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의 이유', 두려움 없이 나아갈 아침을 기약하며 [도서]

글 입력 2019.05.2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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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영혼의 군살을 빼고 근육을 다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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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의 의의가 '일상을 여행처럼' 만들어주는 데에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상태, 즉 일상의 따분함과 고루함에 침체되어 더 이상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상태에 이르면 나는 인터넷을 뒤져 비행기 티켓을 끊는다. 티켓을 끊은 후에는, 비행기를 탈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남은 일상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들이마신다.


그렇게 여행의 날짜에 당도해 훌쩍 떠나고 나면 처음엔 무더운 여름 땡볕 아래 시원한 바다로 뛰어든듯 상쾌하고 가뿐하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며 설렘도 조금은 무뎌지고,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여행과 일상의 구분 자체도 모호해지고 만다. 그 끝자락에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캐리어를 끌면서 공항을 나와 집으로 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을 다녀온 뒤의 일상은 그 전과는 분명 다르다. 영혼의 군살을 빼고 근육을 다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에 대한 미움도 조금은 수그러들고, 반복되는 나날들에의 환멸도 줄어들며, 사소한 이벤트에도 웃음이 절로 나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담뿍 담아 건네고 싶은 이상한 생동감이 나를 감싼다. 여행을 하는 동안 분명 길도 잃고, 이방인에게 속을 뻔 하기도 했는데도 여행지에서의 기억은 모두 미화된다. 내가 그 기간 동안 했던 경험들이 꿈만 같아서, 잊지 않기 위해 자꾸만 머릿속에서 리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된다. 타지에서의 며칠이 그토록 행복했듯, 일상 속의 나도 여행에서처럼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여행을 간다. 중고등학교 때는 돈도, 시간도, 부모님의 허락도 얻을 수 었었기에 갈 수 없었지만,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1년에 한두번은 꼬박꼬박 배낭을 맸다. 3박 4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든, 2주가 넘는 긴 여행이든 내게는 우주인의 산소통만큼이나 소중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여행이 나에게 갖는 의미는 이토록 큰 것이라서, 김영하 작가의 신작 '여행의 이유'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의 무의식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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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채 자기 자리에 착석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中


두 시간 만에 순식간에 이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어 버렸다. 아주 맛있는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사람처럼, 왠지 모를 포만감과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작가의 무의식 세계를 탐험하고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가 생각하고 꿈꾸는 여행에는, 김영하 작가의 인생이 통째로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책에 제시된 여행의 속성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위에 인용했듯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라는 속성이었다. 김영하 작가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잦은 이사로 몇 번이고 학교를 옮기는 '강제 이주'를 경험했다고 한다. '누군가와 오래 알고 지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그의 고백이 마음 아팠다. 어차피 헤어질 테니까,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고 친구의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었다는 말. 그래서 어린 시절에 그토록 여행기에 천착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여행기의 주인공들이 낯선 공간에서 성공적인 모험을 해내듯이, 자신도 새롭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그런 그에게 대학 졸업 후 떠난 유럽으로의 배낭 여행은 '이주'가 아닌 '여행'이었기에 특별했다. 강제 이주를 했을 때의 당혹감이 여행에는 없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고, 원하는 기차를 탔으며, 희망하는 방식대로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내내 그를 괴롭혔던 것은 환경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이었고, 유럽 여행에서 그가 다시 되찾은 것도 삶에 대한 소유권이었다. 과거에 대한 회한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없는 - 그렇기에 오롯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순간들의 총합이 여행이었다.



2016 겨울, 생애 첫 유럽의 기억


2016 12월 중순에, 나는 밤새워 보고서를 제출한 뒤 새벽 비행기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끊은 애매한 시간대의 비행기였다.

그 때의 나는 진로 고민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밤에도 한참을 다른 생각으로 지새우다, '별 하나 별 둘'을 속으로 세며 잠을 청하기 일쑤였다. 당시 가장 좋아하던 노래는 '이승열-날아' '윤종신-오르막길' 등의 희망찬 노래들이었으나 가사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시도는 우울의 적막 앞에서 무력해질 때가 많았다.

처음 파리 시내에 내리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담한 사이즈의 건물들이 늘어선 가운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드넓은 평지가 눈 앞에 펼쳐졌다. 자줏빛 노을이 거리 곳곳에 묻어 있어, 파리의 겨울은 왠지 애상적으로 느껴졌다. 갓 한 편의 슬픈 소설을 다 읽고 눈가를 훔칠 때처럼, 나는 이유 모를 적적함과 눈물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꼈다.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일조차 생경했다. 그 동안 알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평행우주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낯선 공간이 현실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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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혼자서 유럽을 가겠다'는 나름 거대한 결심을 내린 것은, '홀로 서는 법'을 지금부터 연습해야만 한다는 내면적 압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이후의 숱한 연애들을 통해, 내 마음 안에 오래 전부터 패여 있던 구멍이 있으며 그 구멍은 사람을 통해서도 채워질 수 없음을 확인한 터였다. 어떻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구멍을 메울 수 있을지는 알 길이 없었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게 필요한 흙과 삽은 어느 누구의 손도 아닌 내 손에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그랬듯, 나 역시 이 여행에서 오롯이 '현재'를 맞이할 수 있었다. 낮에는 헤밍웨이가 들르고는 했다던 역사가 숨쉬는 카페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밤에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과 맥주를 한 잔 기울이기도 하면서 나는 조금씩 여행에 익숙해졌다. 너무도 행복해서, 내가 그 행복에 길들여지는 것이 무서울 정도였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판단하지도, 나와 인연을 지속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 점이 좋았다. 나를 평가하지 않을 사람들이라 생각되니 더 솔직하게 속마음을 내비칠 수 있었다.

여행이 끝났다고 삶의 답을 찾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관계에 있어 조금 더 용감해졌고, 대학교라는 장막을 걷어낸 삶의 또 다른 단계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그 자신감은 일상으로 복귀한 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삶이 나를 속이는' 기분이 들 때면 그 여행을 떠올린다. 파리의 찬란했던 밤을, 그리고 두려움 없이 나아갔던 아침을.



앞으로 떠날 무수한 여행들을 기대하며


아직 내가 못 가본 무수한 여행지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기대된다. 그 여행을 가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날들을 중압감 속에서도 버텨내야 하겠지만, 원래 낙원은 찰나적이기에 낙원이지 영속적이 되는 순간 지옥으로 변질되고 만다. 책에서만, 영화에서만 봤던 그 곳들을 물질적 세계에서 마주하는 날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하루를 살아간다.

<여행의 이유>에는 아폴로 8호가 보내온 푸르고 아름다운, 수정 구슬과도 같은 지구의 사진이 실려있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고 한다. <여행의 이유>에 등장하는 여행에 대한 수많은 메타포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비유다. 아기가 자신을 닮은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듯, 여행자의 운명을 안고 지구에 태어났기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또다른 여행을 갈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애 첫 유럽이 있었듯, 내게는 생애 첫 아프리카도, 생애 첫 남미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요구되는 노력을 해내는 일은 힘겹지만, 내가 정당하게 번 돈으로 할 수 있을 것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노력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악착 같이 돈을 모을 생각은 없다. 여행을 할 수록 삶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기 때문에, 내게는 돈의 축적보다도 여행의 축적이 더 중요하다.

어쨌든 우리가 삶에서 하는 모든 일들은, 조금이라도 더 사랑받고 더 사랑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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