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려운 글쓰기, 그럼에도 하는 이유 [기타]

글 입력 2019.03.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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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쓰기 정말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어렵다. 생각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데 그것을 글로 알맞게 표현하려니. 정말 어렵다. 나도 나를 모를 때가 제일 그렇다.


글쓰기 공모전과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겸하면서, 요즘 내 일상은 이것이다. 책 읽기, 생각하기, 글쓰기. 물론 그 외의 소소한 멍 때리기와 핸드폰 하기는 겸. 계속해서 문자들만 들여다보니 내가 쓰고 사용하는 글자들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한다. 아, 안 되겠어. 해소가 필요해. 하면서 눈을 돌린 모든 곳에도 다 그것들이다. 문자. 문자.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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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떠올려본다. 나는 왜 글쓰기를 좋아하게 됐지?


다른 좋아하는 것들도 많다. 음악 듣기, 영화 보기, 그림 그리기... 그렇지만 직접 음악을 만들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지금 내 앞에는 책과 한글 문서 파일이 더 앞서 있다. 왜 그렇지? 왜 글쓰기는 냉큼 한다고 나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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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사람들의 칭찬이 없었다면 못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쓴 글을 사람들이 칭찬하기 시작했다. 학교 선생님들부터, 주변 친구들까지.


기억나는 일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짓기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회색의 크고 오돌토돌한 용지에 세종대왕에 대한 11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쓰는 시간이었다. 반 모든 아이들이 참여했다. 그 와중에 조금 잘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아이들은 온갖 싫은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고 대충 글을 적을 때, 나는 그래도 마음을 담아 하고 싶은 말들을 적었다.


그리고 교탁에 앉은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며 검사하는 시간에, 넌지시 나에게 말했다. "소현아, 글 잘 썼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사실 좋은 감정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담임 선생님의 표정이 평소처럼 무뚝뚝해 그냥 흘러가며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때부터 나는 누군가의 표정을 읽으며 그 사람의 감정을 유추했나 보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 버릇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글쓰기를 했다는 사실이 잊혀질 때즘, 수상 결과가 나왔다. 내가 반을 넘어서 4학년 전체에서 1등을 했단다. 정말 어리둥절했다. 순간 교탁에 앉아 쌓인 종이들 사이에서 나를 칭찬하던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말이 나에게 1등이라는 결과까지 안겨준 것인가? 나는 정말 좋았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나보다 글을 잘 쓴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할 수만 있다면 두 눈으로 하나하나 살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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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생각해보면 시간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글짓기 행사에서 반 대표를 맡았다. 순전히 담임 선생님의 선택이었다. 그때 나는 원고지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A4용지에 적었던 글들을 담임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원고지에 옮겨 적었다. 맨 마지막 줄에서 다음 줄로 넘어가는 첫 칸에는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이렇게 뒤에 V자를 그리면 돼. 이 글자는 맞춤법이 틀렸지? 이렇게 쓰자. 선생님의 지휘에 맞춰 나는 로봇처럼 내가 쓴 글을 다시 옮겨적었다. 이럴 거면 선생님이 하지 왜 굳이 나를 시키지라는 생각은, 그때 한 것인지 지금에 와서 든 생각인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 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이들이 다 하교를 하고, 방과 후에 선생님과 단둘이 남아 있을 때였다. 해가 지기에는 빠르지만 햇빛은 짙은 노란빛을 띠는 그런 오후.


옆 반 선생님은 담임 선생님과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며 다가왔다. 벌써 하고 있네? 아이고~ 이걸 언제 다 시켜. 아마 원고지도 접해본 적 없는 1학년짜리에게 어떻게 원고지에 작성하는 법을 가르치냐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에 담임 선생님은 그냥 이렇게 하나하나 알려줘야지 뭐. 라며 다시 나에게로 눈길을 두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담임 선생님들끼리는 친하다는 사실을. 그 무섭던 옆 반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과 있을 때는 푸근한 아주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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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아련하다. 얼마 전 길을 걷다 한 초등학교 건물을 지름길로 가로질러 간 적이 있다. 유리문 사이로 문득문득 보이는 모습들에 웃음이 났다. 햇님반, 달님반. 왜 초등학교 건물은 다 마룻바닥일까? 왜 똑같은 노란색 황금빛 빛을 띨까? 왜 아이들은 항상 발에 가시가 박힐까? 급식소는 또 어떠한가. 지금은 앉지도 못할 만큼 작고 동그란 의자에 등받이는 없다. 그것을 끌어당겨 앉고 다시 일어서면 저절로 들어가는 형태이다. 왜 그때는 먹기도 싫은 김치를 그렇게 다 먹으라고 했을까? 어른이 되면 다 알아서 먹을 텐데. 그때 그렇게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먹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를 아이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학교인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그것인지.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지금 사는 곳 근처 그대로에 있다. 대신 높게 쌓아놓은 고물들이 교문 앞을 막고 있다. 나는 망한 줄 알았는데 친구가 이사를 갔다고 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켠으로는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내가 죽도록 달리기 싫어했던 흙 구장과 쿰쿰한 냄새가 나는 다목적실, 합창단에 들어 대회에도 나갔던 바람 잘 부는 음악실과, 지금은 앉을 수도 없는 너무도 작은 책걸상들. 그것들이 없는 새로운 곳이 무슨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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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처음 올라가고 친구와 초등학교를 다시 찾아간 적이 있다. 그런데 너무도 신기하지. 후각은 시각보다 많은 걸 기억해낸다. 그때 그 다목적실의 쿰쿰한 냄새가 다시 내 뇌 속에 들어오니 그때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그곳에서 학예회도 하고, 엄마와 엄마의 친한 친구분과 오빠의 학예회를 구경했다. 그때는 꽤 멋있는 공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어린이들의 재롱잔치 같겠지? 그곳에서 배구 대회도 하고, 교장 선생님의 퇴임식 때 합창단으로 노래도 불렀었다. 나를 무척 혼내던 한 선생님이 그때 나에게 아는 체를 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이 나를 기억하고 있고 그 일을 담아두고 있었음을 느꼈다.

그나저나 왜 건물 사이 지붕들은 다 저 초록색이었을까? 비가 오면 플라스틱 같은 가림막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꽤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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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는 담임선생님의 첫 제자였다. 막 교생 실습을 마친 선생님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때의 선생님보다 고작 한 살이 어리다. 지금 나는 완전히 아이 같은데 그때의 선생님은 왜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였는지. 이제 내 친구들도 실습을 나가고 온갖 고충을 설명하며 함께 술을 마신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그때 선생님도 그랬을까 싶다. 그때 선생님도 뭐든지 어려웠을까? 내 눈에 비쳤던 선생님의 모습은 멋있고 사랑스러운 기억밖에 없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현재'만을 집중했던 것 같다. 내일까지 내야 하는 숙제와 친구와 먹었던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맑았던 하굣길과 지금은 없어진 놀토(노는 날의 토요일. 그때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갔었다.). 초등학생이 무슨 걱정이 있었겠느냐 마는 그래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매일매일이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의 순간이 훗날 행복이라고 기억되리라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지금은 행복한 감정을 정의한다. 앞으로 이날을 떠올리며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훗날 이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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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그때 그날의 자신을 행복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를 넘어서, 열심히 공부했던 중학교, 재밌었던 고등학교, 평소보다도 못 본 수능, 그럼에도 간 대학교, 그리고 처음으로 갖게 된 휴학 기간...


모든 순간이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 순간 장애물을 넘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지금 이 순간도 훗날 뒤돌아보면 웃음 짓는 추억이 될 거라고 확신을 가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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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의 감정은 생생하지만, 그때의 나 자신은 여전히 낯설다. 과거의 내 사진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지금의 나도 그렇게 기억되겠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건, 우린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내 앞에 펼쳐졌던 가시밭길과 스스로 들어갔던 동굴, 내가 만든 모든 장애물들을 넘어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하다. 앞으로 나아갔는지는 모르겠다. 나이만 먹는다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의 내 자신을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다는 건, 그때의 모습보다 조금은 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앞으로든, 옆으로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정말 좋아하는 가수 백예린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무려 2년하고도 3개월 만이다. 정말 좋다.. 유튜브에 백예린을 검색하면 나오는 미공개 곡들도 많다. 정말 좋은 곡들이다. 한 번쯤 들어봤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가수 백예린도 나와 같은 나이이다. 다들 그렇게 자라고 있고 무언가를 해내고 있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러하겠지? 훗날 나를 떠올리면 낯설도록 성장한 모습으로 어리숙한 나를 바라볼 수 있겠지. 다시 멈춰 놓았던 글을 마저 쓰러 가야겠다.


아, 그리고 가수 백예린의 새 앨범 제목은 이것이다. Our love is great! 또 다른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김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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