양식화된 감상주의 및 에로티시즘과는 달리, 한국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박찬용의 투견, 서커스에서 대형동물로 이어지는 조각들은 이러한 한국 리얼리즘 조각의 흐름과 그 궤도를 함께 한다. 작가는 현대 도시의 일상생활 속 드러나는 폭력의 기록들을 여과 없이 예술 작품으로 재창조함으로써, 예술 작품을 숭고함의 등가물로 여긴 부르주아적 예술관에 이의를 제기한다. 
 
해군의 아들로 태어나 진해에서 자란 유년기의 경험이 폭력을 기록하는 작품 세계나 문명의 메스꺼움을 드러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한 자연 묘사>나 <이상적 미> 대신, 박찬용은 표현주의자들이 그러했듯 인간의 고통과 폭력, 그 격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의 예술이 조화나 미를 고집하는 것에 정착하기를 거부한다. 순수하고 소박한 미술에서 솔직하고 단순함을 찾는 대신, 강렬한 표현성과 명쾌한 구성으로 폭력에 얼룩진 한국의 현대사를 투견으로 은유한다.  
 
 
글: 양지윤 큐레이터

[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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