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람]

무거웠던 어른의 무게를 가뿐히 감당했을 때,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글 입력 2019.05.21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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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과 스물세 살의 무게
 
어제는 성년의 날이었다. 대학가 근처의 여자아이들은 장미꽃 한 송이씩을 손에 든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자신이 어른이 됐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일까. 이를 보니 3년 전, 나의 스무 살 시절이 떠올랐다.

비로소 내가 어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낀 설렘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때는 가장 거창했고, 가장 단순했다. 어른으로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대게 부모님 허락 없이 찜질방 가기, 밤새 술 마시기, 1박 2일로 여행가기 등과 같은 아주 소소한 일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당장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와 같은 고민은 뒤로 미루었다.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어른과 보호받을 명분이 주어진 학생의 신분 사이를 마음껏 즐겼던 것 같다. 이처럼 스무 살이었던 내게, 어른은 꽤 가벼운 무게였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깃털처럼 가벼워 느껴지지도 않았던 어른의 무게가 조금씩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저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절은, 동시에 모든 것을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에 결정한 선택이 옳은 것인지, 스스로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으며 지난 선택들을 하염없이 자책하기도 했다.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르기에, 선택 후 이어지는 비난과 상처 또한 오로지 내 몫이었다. 이러한 나날들이 지나자, 어른의 무게는 짊어지기 어려운 배낭가방처럼 내 앞에 놓여 있었다.


‘당장 택시를 세워

이 무거운 배낭을 실어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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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른의 무게가 더 가벼워질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한 끝에 택시처럼 힘들이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이는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어머니의 울타리였다. 이처럼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 그날 나는 어머니께서 짊어지고 있는 어른의 무게를 보았다.

어머니께서 지신 무게는 꽤 무거워 보였지만, 어머니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이를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내게 주어진 무게를 짊어진 채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 또한 나와 같은 시절, ‘열심히’가 아닌 ‘잘’ 해야 함을 강조하는 냉정함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안함을 마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무게를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았고, 끝내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녀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 세상을 오롯이 감당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른으로서.



이상적인 어른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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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웠던 어른의 무게를
가뿐히 감당했을 때,
어엿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내 앞에 놓인 ‘어른’이라는 글자가 버거울 적엔, 때때로 이러한 생각에 젖어 들곤 했다. 열다섯에는 스무 살만 되면 당연히 어른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에 이르렀을 때는, 어른의 기준이 너무 엄격해져 있었다. 화가 나면 분노보다 대화로 대처하는 것, 고난 속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어떤 상대를 만나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는 것 등 내가 정한 어른의 기준은 다양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어른이 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기엔, 나는 너무 미숙한 존재였다. 열다섯의 나처럼, 현재의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열다섯 살의 내가 스물세 살의 나를 꿈꾸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느덧 몸만 큰 나를 마주하는 것이 무서웠다.

한때 ‘자신이 생각하는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동안 다양하고 이상적인 어른의 기준을 수도 없이 정해왔지만, 막상 대답하려니 막막했다. 이처럼 내가 정한 어른의 기준들이 과연 정답이 맞는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여전히 아이 같은 내가 함부로 어른을 정의할 수 있을까. 지금 다시 이 질문을 받아도 선뜻 확실한 정답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내가 마주한 세상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만난 어른들이 살았던 곳을, 나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견디다 보면 누군가에게 어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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