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월출동령이란 단어가 떠오른 밤 - 뮤르: 달달 콘서트

글 입력 2019.05.0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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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관람 전 뮤르의 가리봉 블루스와 윈드 스윙을 들었을 때 마음 한편에 불경스러운 생각이 자리했다. '재즈의 느낌은 십분 살렸으나 퓨전국악이라기엔 재즈에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통악기로 단순히 재즈를 연주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룹일까 의심한 점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뮤르의 공연을 관람한 후 말끔히 사라졌다. 그들이 들려준 음악은 나의 판단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여기에 더해 그간 국악을 얼마나 등한시했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민요가 이렇게 재지(Jazzy)했나요?


이 날 프로그램 중 민요를 재해석한 곡은 풍년가와 신고산타령, 꽃노래 총 3곡이다. 각각 경기민요, 서도 민요, 남도민요에 속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즐겁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놀라운 점은 민요의 뼈대를 그대로 살렸다는 거다. 분명 알고 있는 가락인데, 귀에 익은 선율인데, 이렇게 재지할 수 있다고?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풍년가는 경기민요답게 밝고 꺾는 음이 많은 곡이다. 뮤르는 이와 같은 특성을 삭제하지 않고 한 템포 느리게 변용하여 더욱 부드럽고 나른한 느낌을 연출한다. 보컬은 민요의 멜로디를 이어간다. 반대로 피리와 카혼, 피아노는 재즈의 음계로 채워나간다. 한 곡 안에 담긴 두 음악의 특징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국악적이면서도 쿨재즈를 듣는 느낌.

첫 공연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기획한 꽃타령도 비슷한 방식이다. 보컬이 국악적 선율을 담당하고 나머지 악기들은 재즈의 주법을 따른다. 신고산타령도 마찬가지다. 태평소의 시김새는 민요를 구성지게 표현한다. 피리는 재즈의 선율을, 카혼은 리듬감을 조절한다. 피리와 태평소는 서로 연주를 주고받으며 즉흥성을 더한다. 4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국악과 재즈의 경계를 자연스럽고도 빠르게 넘나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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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사운드와 견고한 기본기 


창작곡들은 뮤르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을 단번에 입증한다. her story는 흥겨운 민요와 달리 조금 더 무겁고 신비스럽다. 곡의 중심 악기인 핸드팬의 독보적인 외형과 음색은 타악기 중에서도 특별함을 자랑한다. UFO처럼 둥글고 큼직한 모양의 악기는 손으로 어느 곳을 치느냐에 따라 울림통을 통해 음의 높낮이가 결정된다. 음정이 있는 타악기와 카혼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사물놀이와 흡사하다. 재즈보단 실험 국악에 가까운 소리다. 장르의 구분선은 흐려지고 그 속을 채우는 다양성이 두드러진다.

화려한 외출에선 허새롬씨의 보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를 보면 브리아 스콘버그가 떠오른다. 스콘버그가 노래하는 트럼펫터이듯이 허새롬씨는 노래하는 동시에 태평소를 불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천장을 뚫을 듯 울려 퍼지는 태평소의 날카롭고도 커다란 소리는 그 자체로 사운드를 풍부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도 다루는 악기처럼 맑고 공력이 있다.

이어서 서울 풍류라는 곡은 아르헨티나의 길거리에서 들을법한 탱고 음악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실현하는 악기가 바로 생황이다. 생황의 음색은 아코디언과 유사하여 글루미 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다. 피리와 생황만으로 재즈의 연주 형태와 주법을 소화 가능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박경민 단원은 월간 미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통을 잘 배운 사람은 단단함이 달라요. 관악기 주자는 특히 전통이 중요하죠. 가장 상청인 ‘떠이어’를 연주하는 주법 하나만 들어봐도 정악을 잘 불어온 사람은 단단함이 달라요" 뮤르의 음악은 국악이란 탄탄한 주춧돌 위에 새로운 확장성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품과도 같다. 그리하여 이번 공연은 그들이 성실하게 다진 내실과 상상력을 확인한 시간이다.

판소리나 단가에는 월출동령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동쪽 산봉우리에 떠오른 달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보여준 잠재력과 다재다능함을 생각하면 이보다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달처럼 국악의 미래를 밝게 빛내줄 그룹으로 성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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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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