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적인 예술의 재정의 -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

본질에 충실한, 일상을 향한 일상적인 예술들
글 입력 2019.05.1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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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든 글을 읽기 전에 직접 전시에 가 감상하길 바란다. 너무 좋았다.


전에도 적었지만 작품을 표현하는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전시 또한 표현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있다. 전시의 방향성 즉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거나, 작품의 내용에 따라 관람 순서를 조정해 몰입도를 높이거나, 영상과 체험형 작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전시의 구성을 다채롭게 하거나 등 전시의 매력포인트는 작품 자체만이 아니다. 그래서 보고 나서 “좋았다”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전시의 요인 역시 여러 가지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전시의 내용물 만으로도 너무나 매력적인 전시를 만났다. 작품들 앞에서 한참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다시 설명을 보고 홀린 듯이 멍하니 보기도 했다. 여운이 남는 전시였다. 그리고 그런 전시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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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는 팸플릿에도 명시되어있는 '현대인의 일상'이란 주제를 정확히 그리고 아주 정직하게 관통하는 전시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하나 꼽자면 '공감'할 수 있는 전시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모든 문화와 예술활동 중의 좋은 평가를 받는 것들의 중요한 요인이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작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작품이 창이 되어 그 속에서 작가의 일상 혹은 삶을 들여다볼 수 있고, 더 나아가 다시 거울처럼 우리를 비추고 보여주는 창이 되는 작품들. 그런 작품들은 묘하게 편안하고 깊고 오래가는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그 여운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가 되어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이 전시는 그 점에서 '공감'의 위대함을 정확히 알고 있는 전시였다. 보통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를 가보면, 아무리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도, 신선하고 독특한 방법으로 작품을 보여줘도 하나의 틀이 있다. 바로 '예술'이라는 틀이다. 뭘 보여주든 "이건 예술이에요"가 모든 작품의 가장 큰 경계선이 되는 느낌.


그런데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는 예술이 최후의 경계가 아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도 느낀 것은 이 전시의 최후의 경계는 정말 '현대인의 일상'이라는 것이다. "이 예술작품 속 현대인의 일상을 발견해보세요"가 아닌 작품 자체가 우리의 일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이 향하는 일상 속 모습은 실제 우리의 일상과 닿아있다. 멀지 않다.


관객과 예술작품의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요즘 전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위에서 말한 다양한 전시 방법들이 바로 그것이다. 체험하거나 영상을 보여주거나 작품들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선에서의 포토존을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전시에서 관객들이 좀 더 작품을 가깝게 느끼도록 만든다. 간혹 가다 그 장치들이 과해 전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작품 감상'마저 망치는 전시들도 더러 있다. (이게 전시인지 핫플레이스 사진스팟인지 모를 포토존만으로 이루어진 전시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는 다른 장치 때문이 아닌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가깝게 느껴진다. 모든 작품이 정말 '현대인의 일상'을,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친밀한, 익숙한, 거리감이 없는-"이라는 방향을 가진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예술적인' 작품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이미지의 부합하는 작품들도 우리의 일상-현대인의 일상을 향해 있었고, 우리가 예술이라 생각하지 않는 생활 속 예술적인 것들도 당연히 우리의 일상을 향하고 있다. (특히 포스터나 책 표지 디자인 등과 같은 생활 속 예술들은 상업성도 있기에 더욱더 '일상적'이다.) '현대인의 일상'이라는 주제 자체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으니, 굳이 장치들을 무리하여 배치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거리감이라는 한계가 없어지니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이 더 넓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들도 너무 많았다. 이해하려 애써야 하는 작품들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작품들. 실제 관람자들의 관람평을 적어놓은 포스트잇 형태의 메모지가 작품 옆 벽에 붙여져 있고, 작품의 설명도 어려운 말이 아닌 쉬운 말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한몫했다. 이번 전시에는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작품들을 따로 언급하고 싶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작품들을 전시에서 직접 처음 만나보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전시를 보고 나서 이 리뷰를 읽었음 한다.




현대 사회 속 개인과 타인, 그리고 관계



현대인의 일상이란 주제 때문인지 유독 개인과 타인, 그리고 관계에 대한 작품들이 많았다. 개인과 타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작품들 대부분이 현대사회 속 오롯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개인을 말하고 있지만, 그 개인을 보는 시선들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같은 곳에 있지만 전혀 소통하지 않는, 그래서 씁쓸한 단절된 개인을 말하고 있고, 누군가는 디지털 세계 속 소통이 커짐에 따라 온전한 혼자의 시간이 없는 현대 사회에 집중하기도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누군가는 단절을 보고 누군가는 쉼 없는 소통을 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상반된 시선 모두가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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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방향으로 노연이-타인들의 세상

문제이-Alome buddy, 이영은-극장




빛의 포착, 순간의 기록



전시에서 본 작품 중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이다. 정말 한참을 바라봤다. 단순히 이뻐서도 있겠지만, 작품 속에 담은 순간이 내가 빛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과 정확히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빛을 사랑한다. 정확히는 반짝이는 햇빛을 사랑한다. 누군들 햇빛을 안 좋아하겠냐지만, 정말 조용하고 한적한 오후 반짝이는 햇살을 볼 때면, 집 가는 길 나뭇잎 틈새로 새는 햇빛을 받을 때면 그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꽉 찬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그럴 때면 카메라를 들어 그 순간을 찍고자 한다. 이 순간과 나의 감정이 담기길 바라면서. 사진에는 항상 나의 순간이 온전히 담기지 않지만, 적어도 나중에 사진을 보며 이때 이런 '감정'을 느꼈노라 하며 기억되길 원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나의 소중하고 행복한 빛의 순간을 "단순히 감정이 있었구나"하는 '기억'으로가 아닌, 그대로 잡아놓은 것이다. 순간 자체를 담아내었다. 한참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순간을 담아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사진이지만, 아쉬운 내 사진과 나보다 순간을 더 잘 담아내는 여러 사진가들의 사진을 보며 사진을 더 잘 찍을 생각만을 했던 나에게, "순간들을 기록하는 방법이 사진뿐만이 아니구나, 정말 다양하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머리를 관통했다.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내가 그 순간을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느낀 건 풍경이 아니라 빛 때문이구나 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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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태 작가의 작품들



작품의 빛을 제외한 부분은 무채색이었다. 그것도 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고 단조로운 나머지 배경에도, 무수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을 빛을 받던 나의 순간과 정확히 같은 감정을 나에게 불러일으켰다. 어떤 순간을-대상을 받아들일 때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상대적으로 다른 비중으로 여러 가지 것들을 받아들이는 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존의 내가 알던 순간의 기록 방법인 사진작품도 있었다. 아,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진처럼 만들어낸 순간이 아닌 진짜 우리의 순간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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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야마 요시유키의 사진 작품들



작가에게 사진은
구체적 현실을 포착해내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해주는 매체로 활용됩니다.





작품-예술-'게임'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사용되었던 마운틴 스튜디오의 플로렌스(Florence)라는 게임의 전시 구간도 흥미로웠다. 벽에 있던 게임 제작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인터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게임'이라는 분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방대하다. TV에는 상업형 격투 게임만이 우리에게 노출되지만, 그것보다 더 다양한 장르의 많은 것들을 담은 게임이 존재한다. 어떤 게임은 마치 예술작품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담아내고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유저의 재미까지 생각해야 하는 작품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요새는 유명한 인디 게임들을 폰으로도 이용할 수 있게 출시되고 있어, 간간히 핸드폰으로 작품성을 검증받은 게임들을 즐기곤 한다. 이 게임도 곧 나의 폰에 다운로드하여질 예정이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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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전시의 거의 끝부분에는 책 표지와 포스터 디자인 전시 구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능력을 기르고 싶은 디자인 분야다. 이 전시는 '디자인'이라는 엄연한 예술 분야임에도, 상업성과 연관되었기 때문에 예술에서 쉽게 배제되는 책 표지와 포스터 디자인을 작품으로서 등장시켰다. 디자인들은 우리의 이미지와 다르게 완벽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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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전시 작품 - 열린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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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전시 작품



특히 포스터 디자인은 포스터 속 사진을 수정하고, 그 위에 레트로풍의 원색적인 색감과 볼드한 글씨체로 글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는데, 그 글의 내용은 영화에 대한 평가들이었다.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에 어울리게끔, 동시에 디자인적으로 완성도가 높으며 소비자의 이목을 끌 수 있어야 하는 포스터 디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당연한가) 영화의 흥행과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그 흥행은 영화에 대한 평과도 연결된다. 글씨와 포스터는 같이 전시되었음에도 어우러지지 않고 이질적이다. 동시에 보여주면서도 다른 것을 나타내는 느낌이다.






소개한 작품 말고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정말 많다. 여운을 남기고, 생각을 하게 하고, 영감을 주는 전시였다. 나의 경고에도 전시를 가기 전 이 글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그럼에도 전시에 직접 가 경험하길 추천한다. 추가 정보로 별도의 오디오 가이드는 존재하지 않으나 작품들 옆 소개 문구가 워낙 이해하기 쉽고 친절하게 적혀있으니 작품 설명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읽기를 바란다. 이 전시가 진행 중인 석파정 서울 미술관은 사람이 붐비는 곳이 아니다.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로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었다. 나는 전시를 가는 날 그날따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유롭고 한적한 전시장 내 분위기도 그날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진심을 다해 이 전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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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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