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천장 없는 극장,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공연]

글 입력 2019.08.1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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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차츰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문화비축기지를 찾았다. 마포구 상암동의 문화비축기지는 2019 서울건축문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 공간으로, 석유비축기지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잘 알려졌다.


멀리서 보이는 탱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지 기대가 되었다. 티켓 줄이 길지는 않을까 우려하며 3시 정각에 티켓 부스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평일에 찾아서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월드컵경기장 내의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식사를 한 후, 공연 시간에 맞추어 다시 문화비축기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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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탱크의 외관


문화비축기지의 공간은 T1부터 T6까지 이름이 붙은 건물들과 나무 데크, 잔디 무대, 설비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각의 건물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여러 공연을 관람하더라도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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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관람한 공연은 ‘지구 옆 동네’라는 아티스트 그룹의 ‘춘향뎐 ver. 마포’였다. 마당극인 만큼 야외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거리에서 사물놀이와 만담을 하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나무데크로 이동하여 극을 관람하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춘향전의 인물을 현대화했는데, 헤드폰과 비니를 쓰고, 테크웨어를 입고 있는 춘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관람객의 뒤에서 등장하기도 하고, 언덕 아래에서 가마를 타고 등장하기도 하는 배우들을 보며, 공간에 맞게 준비를 많이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준급의 연기뿐만 아니라 독무나 군무까지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축제에 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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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간 곳은 원통형으로 천장이 뚫린 T6였다. 전날 비가 온 후여서 그런지 하늘은 더욱 맑았고, 구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관람한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미래, 도시’라는 공연은 아주 독특했다. ‘Job on loan(자본론)’, ‘Adam’s miss(아담스미스)’ 등 사회 구조와 개인 사이의 문제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공연들을 해왔다는 설명을 듣고 어떤 공연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곳곳에 도화지와 크레파스가 놓여 있었고, 여기에는 공연을 보며 떠오르는 어떤 것이라도 그릴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그림들은 공연 이후 설비동에서 전시될 계획이라고 하셨다.


공연은 둘의 만담 같은 토크, 실로폰과 기타 연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토크의 내용은 미래에는 무엇이 생겨나고 무엇이 없어질지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도 듣지 않으려 하므로 귀는 사라질 것이고, 아무도 깜빡이를 켜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동차의 깜빡이가 사라질 것이라는 상상 등이 있었다.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미래 도시에 관해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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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는 홈페이지에서 공연의 제목을 보고 너무나 궁금했던 ‘느리게걷기X14squad’의 ‘끝따라는 딴까지간다’를 관람했다. 교묘하게 앞글자를 바꾼 제목과 ‘딴따라’라는 단어에 담긴, 예술가를 향한 시선이 궁금해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공연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장을 한 배우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모든 배우가 무대에 앉아 있었는데, 일부러 리허설을 하는 것인지, 공연을 하는 것인지 헷갈리도록 연출한 것 같았다. 공연은 제목처럼 ‘딴따라들이 끝까지 가는’ 내용의 음악극이었다. 연습하지 않는다고 감독에게 혼나기 일쑤였던 6명의 배우가 각성한 후 최선을 다해 달리는 내용이다. 어떤 광기에 휩싸인 듯한 배우들의 열정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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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휴식을 취할 겸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역대 포스터와 사진들을 전시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아카이브 전시 : 1998-2019’를 찾았다. 정각에 맞추어 전시를 방문하게 되어 운이 좋게도 전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 홍대, 월드컵경기장, 그리고 문화비축기지로 옮기기까지 프린지페스티벌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처음 월드컵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겼을 때 ‘홍대에서 굴러온 돌’이라는 의미를 담은 2015년의 포스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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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관람한 ‘가상의 대학극회’의 ‘취하지 않음’은 페스티벌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연극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형식의 연극으로, 연극이 끝난 후 회식이 이뤄지고 있는 식당 앞에서 동아리 원들이 담배를 피우며 그동안 숨겨왔던 속내를 드러내는 내용이다.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도 했고, 대학교 동아리가 주인공이 되어서인지 더 마음이 갔다. 모두가 불편함을 안고 공연을 꾸려나가지만, 누군가는 그 불편함을 말하고, 누군가는 쉽게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는 상황과 그 이유가 공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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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프로젝트三’의 ‘동하다’를 관람했다. ‘춘향뎐 ver. 마포’와 마찬가지로, 공간에 맞게 잘 설계된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조명과 향기, 곳곳에 있는 기둥까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역동적인 동작들이 생명력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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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페스티벌 측에서 준비한 방석


축제 전체를 돌아보면, 관람객들을 위한 소소한 배려가 엿보였다. 개인 방석을 지참하라는 공지가 있기는 했지만, 막상 공연장에 가 보니 방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스태프와 인디스트들은 모두 친절하게 공연 안내를 해 주셨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 입장이나 퇴장이 자유로웠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홈페이지의 설명이다. 축제 당일 받은 프로그램 북에는 보기 좋게 가로축이 공연장, 세로축이 시간인 시간표 형식으로 공연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홈페이지에서는 시간대별 공연을 한눈에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프로그램 북에 쓰여 있는 공연의 장르(연극, 음악, 전시 등)가 역시 홈페이지에는 게재되어 있지 않아 불편했다.


그래도 방문 당일 프로그램 북을 통해 정보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축제를 즐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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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옆 산장처럼 꾸민 휴식공간


황량한 상암동에서 먹을 것을 걱정하는 관람객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후원한 사람에 한해 이용할 수 있는 프린지 살롱에는 샌드위치 등 요깃거리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혹 식사가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월드컵경기장 내 푸드코트를 이용해도 좋을 것 같다.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독특한 형식과 주제의 공연예술, 특히 연극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추천한다.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경험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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