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탈코르셋이 대체 뭔데? 그 명쾌한 분석 - 탈코르셋 선언 [도서]

여성성으로부터의 과감한 탈주
글 입력 2019.08.1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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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즈니의 행보가 흥미롭다. 백설 공주와 신데렐라에서 자스민과 뮬란으로 변화한 공주들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백마 탄 왕자님과 갸륵한 미소를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디즈니의 독자적 변화라기보다는 시류의 반영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더불어 디즈니의 행보가 변했다 하여, 디즈니가 여자 아이들의 유년 시절을 아름다운 공주로 조각했다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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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 더 논해보도록 하자.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분홍색 장난감을 선물 받고,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여자아이는 공주 놀이에, 남자아이는 자동차 놀이에 빠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10대가 되면 여자아이는 화장과 꾸미기에, 남자아이는 운동이나 게임에 흥미를 가져야 하고.


너무나 진부한 성별 이분법적 육아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10대 여자아이들이 화장을 하고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 비단 아이들의 탈선 욕구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 화장과 짧은 치마가 미의 기준이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그것을 아이들에게 알려 준 사람은 누구일까.


디즈니가 공주의 틀을 깨고 있다는 사실이 기꺼운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자스민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여자아이와 신데렐라가 결혼으로 신분상승하는 스토리를 보고 자란 여자아이는 분명 차이가 있을 터다. 단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고정관념으로 아주 조금 벗어났을 뿐이지만 그 효과는 무시할 수 없는 크기로 돌아온다. 나에게, 당신에게, 그리고 후대의 아이들에게. 나아가 이 사회에게.


인터넷상에서 ‘탈코르셋’ 논의가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 잡은 후, 화장품을 부수거나 치마를 버리는 여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상의 혁명 – 탈코르셋 선언’은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을 대표하는 운동으로 자리매김한 탈코르셋을 페미니즘 철학자의 시각으로 깊이 들여다본다. 탈코르셋의 시작과 의의, 논란과 해답까지 철학적으로 분석하며 탈코르셋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탈코르셋? 그게 뭔데?



탈코르셋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래디컬 페미니즘, 메갈(사이트가 사라진지 한참이지만 아직까지도 페미니스트들이 ‘메갈’로 조롱 받는 이유는 무얼까.)과 같은 무서운(!) 페미니즘이 떠올라 뒷걸음질 치게 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탈코르셋의 의미부터 짚고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남성’이라는 인식주체의 욕망과 그 시선에 의해서 규정되어 왔습니다. 각종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섹시하고 어리고 파릇파릇한 여성의 몸은, 스스로가 발화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 항상 남성들의 욕망과 욕구에 화답하는 대상으로서 재현됩니다. 우리의 인식 안에서 여성의 몸은 남성 욕망의 시선이 관통하고 분할하고 침습하는 영역으로, 늘 스스로의 언어를 봉합당한 채 즐비하게 전시되어 왔습니다. (17쪽)



가부장제 아래서 정의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순종적이고 아름다운, 가녀리지만 아이는 잘 낳을 수 있는, 성적으로 매력적이지만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여성이 가부장제가 지향하는 여성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남성들이 규정한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 하에서 자신을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지냈다. 결국 여성의 몸과 여성성은 그 자체로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시선에 의해 평가되고 조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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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이다. 이 책에서는 ‘여성이 무가치한 몸으로 전락하지 않고자 의무적으로 수행하던 일체의 꾸밈노동을 집단적으로 보이콧하는 행위’로 정의한다(24쪽). 남성이 만들어낸 허구적 여성성에 몸을 끼워 넣던 여성들이, 그 여성성에서 탈피하여 오롯하게 자기 자신으로 서기 위해 코르셋을 벗어 던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을 ‘탈지층화’ 개념과 연관시켜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탈코르셋은 가부장제라고 하는 견고한 지층을 뒤흔들고 무너뜨리기 위한 행위라는 것이다. 남성의 성애적 대상으로 규정되어왔던 여성의 몸에서 벗어나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새로운 주체를 설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탈코르셋의 목표이자 의의이다.




꾸밈노동과 예쁠 자유



탈코르셋 논의에서 가장 의견 충돌이 잦은 부분이 꾸밈노동이 아닐까.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는 건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투자다, 혹은 꾸미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화장을 할 뿐 남자들 때문에 립스틱을 바르는 건 아니다, 와 같은 의견이 적지 않다. 나 역시 원피스와 화장은 단지 나의 취향일 뿐 타인을 위한 행위는 아니라고 굳게 믿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은 브루디외의 이론을 활용해 여성의 꾸밈노동이 어떻게 취향으로 인식되는가에 대해 논한다. 브루디외는 개인의 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그 개인의 성별, 사회적 위치, 경제적 계층, 교육환경 등 다양한 배경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의 취향이 분홍색과 프릴, 화장, 마른 몸매로 귀결되는 과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분석해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디즈니의 백설 공주와 신데렐라를 보고 난 후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도 저런 예쁜 공주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엘사의 옷 디자인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전국의 부모님들이 탄식을 토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내가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저 텔레비전 속 예쁜 언니까지, 아이들의 롤 모델은 끝없이 늘어나고 이는 곧 아이들이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다시 말해 복잡하고 다양한 화장기법, 애교의 기술, 완벽하고 날씬한 몸매의 기준, 여성스러운 태도들의 내면화는 여성을 순종적이고 유약하며 무해한, 가부장제 순응에 최적화된 계급으로 길러내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 반면 탈코르셋 운동은 화장하기, 외모 꾸미기, 긴 머리, 여성답게 행동하기 등과 같은 여성의 아비투스 도식에 일종의 거대한 ‘탈주선’을 그려나가는 동시에 기존의 고정화된 여성성에 대한 ‘탈영토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78쪽)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할 동안 남자들은 근육을 키우지 않느냐, 등과 같은 논리가 성립할 수 없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여성에게는 지나치도록 각박한 미의 기준이 남성들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긴 머리를 관리하며 화장을 할 동안 남성들은 그러한 노동에서 자유롭기에 자기계발에 집중할 수 있다. 나아가 남성에게는 ‘강인함’을 표방하는 근육 몸매가 어째서 여성들에게는 ‘징그러운 몸’으로 인식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성은 여성의 취향이 아니다. 가부장제의 취향이다.




탈코르셋, 너무 과격한 전체주의가 아닌가?



화장품을 부수고 원피스를 내다버리는 행위가 SNS상에서 불길처럼 퍼져서 그런지, 일부에서는 탈코르셋 운동이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 지적을 타고 올라 마주할 수 있는 감정은 혐오나 불만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게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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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약은 불편함이 뒤따르듯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갖는 감정은 상당히 이중적이다. ‘레이디 퍼스트’ 따위의 문구를 내걸며 ‘나는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은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어’ 식의 숭배(여성은 원한 적 없는), 그리고 ‘나는 여성을 충분히 존중했는데 뭐? 투표권? 세상이 말세다!’와 같은 공포심. 탈코르셋 논의에 엮인 논쟁 역시 이러한 맥락을 띤다.



그런데 이제껏 우리는 여성들을 짓누르던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성성’이라는 단 하나의 획일적 규준에 대해서는 전체주의적이라거나 아름답지 않은 여성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해오지 않았습니다. 반면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나는 동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는 이 주제나 운동 당사자들에 관한 온갖 논쟁과 조롱, 공격과 비난이 넘쳐났지요. (...) 왜냐하면 짧은 머리를 하고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성 수행 방식에 대한 반란자들이자 이 억압적 사태에 ‘동참하지 않음’을 선언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전히 꾸밈노동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윤리적 불편함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98~99쪽)



탈코르셋의 지향점은 여성이 남성성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여성과 남성을 편 가르기 해왔던 가부장제의 지독한 이분법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다. 여성이 정하지 않은 여성성과 여성이 가진 적 없던 취향으로부터 벗어나, 진정 ‘나’가 원하는 지향점을 새롭게 설정하는 것이 탈코르셋 운동의 궁극적 목표다.


*


완벽하게 화장에서 벗어나고 치마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왜 민낯과 바지를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없이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 온 여성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길이 절대 쉬울 리 없다.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연대’가 아닐까.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더 이상 다이어트 강박과 브이라인 강박에 시달리지 않기를, 그런 잡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진정 원하는 나를 탐구할 수 있기를, 이런 연대의식이 만들어 낼 사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앞서 있을 테다. 더 나아진 내일을 만들기 위해 ‘탈코르셋 선언’이 명쾌하게 분석하는 탈코르셋과 페미니즘을 한 번쯤 접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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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저자: 윤지선, 윤김지영 공저
출판: 사월의책
분야: 인문, 사회
쪽수: 134쪽
값: 14,000원
ISBN: 978-89-97186-81-5 04190


저자 소개

윤지선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공동 진행자, 페미니스트 철학자, 프랑스 현대철학 박사.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2대학에서 철학 학사를, 파리 8대학에서 철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가부장제 의미경제 구조 분석을 통한 인공 임신중절 담론 재고찰」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의 형이상학적 분쇄도」 등 다수의 페미니즘 철학 논문이 있으며 『철학자의 서재 3』의 공저자이다. 대학에서 섹슈얼리티와 페미니즘, 프랑스 현대철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신물질주의 이론에 대한 페미니즘적이며 들뢰즈적인 개념들을 새롭게 제시하며 소수자(동물, 아이, 여성)의 몸 정치학을 제안하고자 하는 연구자이다.

윤김지영
‘페미니즘 철학 세미나’ 공동 진행자, 페미니스트 철학자,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철학 학사와 석사를, 파리 1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페미니스트 철학자로서 프랑스 현대철학 사상과 신물질주의, 인류세 담론 등을 넘나들며 여성 철학의 계보학을 열어가고자 한다. 「가장 첨예한 철학으로서의 페미니즘」 「현실의 운용 원리로서의 여성 혐오」 등 35편의 논문이 있으며 프랑스에서 발간한 저서 『La déconstruction du phallogocentrisme』(남근이성중심주의의 해체)과 단독저서 『지워지지 않는 페미니즘』이 있다.


차례

머리말
1강 탈코르셋 운동이란?
2강 외모 꾸미기는 왜 ‘꾸밈노동’인가?
3강 여성의 몸, 대상이 아닌 역량
4강 외모 꾸미기는 왜 개인적 ‘취향’으로 오인되는가?
5강 오해, 질문, 응답
부록: 코르셋의 간략한 역사 (윤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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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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