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썰썰]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

내 나이 스물다섯 살.
글 입력 2019.03.23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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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나이 스물다섯살
- 송지은, 예쁜 나이 스물다섯살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If we just keep dancing like were 22
- 테일러 스위프트, 22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 아이유, 스물셋


수많은 나이 노래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강조한 노래를 싫어했다. 어떤 나이는 어떻다는 프레임이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주변만 봐도 그렇다. 나이를 먹었지만 철없는 사람도 많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데 나이가 뭐라고 이러나 싶었다. 그런데 요새는 생각이 바뀌었다. 24살까진 크게 와닿지 않던 나이라는 숫자의 무게는 25를 만나는 순간 달라졌다.

20대 후반으로 가기 전 마지막 관문인 스물다섯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기 위해 직장과 이미지가 필요하고 나잇값을 강요받는다. 아직 덜 큰 것 같아도 적당히 성숙한 척해야 하고 아무리 못 해먹겠어도 입가엔 미소를 걸쳐야 한다. 주변에서 멋대로 기대하기 시작하고 그에 부응해야 한다.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런 고충에 대해 늘어놓은 나이 노래를 듣다 공감하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했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스물다섯을 콕 집어 얘기하는 '예쁜 나이 스물다섯 살'이라는 노래는 듣다 보면 현재가 더없이 예쁜 나이로 느껴져 간간히 듣고 한다.

*

올 초 단기 알바를 나갔다가 또래 여자를 만났다. 20대 연령층은 나와 그 친구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빨리 친해졌다. 편의상 그녀를 A로 부르겠다. A는 올해 스무 살이 되어 대학 입학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새내기였다. 생각보다 어린 그녀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지루한 근무를 흘려보냈고 드디어 마지막 근무일이 되었다. 그날 저녁을 먹다가 A는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맨 처음에 언니 나이가 25살이라는 거 듣고 조금 걱정했어요. 생각보다 나이 차이가 나서.. 말이 통할까 싶었거든요. 제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고요." 충격받았다. 그녀의 말은 결국 내 나이만 듣고 꼰대일까 걱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불현듯 벌써 내가 그렇게 보일 수 있는 나이였나 싶었다.

20살에게 25살이 그렇게 까마득한 나이일까? 내가 스무 살일 때도 그랬던가. 하기야, 대학에 막 입학한 스무 살에게 스물다섯은 사회인 같겠다. 나조차 스물다섯의 미래엔 자가용을 몰고 직장에 출근하는 멋진 언니를 상상했으니. A도 나처럼 그런 미래를 꿈꿀 테니 스물다섯에 알바를 전전하는 내 모습이 어쩌면 한심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려니 했다.

막상 스물다섯이 되어보니 이십대 초반과 크게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더 막막해졌달까. 또 어딜 가나 막내였던 내가 어느덧 '언니'라 불리는 것이 익숙해진 정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스무 살 A의 걱정이 조금씩 이해되었다. 5년을 더 산 만큼 경험도 5년 치가 쌓였을 테고 그걸 바탕으로 어린 사람을 얕보는 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이니 나도 그럴까 두려웠겠지.

그런데 그녀와 대화하면서 속으로 '역시 어린 티가 나네.'라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가치관과 현실감각으로 허무맹랑한 말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내게도 나이에 관한 편견이 가득해서 쉽게 나이로 사람을 평가했다. 어쩌면 A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얼마 전 일이다. 출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로 지하철역은 다소 어수선했다. 앞쪽에 서 있던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재빨리 자리에 앉을 생각에 초조했다. 그때 내 앞으로 한 남자가 섰다. 원래 있던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러운 새치기였다. 정확히는 내 앞사람 옆에 섰는데 대열을 이탈한 깍두기 같은 모양새였다. 황당하고 괘씸했다. 부당한 방법으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그 행동이 너무 싫었다.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어째서 내 앞에 섰을까?'라고 생각하니 내가 만만해보였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며 슬슬 화가 났다.

어떻게 따질까 생각하던 찰나 전철이 들어왔고 문이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는 그는 당당히 내 앞을 차지하며 전철로 들어갔다. 놓칠세라 바짝 붙은 나는 부러 보폭을 크게 만들었다. 좁은 간격에 걸음을 크게 하니 발끝에 그의 뒤꿈치가 닿았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긁었다. 뒤꿈치를 밟힌 남자는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뒤돌았지만 나는 얼굴을 굳히고 모르는 체했다. 소심한 복수였다. 음침한 행동으로 보일진 몰라도 마음만은 통쾌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무척 용기 낸 일이다. 괘씸하고 억울한 일은 그동안 수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충동적인 복수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일화를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 많이 변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다. 작년의 나라면 아마 새치기를 당해도 속으로 삭이다가 뒤통수만 하염없이 째려보고 말았을 테다. 친구는 "우리도 나이를 먹어가나 봐." 하고 덧붙였다. 한 살 더 먹었다고 갑자기 뻔뻔해지는 건 말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스물다섯이란 숫자는 허투루 먹은 게 아니란 것을 느낀다. 조금 이상한 지점에서 깨우친 나이의 무게였다.

어른이 되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돈이 많아져서 어른이 되는 게 아니고 인맥이 두터워져서, 사회적 직급이 높아져서도 아니었다. 출근길에 멋진 자가용을 모는 것도 아니다. 할 말을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가릴 줄 알고 가끔은 침묵을 지키기도 하고.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할 줄 알고,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말을 걸어도 당황해 말을 더듬지 않고. 부당한 일에 화내기도 하고 능구렁이처럼 넘어갈 줄도 아는 것. 이런 사소한 변화가 모여 어른이란 뱃지를 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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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쩍 성숙해진 것 같다가도 아직 철없는 면모를 발견하는 등 스스로도 오락가락한다. 그렇지만 나는 서서히 어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비록 산전수전을 다 겪어 지혜로운 건 아니어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잘한 경험 정도는 많이 쌓은 것 같다. 또 일상에서 쓸만한 처세술도 늘었다. 나를 만만히 보는 사람에게 참지 않고 복수할 정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지나고 나면 모두 아름다운 한때인 것처럼 지금의 스물다섯은 훗날 얼마나 예쁘게 보일런지, 미래가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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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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