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봤던 피에타, 작품으로 다시 보다

글 입력 2014.09.1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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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봤던 피에타, 작품으로 다시 보다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 정다영(띠요옹)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jswjhs2300]
 
 
 
 
그림1.jpg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각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이다. 이 작품은 14981499년경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전성기시기에 제작되었으며,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입구에 위치해있다. 작품을 설명하기에 앞서 제목부터 설명을 하자면,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물론, 피에타라는 조각 작품은 미켈란젤로만이 유일하게 제작한 것은 아니다. 원래 피에타조각은 북유럽에서 주로 나타났었다. 북유럽에서의 피에타 조각은 그리스도를 애도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는데, 과장된 심리표현이나 인체 표현, 혹은 왜곡된 인체 표현의 모습 등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었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 고개를 절로 갸우뚱 할 정도로 인체가 과장되고 왜곡된 채로 표현이 되어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그와 다르게 자신의 작품 피에타를 이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미켈란젤로가 자연에 대한 탐구보다는 인체에 대한 탐구에 열중한 화가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작품을 보도록 하자.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마리아의 머리부터 시작해서 만들어진 삼각형의 안정된 구도이다. 또한 삼각형 구도 안에 들어간 옷 주름 선의 복잡한 표현을 확인해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표현에서 마리아의 슬픔과 애도의 감정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절제미와 우아미라고 하는 요소 속에 슬픔의 감정이 종속되어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이 옷 주름의 표현은 그리스도의 시신이 형성하고 있는 자세와도 유사한데, 이를 통해서도 슬픔의 감정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미켈란젤로가 옷의 주름을 통해 심리적 감정을 표현한 이유는 그에게 있어 은 중요한 사상적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었다. ‘옷으로 감싼다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현실적인 위협으로부터 수호되어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대리석으로 구겨진 옷자락의 주름을 만들어 그것을 그리스도를 지키는 하느님의 옷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옷 주름의 표현이나 옷의 질감과 육체의 질감 차이 표현 등은 대리석으로써는 굉장히 세밀하고 뛰어난 묘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마치 실제 옷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 작품을 보고 가장 크게 매료된 부분이 이러한 세밀하고 뛰어난 묘사이기도 하다.
 
 옷 주름에서 넘어가 이번에는 마리아의 모습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면, 명상에 잠긴 듯 우아한 모습이다. 그리고 외모가 상당히 아름다운 젊은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켈란젤로가 마리아를 이렇게 젊은 여인으로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것이 마리아의 젊음처럼 불변의 진리임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마리아의 왼손을 보면 손을 내미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음을 직면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의 손 외에도 무릎 부분을 보면 옷으로 인해 굉장히 크게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표현은 고딕 조각에서 많이 보이던 부자연스러운 형태를 조형적으로 없애고자 한 미켈란젤로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고딕 조각에서의 피에타 조각상을 보면 그리스도의 몸이 마리아의 무릎 밖으로 뻗어 나온 모습으로, 조각 작품으로서는 부자연스러운 형태이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작게 표현하고, 옷이라는 요소를 이용하여 마리아의 무릎을 크게 보이게 함으로써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을 조형적으로 없애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렇듯 앞서 설명했던 작품 속 세세한 부분들과, 미켈란젤로가 그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이 작품에만 자신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점을 통해 그가 이 작품에 꽤나 크게 신경을 썼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 속에 미켈란젤로가 의도한 이러한 예술적인 요소들 외에도 내가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 때문이다. 2012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화제작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 영화는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 것보다, ‘최초로 극장에서 두 번 본 영화라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원래 나는 한 번 본 영화는 극장에서 돈 주고 두 번 이상 보지 않는데 이 영화를 이후로 좋은 영화는 두 번씩, 혹은 그 이상씩 보게 되었다.
 
 영화 <피에타>의 줄거리를 간략히 말하자면, 대략 이렇다. 주인공인 강도는 돈을 빌리고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을 불구로 만들어 보험금을 타서라도 돈을 가져가는 인물이다. 이런 악마 같은 면모를 가진 강도에게 어느 날 그의 엄마라고 주장하는 미선이 나타난다. 강도는 미선을 괴롭히며 그녀의 존재를 부정하지만 결국 엄마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미선이 가지고 있는 비밀과 그들 사이에 얽혀있는 관계로 인해 갈등이 시작되고, 끝내는 그들 모두의 자살로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된다.  
 
 글의 처음 부분에서도 언급했듯,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하지만 주인공인 강도는 결코 자비를 베풀 수 없을 악행들을 일삼는다. 결국 영화는 관람객들에게 이러한 인물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가? 용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질문을 영화 속 인물들에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절대 아니다이다. 강도에게 점점 동정심을 느끼던 미선도 결국에는 복수를 위해 자살을 택했고, 채무자들 역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여전히 그를 악마로 여기며 보기만 해도 치를 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강도는 끝내 자살을 택했다. 강도가 자살을 한 이유는 스스로의 죽음을 통해 모두에게 속죄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비극적이고도 잔혹한 영화 <피에타>는 어느 정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 마리아의 얼굴을 보면 우아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영화 속 미선이라는 인물이 강도의 친모인척 행세할 때의 표정과 유사하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을 빚을 못 갚는다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몬 강도에게 그녀는 엄청난 혐오감과 증오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를 대하는 미선의 표정은 항상 덤덤하고 자애로웠다. , 마리아와 미선 모두 깊고 큰 사랑으로 인해 감정이 절제된 모습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슬픔과 애도의 감정을 옷 주름을 통해 드러냈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은 미선의 슬픔이 내재된 내적인 감정을 그녀의 손짓 하나 하나에, 행동 하나 하나에 담아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가장 증오하는 인물의 식사를 챙겨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며 사랑해주었다. 이러한 행동 하나 하나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담긴, 그녀 나름의 애도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들 외에도 유사한 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제작자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다.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피에타>에 자신의 이름을 기록하여 애정을 드러낸 것처럼, 김기덕 감독 역시 <피에타>라는 영화에 나름대로의 애정이 담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감독의 이전 작품들을 볼 때, 감독이 도대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의도를 알아보려고 하기도 전에 이미 작품의 잔혹성에 질려 작품 자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런데 <피에타>는 이전의 작품들과 달랐다. , <피에타>는 전작들과는 달리 대중들의 기준에 좀 더 맞추려는 그만의 노력이 보였었다. 어쩌면 나는 그의 그러한 노력을 읽어내려 두 번이나 극장을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덕 감독 역시 미켈란젤로처럼 <피에타>라는 작품에 더욱 각별한 애정을 쏟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까지, 영화 <피에타>와 미술작품 <피에타>를 연관 지어 보았다. 물론, 그 연관성에 있어 다소 나만의 주관적인 견해가 많이 담겨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두 작품 모두 나로 하여금 벅찬 감정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두 작품은 모두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훌륭하고 빛이 나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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