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썰썰] 다시, 살아

고독으로 죽어간 나의 것아.
글 입력 2019.08.1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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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화초를 참 좋아하신다. 내가 교복을 처음 입던 날부터 학사모를 벗던 날까지, 거실 한쪽을 채운 화분들은 한번도 푸른색을 잃은 적이 없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내가 이불에서 밍기적 댈 때, 부지런한 자의 정성 어린 아침 이슬을 받은 덕이다. 그럼 나는 느즈막이 주린 배를 쓸며 방을 나선다. 화분 속 흙은 촉촉이 젖어 색을 바꿔 입었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화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할머니와 달리 나는 식물 기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딱히 어떤 생각도 없었다는 게 맞겠다. 그냥 있으면 있는 거지, 뭐.

난생처음 식물을 길렀다. 대학교 졸업 전시회에서 화분 두 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동생이 준 스투키였고 다른 하나는 고등학교 친구가 준 이름 모를 작은 화초였다. 동생이 준 스투키는 물을 오랫동안 주지 않아도 산다고 해서 마음에 들었다. 귀찮음이 많은 내게 딱인 식물이었다. 그 말대로 침대 맡 탁자에 두고 가끔 돌아보면 여전히 청량한 자태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게다가 미세먼지에 좋은 공기정화 능력까지 갖췄다고 하니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나.

친구가 준 화초는 옹기종기 모인 잎사귀가 나름 귀여워서 눈에 자주 띄는 곳에 두고 싶었다. 고심 끝에 컴퓨터 책상에 두기로 했는데 그건 꽤 좋은 선택이었다. 글을 쓰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도 바로 옆의 화분을 쳐다보면 눈이 편해졌고 덩달아 기분까지 정화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이 녀석도 여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손바닥만 했던 녀석이 어느새 한 뼘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사실 컴퓨터가 있는 책상은 햇살이 비스듬히 드는 구조여서 이곳에 화분을 놓으면 며칠 내로 말라비틀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오히려 녀석은 햇빛이 강하게 내리비치는 베란다에 놓기엔 너무 작고 여려서 햇살과 그늘이 적절한 비율을 띄던 이곳이 최적의 장소였다. 번식력이 어찌나 좋은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가지를 뻗어냈고 푸릇한 빛을 띠었다.

꽤 성심성의껏 돌보았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물도 잊지 않고, 시든 잎은 그때그때 떼어내고. 이름도, 애칭도 없었지만 이따금 눈길을 보내 그 변화를 관찰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풍성하게 자란 녀석에게 기특하다 칭찬을 보냈다.

요즘엔 단지 관상용을 넘어 ‘반려’라는 이름으로 식물과 함께 살아간다고 한다. 식물엔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반려 식물'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할 줄이야. 그제야 10년이 넘게, 아니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새벽같이 화분에 물을 주었을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것은 할머니에겐 하루의 시작이자 노력의 결실이었을 테다. 직접 키워보니 알겠다. ‘반려’라는 이름을 단 식물이 내게 애교를 부리는 일은 없었으나 그는 매일 같이 속삭였다. 수많은 가지 사이로 새로이 태어난 제 성장을 자랑하고, 물을 준 나의 노력에 감사했다. 그리고 되새겼다. 선물해준 친구의 마음과 지난날 우리의 추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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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컴퓨터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가 말라비틀어진 화분을 발견했다. 혈기왕성하게 뻗었던 가지들은 어느새 힘을 잃고 이쑤시개만도 못한 맥아리로 고개를 처박았다. 중력을 이기지 못한 채 아래로, 아래로. 수분 한 점 찾을 수 없는 메마른 흙과 나뭇잎이 척박한 사막 같다. 오랫동안 관심받지 못해 까매진 잎사귀. 피가 돌지 않아 썩은 시체가 저런 색일까. 지난날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결과는 아무 냄새도 남기지 않고 죽어가고 있었다. 처량하고 쓸쓸한 고독을 벗삼아 어떤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빛을 잃었다. 간신히 매달린 저 파삭한 부스러기가 나의 방심을 꾸짖고 원망한다.

쿵-. 떨어지는 심장을 안고 침대 맡에 있던 스투키를 살폈다. 역시나. 곧게 뻗은 그의 자랑은 색도 잃고 희망도 잃었다. 되돌릴 수 없이 쪼그라들어 잘려 나가기만 기다리는 그의 일부. 스스로 떨궈버리는 컴퓨터 책상 위의 아이와 달리, 쓸데없이 질기고 단단해서 저 스스로 뿜어내지도 못했다. 왜 녀석들의 존재를 잊은 거지? 왜 물을 주지 않았어? 어째서, 어째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급하게 퍼부은 물속에 모래 알갱이가 표류한다. 왜 이제서야 바라본 거냐 시위라도 하듯 알갱이 사이사이로 빠져나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찬란한 색을 잃은 이의 눈물이 강을 이루면 나는 그때서야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화분을 내 쪽으로 끌고 오다 발견했다. 죽어가는 화분 사이로 돋은 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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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너흰 어쩜 생명이 꺼지는 순간까지 내게 말을 걸었니. 애석하게도 나는 네가 죽기 직전에야 너의 뜻을 알았다. '관용'. 너는 내게 관용을 베풀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 내가 네가 줄 것은 관심밖에 없는데. 그 마저도 주지 않았는데.

나는 네가 죽기 직전에야 너의 이름을 알았다. 쉐플레라 홍콩야자. 너는 그런 이름을 가졌구나. 고독으로 죽어간 나의 것은 '행운과 함께 하는 사랑'을 선물했구나.

축 처진 잎사귀가 발끝까지 마음을 떨군다. 바닥에 떨어진 네 생명의 잔해가 이토록 처연한지 미처 알지 못했다. 너의 영롱한 생기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간과하였다. 이 헛헛한 무상함을 무엇으로 보상할까.

빠져나가는 불씨를 붙든다. 염치없지만, 나는 네가 살기 바란다.
다시, 살아. 살아보자.






산세베리아 스투키의 꽃말 : 관용
쉐플레라 홍콩야자의 꽃말: 행운과 함께 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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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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