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어쩌다 어른

글 입력 2023.03.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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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물도, 서른도, 인생도 처음이다

 

 

2015년 출간되어 '어쩌다' 신드롬을 낳으며 동시대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베스트셀러 에세이 [어쩌다 어른]이 8년 만에 다시 한번 독자를 찾았다. 애초에 주로 심각하지 않은 책이나 만화, 드라마, 영화, 노래 등을 소재로 해서 일상을 풀어낸 신문 연재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을 엮은 책은 출간 이후 장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동시대 독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낳았다.

 

이번 스페셜 에디션은 뒤이어 2018년에 출간된 저자의 두 번째 에세이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의 글들을 함께 추려내어 총 36개의 꼭지를 모았다.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에게 전염된 취향부터, 가볍게 다가오고 멀어졌던 연애, 직업인으로서 누구나 겪는 굵직한 딜레마, 그리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 쉬운 주변의 사소한 에피소드와 인간 군상을 개성 있는 시각으로 포착하여, 다양한 만화, 드라마, 책과 유려하게 연결 지어 자신만의 인생 철학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나아가 '어른 됨'의 부담을 느끼며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곤 하는 기분의 등락 등 저자의 좌충우돌 삼십 대 시절이 오롯이 담긴 에피소드들이 새롭게 개정판에 선별되었다.

 

개정판 서문에서 저자 이영희는 이 책을 출간하기 전후로 크게 달라진 자신의 인생 소회를 밝힌다. 책을 내기 전에는 주로 적막하고 축축한 자신만의 세계에 웅크리고 있는 기분에 시달렸지만, 책을 출간한 이후로는 독자들에게 예상보다 큰 사랑을 받으며 나와 비슷한 '이상함'을 공유한 이들이 어딘가에서 각자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든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물을 그대로 내보이는 에피소드가 많다 보니, 저자는 8년 만의 새로운 판본에서는 왠지 다듬고, 삭제하고 싶은 대목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용기 있게 독자 앞에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가능한 미숙했던 시절의 자신을 그대로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밝고 강한 것만이 아닌, 어둡고 약해 보이는 면들을 내보이며 독자들의 심금에 다가서기 위해서다. 그렇게 여전히 서툰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2023년의 '작은 어른들'에게 말을 건다. 먼저 통과해온 '어른의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다가올 '어른의 시간'에 대한 낯선 기대를 품어보라고.


 

 

사소한 취향부터 실없는 농담까지

우리끼리 밤새도록 나눠도 모자란 이야기들


 

1장 '사소한 취향과 실없는 농담이 우리를 구원한다'에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의식을 구현한다. 얼굴이 붉고 대쪽 같은 '직진 본능'의 소유자인 택시 운전 기사 아저씨의 거듭되는 운전 실수에 미안스러운 얼굴로 토로한다. '나는 운전을 원래 잘하지 못하는데, 이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늦어진 출근길에서 예민하고 뾰족한 한마디를 하려던 저자는 이 먹먹한 한 마디에 숨이 턱 막히며 직업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성찰하기에 이른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인생에 대해 곰곰이 곱씹는다.

 

1장 표제작 '사소한 취향과 실없는 농담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어머니의 타박을 물리치며 꿋꿋하게 웃기는 남자들의 '팬질'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순간을 그리며 요네하라 마리의 <유머의 공식> 일본의 극작가 미타니 고키의 <웃음의 대학>을 소개한다. 연예인, 책, 만화, 드라마 등 좋아하는 것들을 열렬히 계속 좋아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취향을 키워나가던 이 동력이 결국 기자라는 직업에 가닿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웃음을 탐닉하는 취향이란 것이, 그것 자체로 하루하루의 일상에 큰 자양분이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세상은 자주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또한 하루는 고되고, 희망을 흐릿할 때, 이런 작고 사소한 취향과 실없는 농담 하나가 우리를 구원하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남들에게 내보이기 좋은, 사회적 성취에 앞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작은 일상적 즐거움의 소중함을 꺼내 보인다.

 

 

 

이제 나도 내 인생을 좀 좋아해 볼까?

아무도 칭송하지 않으면 어때



저자는 2장 '아무도 칭송하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와, 3장 '내 인생의 고유한 특별함이란 무엇인가'에서도 잊히기 쉬운 반짝이고 진중한 순간들을 밝은 눈으로 포착한다. 대중목욕탕 한구석에서 검은 브래지어와 팬티를 입고 일하는 세신사 아주머니에게 정기적으로 몸을 맡기게 되면서 알게 된 속속들이 인생사. 결코 순탄하다고 볼 수 없는 그 인생사 속에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높은 자신감과 프로의식을 보면서 세상 다른 이들의 노동을 나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새삼스러운 진리에 가슴이 콕 박히게 된다.

 

뒤이어 '나다운 일'에 대해 곱씹는다. 강상중의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일본 영화 <백엔의 사랑>으로 생각을 뻗어나가며 남들에게는 초라해 보이는 '백엔짜리로 보이는 인생'이라 해도, 나에겐 이것밖에 없으니 최선을 싸워 보겠다는 결심의 순간. 나만의 싸움을 하는 수많은 일상에 대해 숙고하기에 이른다. '내일 아침 너무 추워서 회사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12월의 밤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 나가는 이 이상적인 인생관을 발효시키며, 저자는 스스로의 일상에 격려를 보낸다.

 

그렇게 이 책은 구체적인 일상세계에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응축해내다가, 책의 표제작 <어쩌다 어른>에서 저자는 쉽지 않은 '어른 살이'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에 이른다. 이십 대에는 서른 살이 되면 어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마흔이 된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회사에서는 경력을 쌓아 웬만한 일쯤은 척척 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더 이상 외로움 때문에 절망적인 기분에 빠져드는 일 같은 건 없을 줄 알았다는 막막함이다.

 

저자가 지나온 서른이라는 나이는 여전히 아프게 헤매야 하는 나이였고, 그 이후로도 계속 누가 나이를 물으면 대충 '몇 년생'이라고 둘러대며 내 나이를 입 밖에 내는 것이 점점 어색하고 두려워지는 시점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가수 이적의 노래 가사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집 <걸>을 곱씹으며 또다시 일상을 성찰해낸다. 소설 속 인물들의 현실을 마주하기 싫고, 시간을 잊어버리고 싶어 하는 사정을 가만히 바라보며 저자는 스무 살의 나에 비해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덜 아프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노라고, 그리고 그렇게 나 자신과, 세상과 화해하며 어른이 되어간다는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이영희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오래 일했고, 현재는 도쿄특파원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2015년, 에세이 데뷔작 [어쩌다 어른]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 제목에 쓰인 '어쩌다'라는 부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본이 되는 두 권의 에세이 [어쩌다 어른] [나는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 외에도 [징글맞은 연애와 그 후의 일상](공저) [안녕, 나의 순정]을 썼으며 옮긴 책으로는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걷는 듯 천천히]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가 있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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