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화려한 업적 아래, 인간 갈릴레이

'갈릴레이의 신화'가 아닌 '갈릴레이의 생애'
글 입력 2019.04.1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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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화려한 업적 아래, 인간 갈릴레이



어느 길엔 벚꽃이 만개하고 어느 길엔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4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를 보고 왔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그 이름 안에서 우리는 무수한 업적을 찾아낸다. 어떤 이론을 만들었고, 어떤 가설을 증명해냈는지 주르륵 읊을 수 있다. ‘정말 훌륭한 과학자야’ 그를 그렇게 부른다. 말 그대로 갈릴레이는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알고 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믿는 실체는 거짓으로 수도 없이 판명된 루머들과 그의 업적뿐이다. 학설과 이론은 과학자 갈릴레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만, 인간 갈릴레이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어떤 가치관으로, 어떤 성격으로 삶을 살아갔을까.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했을까. 인간 갈릴레이는 어떤 사람일까. 그간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연극 <갈릴레이의 생애>는 그런 면에서 그럴듯한 답지가 되었다. 브레히트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잘 엮어낸 인간 갈릴레이. 연극은 화려한 업적 아래,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는 걸 전달한다.


이것 역시 우리가 ‘알고 있다’ 믿고 있는 갈릴레이의 파편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갈릴레이의 신화’가 아닌 ‘갈릴레이의 생애’인 면에서 믿음직스럽다.



[국립극단]갈릴레이의 생애_연습사진_04_왼쪽부터 김명수, 이윤우.jpg
 

그 믿음에 보답하듯 연극에선 갈릴레이의 좀 더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해왔을 것 같은 그는, 실은 다분히 기회주의적이고 물질적이며 정치적인 인간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처음 만든 것처럼 발명해 팔아넘겼고, 종교계가 자신의 견해를 받아들여주지 않자 기회가 올 것을 기다리며 다른 연구를 진행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루머에 가려져 있던 갈릴레이의 인간적 결점들을 <갈릴레이의 생애>에서는 가리지 않고 그려낸다. 비로소, 중세의 틀을 깨려 했던 혁명가 역시 돈이 고프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관객들에게 갈릴레이는 ‘훌륭한 과학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물이 된다.


더불어 이러한 인물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천재를 찾게 되는데 바로 작가인 브레히트다. 희곡 <갈릴레이의 생애>는 총 세 개의 판본이 있다. 덴마크판본, 미국판본, 베를린판본이 바로 그 것이다. 1938년부터 1956년까지 거듭 수정된 희곡은 당시 사회 현실과 작가 브레히트의 가치관을 보여준다.


초판본에서 비밀리에 연구를 수행하면서까지 우수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갈릴레이는 베를린판본으로 가면서 자기비판을 통렬하게 토해내는 변절자가 된다. 전쟁에서 그가 느낀 끔찍함과 참담함이 갈릴레이에게 고스란히 주입된 결과로 보인다. 덕분에 캐릭터는 더욱 생생해진다.



[국립극단]갈릴레이의 생애_연습사진_19_김명수.jpg



과학자로서 나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가졌었지. 나의 시대에, 천문학이 시정의 광장에까지 퍼져나갔네. 이런 비상한 상황이라면 한 장부의 의연함이 커다란 격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을 걸세. 내가 만약 저항을 했더라면, 자연과학자들도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 자신들의 지식을 오직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만 적용한다는 맹세 말일세!



이 극이 인간 갈릴레이를 다루고 있다고 줄곧 설명했지만, 그렇다고 그 것이 전부인건 아니다. 이 극은 본질적으로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횡단을 보여주고 있다. 신과 종교, 감정과 추상이 판치던 세상에서 갈릴레이는 돌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이성을 믿으라 주장한다. 당연시 되는 것들을 다시 의심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실천하며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다. ‘의심으로 가야한다. 불신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놀랍게도, 옛것이 계속 부정당하고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금 시기에 딱 알맞은 말이다.


갈릴레이는 혼자 연구하지 않았다. 극에서도 함께 연구하는 여러 제자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신분이 심상치 않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이 가정부의 아들이고, 페데르쪼니는 라틴어를 못하는 렌즈 연마공이며, 키 작은 사제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모두 당시 빈곤하고 힘없던 계층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한 지식을 갈구한다. 그리고 결국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갈릴레이의 연구를 운반하며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리를 만든다. 부자나 권력 있는 종교인이 아니었던 이유는,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은 힘보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국립극단]갈릴레이의 생애_연습사진_15_왼쪽부터 장지아, 강진휘, 김명수, 정현철.jpg
 


“그렇지만 인간은 천체의 운행 뿐 아니라 성경 말씀까지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린 아직 멀었단다. 우린 사실 이제 겨우 출발점에 서 있는 거란다.”



그러나. 하층민 계층의 제자들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진 것과 달리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들과 종교에 헌신하는 인물로만 그려진다. 사르티 부인은 학문에 매달리는 갈릴레이를 위해 흑사병을 감내하면서까지 가정부 일을 하고, 갈릴레이의 ‘매력적인 딸’인 비르기니아는 자신의 약혼을 망친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기도한다.


실제 전기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 해도, 실제 비르기니아가 갈릴레이를 도왔던 이력은 거의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낡은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건설되듯이, 키 작은 사제 역이 젠더 프리 캐스팅(배우의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의 작은 성과라면 성과다. 아쉬움을 느끼는 동시에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브레히트극’, ‘과학자가 주인공인 극’과 같은 겉모습이 이 극을 조금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더구나 가볍지 않은 소재와 주제,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이 거리감을 극대화한다. 그러나 걱정을 덜어도 될 만큼, 공연은 볼거리가 다채롭다. 우주를 연상시키는 스크린과 새로운 시대로의 항해를 뜻하는 배 모양의 무대가 일단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거기에다 분위기에 맞는 노래와 음악으로 귀까지 즐겁다.


무엇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에 묶여있었던 갈릴레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나 볼 수 있어 흥미롭다. 4월, 과학의 날을 맞이해 극장에서 과학으로 세상을 뒤집은 ‘인간 갈릴레이’를 만나보길 바란다.






갈릴레이의 생애


작_ 베르톨트 브레히트
연출_ 이성열


■ 출연진
갈릴레이_ 김명수  종교재판관 외_ 이호재
어린 안드레아 외_ 이윤우 어른 안드레아 외_ 정현철
페데르쪼니 외_ 강진휘 사그레도 외_ 김정환  사르티부인 외_ 박지아
비르기니아 외_ 박가령 루도비코 외_ 박경주  키 작은 사제 외_ 장지아
코시모 외_ 박건령 거리악사 남편 외_ 이원희  거리악사 부인 외_ 황미영


■ 스태프
번역_ 송전  윤색_ 최치언  드라마투르기_ 김주연
무대_ 이태섭  조명_ 김창기  음악_ 장영규, 김선
의상_ 이수원  영상_ 신성환  분장_ 이동민
안무_ 양은숙  소품_ 김혜지  음향_ 오영훈


줄거리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 수학 교수이자 유명 과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접하며 본격적인 천체 탐구를 시작한다. '달의 표면에 산맥이 있다', '태양에 흑점이 존재한다' 등 갈릴레이의 연구결과는 그동안 가설로 남아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입증하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신성한 로마 교회의 교리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고 결국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정에 서게 된다. 학자의 양심과 빠져나갈 길 없는 불합리한 현실 사이에서 갈릴레이는 고민에 빠지는데...






<갈릴레이의 생애> 더 알아보기


브레히트가 덴마크 망명 중 집필하여 1938년 처음 발표 할 당시 희곡의 제목은 『지구는 돈다』였다. 1943년 스위스에서 초연된 초판본은 고문에 못 이겨 지동설을 철회하면서도 그 이면으로 연구를 지속해 많은 업적을 이룬 과학자의 숭고한 모습을 다뤘다. 이에 비해 이후 수정된 판본에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의 좌절과 모순을 강조하고 있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을 계기로 브레히트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정된 두 가지의 판본에는 과학자로 대표되는 지식인의 도덕적 책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반영되어 있다. 현재 총 3종의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1938   『지구는 돈다 Die Erde bewegt sich』
1943.9.9.  1판본 초연 <갈릴레오 갈릴레이 Galileo Galilei> 스위스 취리히
1947.7.30. 2판본 초연 <갈릴레오 Galileo> 미국 로스앤젤레스
1955.4.16. 3판본 초연 <갈릴레이의 생애 Leben des Galilei> 독일 쾰른
1957.1.15. 3판본 극단 베를린 앙상블의 초연 <갈릴레이의 생애> 독일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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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기간
2019.4.5.(금) - 4.28.(일)


장소
명동예술극장


공연시간
평일 7:30PM, 주말 3PM (화 쉼)


관람등급
14세(중학생) 이상 관람가


소요시간
175분
(15분 인터미션 포함)


입장권
R석 5만원 | S석 3만5천원 | A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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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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