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비의 팬덤 '깡팸'은 누구인가 [음악]

2019년 비의 새로운 이미지
글 입력 2019.09.3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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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의 비



최근 비는 댄스가수나 연기자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를 얻고 있다. 2019년 상반기 이후, 비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기존의 모습과 반대되는 이미지는 유튜브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2000년대 초, 가요계에서 비는 한류의 중심이었다. 춤, 노래, 연기 등 다양한 방면에서 누구도 쉽게 따라 하지 못할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Rain Effect'라는 단어는 대중문화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Rainism', '태양을 피하고 싶어' 등의 노래와 아시아권에서 빅히트를 친 '풀하우스'까지,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전성기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비는 '웰컴 라이프 2'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스타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나가고 있었다.





기존 활동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비의 새로운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이미지는 비의 뮤직비디오 '깡'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비의 '깡'은 2017년 비의 컴백 앨범이었던 'MY LIFE愛'에 수록된 곡으로, 3년의 공백을 깨며 당시의 트렌드였던 힙합 스타일로 복귀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발매 당시 앨범은 평단의 차가운 평가를 받았다. IZM에서는 비의 앨범에 평점 1점을 주며 혹평을 주었다.


혹평의 이유는 '깡'이 과거 2000년대 초반의 스타일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의 전성기 시절 스타일은 대중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결국 '깡'은 쉽게 흥행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며 대중들에게 점점 잊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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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깡'은 2019년을 기점으로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영상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조회 수가 늘어났다. 영상이 등록되어 1년이 지난 시점, 뮤직비디오는 300만 조회 수를 넘었다. 현재는 450만 조회수와 3만 건이 넘는 댓글을 기록했다. 어떤 이유로 '깡' 뮤직비디오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을까?




2. 깡 현상



'깡'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이유는 뮤직비디오의 재발견 때문이었다. '깡'은 발매 당시에는 흥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깡'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과거 지나쳤던 부분을 다시 해석하며 뮤직비디오의 어색한 부분들을 찾아냈고, 흥행하지 못할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영상에 댓글을 작성하며 사람들과 공유했고, 어색한 부분들을 구체화해 남겼다.


'깡'에 대한 혹평의 내용인 '옛날 스타일', '어색한 연출'은 뮤직비디오의 정체성으로 인식되었다. 사람들은 상세한 부분들을 짚어내며 그들이 느낀 어색함을 기록했다. 시간이 지나며 파편적인 댓글은 축적되어 깡의 해석 범위를 넓히고, 뮤직비디오의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깡'에서 그들이 발견한 코드와 특징들은 인터넷 밈(Meme)이 되었다. 그들은 '깡' 뮤직비디오를 멋지고 예술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단 재미있고 웃음을 유발하는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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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러한 포인트를 발견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를 반복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했다. 한번 보고 지나칠 수 있는 요소들까지 웃음 포인트로 발견해 밈을 확장했다. 뮤직비디오를 처음 감상하는 사람들 또한 점점 확장되는 밈을 이해하기 위해 반복했다. 이러한 이유로 '깡'을 반복적으로 감상하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뮤비를 이해하기 위한 반복 감상 행위 자체가 하나의 밈이 되었다.


반복 감상을 가능하게 한 것은 뮤직비디오의 중독성이었다. 뮤직비디오가 주는 충격은 의외의 중독성으로 반전되었고, 사람들은 중독성으로 뮤직비디오를 계속 감상했다. 그래서 뮤직비디오가 주는 중독 증세를 설명하기 위해 '1일 1~'와 같은 용어를 접목해 '1일 1깡'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1일 1 깡'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속적인 뮤직비디오의 해석과 밈의 팽창은 1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지속적인 유입과 조회 수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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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깡'을 실천하던 사람들은 뮤직비디오의 해석 이상의 놀이를 찾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와 관련 없는 내용, 뮤직비디오의 지속력을 확인하는 내용, 푸시알람의 기능을 이용한 내용으로 댓글을 작성했다.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 추천 수를 많이 받는 의외성에 열광하고, 의외성을 고안하기 위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뮤직비디오의 댓글창은 유튜브 댓글 시스템을 이용한 하나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 이후로 들어오신 분들은'이라는 내용의 댓글은 영상의 지속력을 확인하기 위한 댓글이었다. '깡'이 가진 파급력과 지속력을 확인하고, 그 현상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였다. 또한, 개인적인 할 일 리스트를 적은 댓글은 유튜브 푸시 알람의 기능을 이용한 댓글이었다. 사적인 계획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행위의 의외성, 그리고 알람과 동시에 추천을 받을 수 있는 기능 때문에 사람들은 추천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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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댓글창은 추천 수를 기반으로 중요도를 판별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드립'들은 상위에 노출되어 유행을 주도한다. 또한, 상위 노출은 전체 기간이 아닌 최근 댓글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상위에 노출되는 '드립'들은 최신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뮤직비디오에서 생산되는 밈은 굳어지지 않고 계속 변하며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주었다. 그래서 '깡'은 유튜브 댓글 시스템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3. 역 Rain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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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현상 덕분에, 급기야 '깡'은 비에 대한 연관검색어의 상위 비중을 차지했다. 뮤직비디오는 유튜브 검색 결과에서 중요도 높은 영상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추천 영상에도 노출되었다. 그리고 추천 알고리즘 덕분에 '깡'은 비의 다른 작품과 연결되었다.


유튜브에서 '비'의 검색 결과는 '깡', 'LA SONG', '차에 타봐'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또한, '비'라는 검색어의 연관검색어는 '깡'과 '차에 타봐'로 유입된다. 유튜브가 의미 있는 영상을 기준으로 검색어를 정렬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뮤비들은 현재 비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라고 볼 수 있다.


'깡'을 즐기던 사람들은 비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깡'을 감상하던 관점으로 다른 작품을 해석했다. '차에 타봐'의 경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곡이지만 '깡'에서 느꼈던 특징들이 그대로 발견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000년대 초반의 강하고 터프한 남성상은 사람들에게 과장된 표현으로 받아들여졌고, '깡'의 맥락을 공유하며 확장되었다. 사람들은 '차에 타봐'를 1호점으로, '깡'을 2호점으로 부르며 두 곡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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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비는 유튜브와 인터넷 문화를 중심으로 더 큰 밈이 되었다. 2019년 2월, 엄복동 사건이 발생하고 비는 인터넷 문화에서 굵직한 유행 중 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람들은 단편적인 사건 이상으로 스타의 맥락을 새롭게 연결했다. 비의 활동 중 '깡'과 같은 느낌을 주는 노래, 연기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했다.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2010년 이후의 비의 행보였다. 2010년 이후의 비가 보여준 감성은 2000년대 이전의 뉴트로와 2010년대 이후의 트렌드가 아닌, 그 사이의 애매한 익숙함이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모습들 중 '깡'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적으로 연결했다. 그의 성공적인 과거의 모습보다는 진지한 실패를 모아 희화화했다. 또한, 그가 작품에서 보여주는 자만, 귀여움, 오빠에 대한 집착, 스타성에 대한 자부심 등을 존경과 선망보다는 철 지난 장난꾸러기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해석들은 하나의 맥락으로 모여 비의 새로운 캐릭터로 공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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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깡팸



이렇게 비의 밈이 퍼지던 중,  비의 '깡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비의 새로운 팬덤을 자처하고 나섰다. '깡팸'은 비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고 그 관점을 공유하는 사람들이었다. '1일 1깡'을 하면서 유튜브 댓글창에서 만나던 사람들은 급기야 오픈 카톡을 만들며 본격적인 사회적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일반적인 팬덤과는 다르게 밈을 공유하기 모였으며, 비의 현재 활동보다는 밈의 확장과 재생산에 집중했다.


유튜브에서는 댓글을 통한 개인적인 참여, '좋아요'를 통한 불특정 다수의 참여로 활동이 이루어졌다면, 오픈 카톡에서는 커뮤니티의 성격을 띤 활동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오픈 톡방에서 그들만의 규칙과 문화를 만들어 밈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밈을 기반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종종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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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팸'은 비의 팬카페인 '구름'과는 다르다. 비를 싫어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이들의 애정은 기존 스타에 대한 시선과는 다르다. 비를 아이돌로 보진 않지만, 비에 대한 애정으로 관심을 둔다. 비의 화보보다는 유튜브 캡처를 통해 짤방을 공유하지만, 비의 근황과 작품 활동 소식을 공유하며 관심을 이어나간다. 깡팸은 수용자 스스로 재해석한 캐릭터의 팬덤이기 때문에 자체적인 콘텐츠의 생산이 이루어진다. 또한, 연령대는 비의 전성기를 지켜본 30대가 아닌, 비에 대해 처음 관심을 두는 20대이다. 심지어 유튜브의 영향으로 10대 유입 또한 늘어나고 있다.



5. 희화화 팬덤



콘텐츠는 소비하는 사람들의 규모로 가치가 부여된다. 팬덤의 크기가 클수록 스타의 수익은 증가하며 활동도 활발해진다. 엔터테인먼트의 사업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팬덤이다. 팬덤은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소비하며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팬덤은 스타에 대한 선망과 꿈꾸고 동경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소비한다. 팬이 되는 건 일종의 자아실현 욕구를 투영한 스타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스타의 설계는 우상적 이미지를 구축한다. 스타의 건강함, 자아실현, 열정, 노력 등을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대중들은 그러한 의도를 해석하며 소비하고 팬덤을 형성한다.


하지만 팬덤은 자발적으로 모인 주체다. 그래서 제작자는 팬덤의 모든 형성과정을 통제할 수 없다. 스타의 이미지는 항상 의도대로 전달될 수는 없다. 일부 사람들은 스타에 대해 싫어하는 의도를 가질 수 있다. 쉽게 말해 안티팬이다. 그들은 스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공유한다.


몇몇 사람들은 스타를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선망과 미움의 기준이 아닌 재미와 희화화의 방식으로 스타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 관점은 팬이나 안티팬과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 스타의 입장에서는 진지한 무대나 작품이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희화화하며 재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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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 부여하는 캐릭터는 박효신의 '대장'과 같은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도 있지만, 김장훈의 '숲튽훈'같이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가 부여되기도 한다. 사실 코미디언이나 예능인이 아닌 이상, 가수나 연기자가 희화화된 이미지를 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스타는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데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


김장훈은 '숲튽훈'이라는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숲튽훈'은 김장훈의 소리 지르는 창법을 두고 생겨난 인터넷 밈이었다. '숲툱훈'이란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점점 커져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실제로 김장훈의 콘서트에는 10대 팬들이 와서 '숲튽훈'이 등장하는 때만을 기다리는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이미지를 긍정적인 관심으로 받아들여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깡팸'도 희화화된 팬덤이라고 볼 수 있다. 비는 아마 이러한 이미지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차에 타봐'와 '깡' 비하인드 영상은 유튜브에서 내려가거나, 댓글이 차단되기도 했다. 스타가 희화화된 이미지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큰 리스크가 존재할 것이다.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인식은 전성기 시절의 연기자와 댄스가수의 이미지와는 멀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터넷의 새로운 이미지를 얻은 스타들의 성공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을 연기했던 김영철 배우는 '사딸라'라는 밈을 광고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요즘 부상하고 있는 김응수 배우 또한 '타짜'에서 곽철용 역을 통해 인터넷에서 새로운 인기를 얻는 중이다. 새로운 이미지를 활용하는 과정은 스타의 역할도 중요하다.


밈을 통한 이미지는 인터넷 세계에서 얻은 새로운 원동력이다. 전통적이었던 비의 팬층이 아닌 10대, 20대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은 지속적이고 파급력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 케이블에서 연기자의 활동을 이어나가는 비에게 '깡'의 이미지는 인터넷의 또 다른 확장이다. 세대와 경로가 다른 새로운 이미지를 통해 비의 활동에 또 다른 기회가 탄생할 수 있길 바란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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