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너무 일찍 스무 살이 되어버렸다 [문화 전반]

'활발함'을 강요하는 사회
글 입력 2019.08.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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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때부터 ‘나름’ 공부를 잘해오고, ‘나름’ 활발하여 학급 임원 경험도 다수 있었으며, ‘나름’ 친구 관계를 포함하여 학교 생활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입학하여, 또 ‘나름’ 잘 살아내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스무 살’, ‘새내기’라는 푸릇푸릇하고도 아름다운, 그 당시 내 나이를 정의했던 프레임들은 동시에 나를 옭아매는 도구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그저 주어진 틀 안에서 항상 열심히, 무난하게 살아왔던 나는, 그래서 그 속의 자신과 틀 밖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수많은 내적 혼란과 인지부조화를 맞닥뜨려야 했다.


그런 혼란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나의 굴 속으로 숨어서 일기장에 글을 쓰며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중 몇 가지 생각의 조각들을 독자들께 소개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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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함을 강요하는 사회 – ‘인싸와 아싸, 나는 그 어디쯤일까?’


대학에 처음 들어와서 가장 크게 피부에 와 닿았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학생 사회에서는 ‘활발함’이 ‘강요’라고 느껴질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사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매 학년마다 회장을 도맡아 해오고, 나름 ‘리더십’깨나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원래 해오던 것처럼 새내기 새로 배움터, 개강 파티, 번개 등에서 특유의 활발함과 사교성 모드를 장착하고 행동하였다. 그 결과는 일면식이 있던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서 ‘인싸’라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인싸’생활을 몇 개월간 해오다 보니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었다.



1) 나는 개인 시간(‘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나는 특히 1)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개인 시간에 하는 여러 가지 일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휴식과 자기 계발이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공간에 누워 복잡한 머리를 비워내는 시간을 가지고, 운동을 하거나,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근의 중요한 일들을 기록하며 반추하는 시간을 가지는 일 등이다.


매일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와 이름과 소속을 밝히면서 – 즉 관계의 완전 시작부터 – 이야기를 하고,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일상이 반복되며 많은 지인과 여러 술자리들을 얻었지만 그 결과 시간적, 체력적 부족으로 1)을 통째로 잃어버렸고,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내적으로 얻는 것 없이 허울만 좋은 빈 껍데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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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인 시간만큼 가까운 사람(가족, 친한 친구)과의 밀도 높은 만남 시간에 안정감을 느끼는 타입이다.


1)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만’ 만나는 것이 영양가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할 때쯤, 나의 지난 20년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언제나 나를 정서적으로 든든히 뒷받침 해주던 가족들은 여러 약속을 핑계로 함께 저녁을 먹은 지가 손에 꼽을 수 있게 되었고, 학창 시절 내내 함께한 든든한 친구들은 대학 사람들과의 술자리를 핑계로 약속 한 번 잡기 힘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왁자지껄한 술자리와 매일 생성되는 새로운 지인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1년 반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새로운 사람을 여럿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또 다시 오래 볼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어떠한 인간관계를 지향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2)의 교훈은 중요했다.



3) 나는 생각보다 활발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3)은 1),2)의 생각을 갈무리 해오며 다다른 결론에 해당한다.


새내기 시절 소위 말하는 ‘인싸’ 생활을 해오며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 본 나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에 대하여 이제야 감이 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난했던 학창 시절에 가려 그냥 남들이 좋다고 해주면, 잘한다고 해주면 그게 내 모습이겠거니 생각하던 순간들이 얼마나 자기 본연의 모습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멀어져 가는 사고방식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즐기고, 가까운 지인들과 밀도 높은 시간을 가지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나를 바라보며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들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나의 본연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활발함’이 ‘강요’라고 느껴질 만큼 중요시되는 사회이지만, 활발함으로 포장되지 않는 나의 특성과 그것의 장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활발함과는 결이 다른 스스로의 무기로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너무 일찍, 스스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 채 20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스무 살은, 스스로를 여러 좋은 가면들로 치장했던 내가 이것들을 벗어버리고 나에게 맞는 옷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소중한 탈바꿈의 과정이었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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