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9회는 끝나지 않았다

글 입력 2013.12.0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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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있는 에세이


<마지막 9회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한 장 남았다. 달력이 12를 가리키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시즌이다. 인류가 함께 부르는 지구 교향곡. 뜨거운 실러의 ‘환희의 송가’가 끝을 맺으면 각자의 2013년은 스위치 꺼진 싸늘한 앰프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9는 마지막 교향곡의 숫자다.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작곡가들은 ‘거인 베토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브루크너가 베토벤처럼 9번을 걸작으로 남기고 그 이후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말러는 9번째 교향곡에 번호 대신 ‘대지의 노래’란 이름을 붙였지만. 번호 붙은 완성된 교향곡은 그 역시 9에 머물렀다. 멘델스존은 다섯 곡을, 슈만과 브람스는 네 곡을 넘기지 못했다.

대문을 나설 때마다 2013년의 마지막 바람을 맞는다. 1년 중 마지막 달은 어쩐지 9라는 숫자를 떠올리게 한다. 9는 완전함을 앞둔 숫자이다. 완전함을 앞두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는 의미다. ‘99퍼센트’는 압도적인 다수이지만 ‘100퍼센트’가 될 수는 없다. 꼬리 아홉 개 달린 구미호는 100날을 함께 살면 진짜 인간이 된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정체를 들켜버리고 만다. 해석과 의미가 저마다 다양한 ‘아홉수’에는 이런 9와 10사이의 긴장이 놓여있다. 다 된 밥이 될 때 조심하지 않으면 망쳐버리기 십상인 것이 9라는 숫자의 묘미다.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한 지점에서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다.

마지막 달은 야구의 9회를 떠올리게 한다. 리드하고 있더라도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까지 동점이라면 점수를 내면 이긴다. 지고 있었더라도 뒤집을 수 있는 것이 9회다.

9회말 투아웃, 작은 환호와 함께 중전안타가 터진다. 싸늘하게 가라앉은 덕아웃 분위기에 불 하나 켜졌다. 이제부터다. 12월.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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