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크로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슬픈 걸까?
글 입력 2019.04.1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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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CROQUIS]


놓쳐서는 안 될,
국내 미개봉 수작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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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Exremely loud& incredibly close, 2011)


감독: 스티븐 달드리

(대표작: 빌리 엘리어트, 디 아워스, 더 리더)


주연: 토마스 혼, 톰 행크스, 산드라 블록

수상: 제 84회 오스카 작품상 후보 외 다수



키워드: 성장, 재난, 상실, 애도, 치유, 삶, 모험, 따뜻한



이 영화는 한 소년의 모험기이자, 한 남자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과정이며, 상실을 경험한 모든 이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엄청나게 슬프고 동시에 믿을 수 없게 따뜻하다.


기쁨과 슬픔, 성장과 상실, 행복과 그리움은 서로 등을 맞댄 채 우리 곁에 머문다. 누군가 기뻐할 때 누군가는 슬퍼하고 있으며, 우리는 상실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고, 그리움이 있기에 도리어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아직 아리송하다면, 이 영화를 함께 보자.




세상은 여전히 빛날 것이다




태양이 폭발해도 8분 동안은 그걸 알지 못한다.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8분이 걸리니까. 그러니까 8분 동안은 세상이 여전히 빛날 것이다.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났다. 아빠와 함께 보낸 8분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 영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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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때는 2002년. 911테러로 아빠를 잃은지 1년이 되는 해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년 오스카는 작은 다락방에 웅크리고 누워 아빠와의 기억을 되짚는다. 오스카가 직접 꾸민 이 비밀방엔 아빠를 기억하게 해주는 수많은 물건들로 가득하다. 아빠의 사진, 구두, 모험 일지, 그리고 녹음된 음성. 사건이 벌어진 날, 아빠가 집 전화기에 남긴 것이다.

그 메시지를 들은 사람은 오스카뿐이다. 엄마나 할머니가 듣지 못하도록, 음성 파일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으니까. 아빠의 시체도 없는 관을 묻는 장례식은 오스카의 눈엔 꼭 가짜 장례식 같기만 하다. 오스카는 울지 않는다. 아빠는 죽지 않았으니까.


* 아스퍼거 증후군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는 특징을 보이는 정신과 질환으로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집이 비정상적으로 세며, 말이 아주 많거나 말이 아주 없다. (오스카는 말이 아주 많다.)



어느 날 오스카는 숨겨져있던 아빠의 물건을 발견한다. 파란 꽃병 안에 작은 봉투. 봉투 위에 적힌 'black'이라는 이름과 그 안의 작은 열쇠 하나.

이 두 개를 단서로 오스카는 모험을 시작한다. 뉴욕에 살고 있는 모든 'black'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 black은 분명 상자에 대해 알 것이다. 오스카는 생각한다. 열쇠에 맞는 상자를 찾고 나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빠가 하고 싶었던 말, 아빠가 알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이 그곳에 있을 것만 같다.

오스카는 자신이 좋아하는 무화과 쿠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탬버린 하나, 망원경, 지도 등을 챙겨 집을 나선다.



상실은 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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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뉴욕에 살고 있는 black은 모두 472명. 한 사람에게 딱 6분만 할애할 수 있는데 실전은 계획에서 자꾸만 틀어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별거 중인 여자,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동전 수집이 취미지만 밥 먹을 돈은 없는 남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오스카는 승마도 하고, 포크레인도 타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모두 예정에 없던 일들이다. 마음은 급해 죽겠는데 거절도 하지 못한다.

계획에 없던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오스카의 할머니 집에 새로 온 세입자 할아버지. 과거의 어떤 충격으로 인해 벙어리가 된 할아버지는 어쩌다 보니 오스카의 탐험 메이트가 된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할아버지는 오래 걸을 수가 없어서 지하철을 타야만 하는 것. "안전하지 않아!"라며 지하철도, 다리도, 높은 곳도 두려워하던 오스카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이 성가신 할아버지. 하지만 오스카는 왠지 점점 이 할아버지한테 익숙한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며, 점점 그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비밀을 말해주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슬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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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할아버지와 함께하며 오스카의 모험은 2막에 접어든다.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질문들이 쏟아진다. 내 비밀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왜 말을 못 하게 되었을까? 나는 상자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이야기, 너무 많은 감정... 이 엄청나게 시끄러운 세상을 탐험하며 오스카는 성장하고 나아간다.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안전한 곳이라고, 아빠 없이도 나는 괜찮을 수 있다고.

소년은 모든 걸 스스로 해냈다고 믿지만, 사실 그의 뒤엔 많은 조력자가 있다. 오스카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들. 작은 관심 속에서, 그렇게 아이는 자란다. 기쁨과 행복만이 인생을 좋은 곳으로 안내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세상엔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며. 나를 사랑하는 건 아빠뿐이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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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틸컷


'black'에는 비관적이고 암담하다는 뜻이 있다. 자신이 만난 모든 black들에게 편지를 쓰는 오스카의 모습은 이 영화가 하고자 하는 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험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 발을 내디뎌, 모퉁이 너머에 한 번만 시선을 주자고.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해보자고. 아빠를 잃은 오스카가 기나긴 모험 끝에 결국 집으로 돌아와 엄마 품에 안기는 것처럼 말이다. 오스카의 편지는 어쩌면, 애도와 상실로 방황 중인 세상의 모든 black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아닐까.

다가올 4월 16일은 세월호 5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래서일까.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실과 애도의 과정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이 이야기는 왠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상실과 성장, 오스카는 그 위로 하나씩 발을 올리고 선다. 힘차게 발을 구른다. 소년이 탄 그네는 저 높이, 더 멀리 날아갈 것처럼 치솟는다. 오스카가 여행 끝에 발견하게 된 "비밀"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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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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