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느 고양이 작가의 뼈때리는 인간 통찰 :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글 입력 2019.06.0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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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방법 표지4.jpg
 


[Review] 

어느 고양이 작가의
뼈때리는 인간 통찰

: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글. 김해서



어느 날 동생이 물었다. '고양이들은 왜 성묘가 되면 눈빛이 달라질까? 마치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이 변해.' 거기에 대고 별 생각 없이 '글쎄, 세상을 다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아닐까.'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뱉어놓고도 굉장히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집으로 도착한 책. 그 이름은 바로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이 책은 아주 귀여운 상상에서 출발한다. 원고를 보내온 묘령의 존재가 다름 아닌 고양이들의 스타, '거얀이'라는 것. 그 원고의 내용은 더 놀랍다. '고양이 답게' 잘 살기 위해 어리석은 인간들을 꾀어내는 묘책을 알려주는 글이기 때문이다. 내가 고양이였다면 솔깃했을 법한 지침서랄까.

오랜 길거리 생활로 다져진 영민함과 노련미로 '거얀이'는 자신의 지혜를 아낌없이 책으로 담아내 다른 냥이들에게 지적 울림을 선사한다. 인간과 공존하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으니, 인간을 어떻게든 잘 구슬려 그들의 터전을 접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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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랑하기 그지 없는 이 책은 실제로도 엄청난 애묘인이었다는 폴 갈리코의 작품이다. 24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생활했던 것으로 유명한데, 고양이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다수 펴냈을 정도로 그에게 '고양이'는 아주 중요한 화두였다.

그런데 그 신묘한 존재들과 더불어 사는 동안, 그들의 재간에 웃고 놀라자빠지면서도 내심 자신의 충성스러운 사랑에 위화감을 느낄 때가 있었나보다.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을 읽는 동안 피식거리긴 했지만 오싹한 포인트들도 있었다.


-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다. - p.19

- 인간들은 우리를 고양이로 생각하지 않고, 다리가 네 개 달리고 털이 많은 인간, 약간 신비로운 인간쯤으로 여긴다. 가능하면 인간이 계속 그렇게 여기게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고양이를 고양이가 아닌 존재로 생각할수록 우리 고양이의 실체와 비밀을 들킬 위험이 줄어든다. - p.87

- 만약 장식물을 가지고 놀다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쓰러뜨렸다면, 누가 와서 다시 세울 때까지 소파 밑에 숨어 있는 게 좋다. ‘인간이 화낼 상황에서는 아예 마주치지 않을 것.’ 이것이 우리 고양이가 머릿속에 새겨야 할 마지막 규칙이다. 의심을 살 수는 있지만 증거가 없으면 인간도 어쩌지 못한다. - p.103



Photo by Alexis Chloe on Unsplash.jpg
 

'거얀이'의 통찰력과 처세 능력은 거의 마키아벨리 급이다. 인간의 군주로 군림하기 위해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럴 순 없다. '거얀이'는 어떻게 하면 사랑 받는지, 어떻게 하면 티 나지 않게 인간을 부려 먹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녀석이다.

물론 1964년에 출간된 책이라, 비인간동물의 시선에서 본 여자와 남자의 모습은 다소 시대착오적이긴 하다. 성별 묘사가 굉장히 전형적이다. 아마 요즘 작가가 썼다면 대중들로부터 크게 쓴소리를 들었을 게 분명하다.

아무튼,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고양이가 바라보는 인간의 표상은 상당히 정직한 편. 장점보단 단점이 훨씬 많고 우유부단하며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욕심까지 많은 인간들. 이런 취약한 개체들을 이용해 먹기란 얼마나 쉬운지.

'거얀이'가 쓴 책이라(?) 책이 그리 두껍진 않다.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킬링 타임으로 휘리릭 해치웠다. 어차피 결국 사람이 쓴 글이라 생각한다면 김 새고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고양이의 볼록한 주둥이, 아니 통통한 앞발에서 나온 이야기라 생각한다면 몰입감은 달라질 것이다.

어쨌거나,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영리하다더라도 우린 그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 것이고 우린 순순히 그렇게 살 숙명일지니.





멍청한 인간들과 공존하는
몇 가지 방법
- The Silent Miaow -


지은이 : 폴 갈리코

옮긴이 : 조동섭

출판사 : 윌북

분야
에세이

규격
150*190

쪽 수 : 184쪽

발행일
2019년 5월 10일

정가 : 13,800원

ISBN
979-11-5581-221-1 (03840)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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