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OTEA] THE HANGED MAN 12: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즐거운 고통

글 입력 2019.04.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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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OTEA]

THE HANGED MAN 12

새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한 즐거운 고통


번데기는 먹거나 이동하지 않는다. 유충 시절의 형태가 사라지거나 변형되고, 체내에서는 성충의 몸과 장기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을 통해 번데기는 새롭고 완전하게 만들어진다. 그가 껍질을 깨고 나올 때 쯤에는 완전히 발육한 성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얻기 위해서 한 존재는 자신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헤르만 헤세가 융의 제자와 정신분석을 하며 완성한 <데미안>에는 이런 서사가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싱클레이어는 여러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선-악이라는 기독교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벗어나 전일성을 터득한다.

싱클레어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프란츠 크로머가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자신안에 박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모님을 중심으로 친근했던 대상으로 부터 분리된다. 불안에 떠는 싱클레어를 구해준 데미안은 크로머와 다른 의미에서 악하고 나쁜 세계로 이끄는 또 하나의 유혹이었다. 데미안은 아벨을 죽인 카인이 악인의 대명사가 아닌 용기와 개성이 있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로 하여금 종교나 성경에 의지하지 않은 독자적인 생각을 가지도록 한다. 데미안은 떠나기 전에 싱클레어에게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인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에 대한 예배를 드린다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인 싱클레어 안에서 데미안은 조력자의 의미를 잃는다.

성장한 싱클레어는 꿈꾸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상,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보였다" 그에게 그것은 신의 얼굴이었다. 지구라는 거대한 알을 깨고 부화해 나와 푸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려는 황금빛 머리의 새 그림을 그린 싱클레어의 편지에 데미안은 이런 답장을 보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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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rise by the Ocean- Vladimir Kush



오늘의 타로카드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새로운 시작(바보)와 완성(세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이 노력으로 이룰 수 있지만 때로는 지켜오고 추구해온것들을 전환시켜야 하기도 한다. 카드에 배치된 인물은 긴 나무에 묶여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억류되고 정체되었으며, 시련의 시기다. 움직일 수 없으니 이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히 이 고행이 끝나길 바라는 것 뿐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T자형으로 배치된 나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나무에 잎사귀가 자라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나무를 볼 때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보았던 하나의 연출을 떠올린다. 고도를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 남겨진 것은 앙상한 나무 뿐이지만, 나무는 죽지 않았다. 시간에 따라 잎을 틔우는 나무는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을 준다. 그 뿐만이지만, 그들이 고도라는 구원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도 그뿐이다. 매달린 남자의 다리 모양은 마지막 완성 카드인 The World에서 춤추고 있는 사람과 다리모양이 같다. 완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누구나 필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거꾸로 고행하는 그의 눈에는 익숙하지 않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 한 세계에 갇혀지내면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을 거꾸로 매달림으로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매달린 남자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노란색 후광은 그의 자유롭고 신성한 정신세계와 진리와 지혜,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거나 이미 얻었음을 의미한다. 완성을 위한 고행을 하는 이 자에게 고통은 절망이 아니다. 그의 표정이 암울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그러하듯이, 이 카드의 중심 키워드 중 하나는 희생이다. 모든 완성의 과정에는 고통과 희생에 요구된다. 대의를 위한 것도 희생이지만 더 높은 세계를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 역시 희생이다. 이런 맥락에서 매달린 남자는 삶의 완성으로 가기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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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 1796년, <바다의 어부>
캔퍼스에 유채, 91.4X 122.2cm



갈등은 결국 어떤 한 사람과 예측할 수 없는 어떤 힘과의 투쟁으로 규결된다. 어떤 것과 대치하고 있건 우리는 계속해서 맞서 싸워야 하며, 그 투쟁이 패배할 것이 분명하지라도 중요한 것은 승패가 아니라 투쟁하는 그 자체 행위에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한 노인이 홀로 바다에서 신념과 용기, 인내력을 가지고 영웅적인 투쟁을 하는 이야기다. 그에게 바다는 안신척을 제공하면서도 내재된 폭력으로 인간의 용기를 시험하는 장소다.


외로운 노인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더 강한 상징을 갖는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가난하고 늙은 어부가 오랜만에 큰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의 습격을 받아 간신히 항구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는 앙상한 물고기의 잔해 뿐이었다.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도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하는 산티아고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동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노인은 '매일 매일이 새날이다'라고 하며, 상처와 실패에 아랑곳 하지 않고 그것을 투쟁의 역사로 받아들인다. 늙은 노인의 신체 중 눈만은 패배를 모르고 불타오르고 있었다. 긍지를 가진 끈질긴 사투 끝에 노인은 대어를 잡는다. 하지만 잡았다 해서 그의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피 냄새를 맡은 상어떼들이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 속에서 산티아고는 자아에 눈뜬다. 인간과 물고기 모두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을 잡아먹지 않으면 안되며, 그렇기 떄문에 모든 물상이 인간과 동이한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부인 그가 넒은 의미에서 형제인 물고기를 죽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일이다. 그래서 산티아고가 하는 투쟁에서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두 번째 상어가 몰려왔을 때 노인은 상어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심한다. 어둠 속에서 고기를 갉아 먹으려는 상어와 싸워봤자 소용이 없다는걸 알았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싸운다. 하지만 끝내 고기는 모두 빼앗기고 만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물고기를 싣고오면서도 노인은 다음 날의 출항에는 좋은 창을 하나 구해서 언제나 배에 싣고 다니겠다며 결심하며 죽은 것처럼 잠에 든다. 그 모습은 핍박에 시달린 순교자처럼 보였다.

헤밍웨이는 인생에서 아무리 영광스럽고 성스러운 행동을 할지라도 때로는 패배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티아고의 도전의지는 시련을 당했으나 존엄성을 얻게 되었으며, 그 존엄성은 그의 삶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일으켰다. 타로카드의 매달린 남자에게 후광이 비쳐져있지만, 사실 필자는 그 후광을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의 빛으로 본다. 그들에게 아무런 보장은 없다.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맛본다.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얻은 것들은 어떤 조력자나 목표이 준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고통받던 자신 안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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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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