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예술가의 사생활은 어디까지인가, 단편소설집

예술이 중요한가, 사람이 중요한가
글 입력 2019.04.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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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

두 명의 등장인물만 나와서 극이 진행되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사실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본 연극이었기 때문에, 모든 연극이 그렇게 진행되는 줄 알았다. 그 뒤로 아트인사이트에서 가지각색의 공연을 접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다시 한 번 2인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화려한 음악이나 배경보다는, 정해진 배경에 두 명이 주고받는 대화와 표정, 몸짓으로만 공연이 진행되었었다. 마냥 연극이라고 떠올리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모습과 같이, 두 명이 등장해 극적인 갈등을 거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2인극의 특별한 점은 말 그대로 두 명이 만들어가는 연극이라는 점이다. 여러 명이 등장하는 극이나 영화에서, 주연과 조연이라는 이름으로 역할의 중요성이 구분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연이 없다면 극이 더는 진행될 수 없는 만큼 조연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모두가 만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은 여러 명 중에 한 명을 선택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우의 부담도 덜하다.

그러나 2인극은 양쪽 귀를 꽉 채우는 배경음악도 없고, 시야를 가득 채우는 보조인물도 없이 단 두 명만이 러닝타임을 이끌어간다.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 서서,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면서 갈등을 극대화한다. 대본도, 무대, 연출 등 많은 것들이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무대에 오른 두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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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든 이유가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인 관계라는 것을 고려하면 2인극이란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가장 잘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보이지만, 그만큼 인위적인 형태의 극이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결정을 하기까지는 그 사람만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년 시절부터 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과 상황이 있을 것이고, 살아가면서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고, 어떠한 관념과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에 갈등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그 두 사람만의 갈등인 것만은 아니다. 등장인물 역시, 작가가 개성을 부여한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할 수도 있는,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를 인물이다.

그래서 2인극은 아주 그럴듯하게 꾸며진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인물은 갈등을 견디고, 감정을 표출하고 긴장을 이어나가겠지만, 극이 끝나도 풀리지 않는 갈등을 우리는 갖고 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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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친다는 것

이번에 문화초대를 받은 <단편소설집>이라는 제목의 연극은 스승과 제자 두명이 등장하는 2인극이다. 스승은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는 스승이 이미 일구어놓은 것을 빼앗아간다. 제자는 스승의 사생활을 담은 소설을 쓰면서, 스승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이 작품에서 던지는 질문들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인류는 그렇게 다음 세대에게 모든 것을 제공하면서 역사를 이어왔다. <단편소설집>은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를 도발적으로 다시 묻는다. 자신이 이뤄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루스(기성세대)와 그를 넘어서 성공하기 위해 겪는 리사(뒷세대)의 심적 고통, 그리고 둘 사이의 갈등. 내 것을 훔쳐서 너의 출발점으로 삼아 버리는 제자를 스승은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을까?



나는 내 인생의 시간을 대부분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배움의 의미는 잘 알고 있었지만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는 잘 알지 못했다. 나는 꽤 열성적인 학생이어서 선생님들이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그들은 나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단편 소설집>의 '스승'처럼 빼앗기는 것으로 여겼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때 과외를 했을 때 나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 기쁨이었지 상실이 아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가르침'이 상실의 의미가 있게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거장 수준에 올라야 가능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신의 능력을 남에게 가르쳐준다는 것이 빼앗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만의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높은 긍지를 가져야 하는 일인가. 그리고 그 정도의 자긍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삶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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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덕적 딜레마

도덕적 딜레마라는 단어를 여러 번 들어봤다. 도덕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상황이 두 가지 이상이 충돌하는 경우, 예를 들어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A라는 선택을 했을 경우, B라는 도덕적인 가치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도덕적 딜레마라고 한다.

흔히 들어봤을 예시인, 멈추는 기능이 고장 난 기차가 달리고 있을 때 앞에 선로에는 6명의 인부가 작업하고 있고, 2번째 선로에는 1명의 인부만이 있는 상황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을 도덕적 딜레마라고 한다.

옳은 선택지가 있고, 옳지 않은 선택지 두 가지가 있다고 배워온 우리에게 아주 당황스럽게도 두 가지가 옳고, 또는 둘 다 옳지 않지만, 둘 중의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명을 죽이느냐, 한 명을 죽이느냐는 만약 죽일 수 없는 선택지가 있다면 절대 고르지 않을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는 차악을 선택하라고들 한다. 그럼 여기서 죽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이 최악이 되고, 적은 것이 차악이 될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어찌 됐든, 어떠한 딜레마를 마주쳤을 때 결국 선택을 한 개인을 비난하기는 쉽다. 마치 2인극이라는 연극처럼 모든 잘못이 개개인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에는 그러한 배경이 있음을 이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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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책임과 윤리

<단편 소설집> 작품에서는 예술가의 윤리성에 대해서 딜레마를 말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내더라도, 사적인 생활이 난잡하다면 과연 그의 예술을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한번, 학교생활을 하다가 마주친 상황에서 답을 내리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학교 앞 북카페에서 동성애에 대해 반대하는 영상을 카페 내에서 상영했고, 동성애 반대 의견을 표명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카페를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학교 건물 내에 대자보가 걸리기도 했다. 한참 여론이 일자, 카페에서는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지만,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접을 수는 없다고 확고한 의견을 말했다.

그때 나는 그 카페 사장이 아무리 잘못된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계 수단마저 끊어버리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휩싸였다. 동성애에 대해 찬반논란을 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미숙한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들도 멀쩡히 잘살고 있다. 그런데도 카페 사장은 자신의 의견을 대중적으로 표명했다는 이유로 카페를 접을 만큼 잘못한 것인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그 카페는 여전히 우리 학교 앞에 있고,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 사는 것처럼 그 일은 잊혔다. 나는 여전히 그 카페의 간판을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곤 한다.

예술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라 예술가라는 사람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최근에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이 육식하지 않고 채식을 하는 가장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육식을 불매함으로써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대에 그들을 지지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카페는 예술이 아니라 생계 수단이기에 그 카페를 가도 된다고 한다면, 만약 그 카페가 생계가 아니라 취미로 하는 활동이라면 그에 대한 대답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인가. 그리고 예술가에게 예술이 작품이 아닌 생계 수단이라면 또 예외 사항으로 적용할 것인가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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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의 연속된 실패에 대한 복수심이 나를 '성공'이 아닌 작품 자체에 열중할 힘이 되었다"

- 도널드 마굴리스(작가)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줄거리를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그간 보아온 연극처럼 예상치못한 상황이 전개되어 익숙해지기도 전에 갈등이 터져나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두 명의 배우에게 압도되어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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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


일자 : 2019.05.03 ~ 05.12

시간
평일 7시 30분
토 3시, 7시 30분
일 3시
(월 쉼)

장소 : SH아트홀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서울연극협회

주관
서울연극제 집행위원회

제작
극단 적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150분 (인터미션 :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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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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