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영화, 이제는 ‘맹목적인 재미’도 필요해 [영화]

글 입력 2019.03.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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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기_tt출처- 다음영화.jpg



올해 초 개봉한 영화 <극한직업>은 무서운 흥행 돌풍으로 역대 그 어떤 천만 영화들보다도 빠르게 통산 23번째 천만 영화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7번방의 선물> 이후 코미디 영화로는 두 번째 천만 돌파이자, 햇수로는 무려 6년 만에 등장한 ‘천만 코미디’라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대부분 특정 장르에 편중되어 왔던 천만 영화 리스트의 장르적 다양성을 확장시키고, 동시에 한국 코미디 장르의 새로운 해법과 가능성을 제시한 좋은 예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극한직업>의 천만 달성이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까닭은, 이 영화가 그간 한국 영화의 전형적, 고질적인 문제로 거론되어 왔던 신파적 요소가 전혀 없는 최초의 천만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극한직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파나 억지 감동 요소 없이 오직 ‘웃음’에만 초점을 맞추며 코미디 장르의 본질을 지키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처럼 2019년에 이르러서야 <극한직업>과 같은 순수 코미디 장르가 최초로 천만 흥행을 달성했다는 것은 사실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이는 얼마나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이 거대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고정관념이란 바로, 영화가 반드시 관객에게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전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영화는 관객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것을 벗어나 반드시 감동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의 국내 작품과 몇 개의 할리우드 작품을 제외한 다수의 천만 작품 리스트가 역사적, 사회적 주제를 담은 드라마, 범죄, 액션 장르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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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 - 2017년 하반기 기준



사실 이러한 고정관념의 형성은 바로 근현대사 시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이어진 독재 정권기 속에서 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되면서부터, 영화는 본연의 예술적 목적보다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데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구체적으로 보자면, 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과 함께 시작된 영화법과 영화 정책의 추진이 바로 이 문제의 출발점이 된다. 군부 독재 정권의 영화법 제정이란 것은 결국 영화예술에 대한 통제와 검열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었고, 그러한 통제와 검열의 결과로 나타난 작품들은 반공, 계몽, 교화적 목적성을 띄고 있는 것 역시 당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신헌법 시기 3, 4차 영화법 개정과 영화진흥공사 수립에 따라 만들어지기 시작한 국책 영화들은 일관되게 ‘민족 주체성 확립’과 ‘애국애족의 국민성 증진’을 주제로 하며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꾸미기_tt출처- 다음 아고라.jpg



이후 8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영화계 전반에 급속도로 장르의 다변화 및 자유로운 제작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나, 때는 이미 긴 독재 기간을 겪은 대중들의 무의식에는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창구로써 기능해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 고착화된 후였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좋은 영화’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감동과 울림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를 일컫는 것이 되었다.


또한 이는 결국 다양한 장르영화들이 골고루 각광받지 못하고, 영화계 내에서 마치 ‘B급’으로 분류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90년대 찾아온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기가 여러 장르와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다양성을 고취시키는 듯 했으나, 200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이 소수 대기업들에 의해 독과점 형태로 전개되면서 다시 한국영화의 장르는 흥행을 통해 상영관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몇몇 카테고리로 편중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결국 제작자들이 작품의 흥행을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택지는 바로 앞서 언급한 ‘좋은 영화’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만 영화 시대는 한국 상업영화 장르의 협소화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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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제 국내 영화계와 관객들은 결국 영화가 사회적 도구가 아닌, ‘예술’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재미만을 쫓는 영화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영화의 목적은 창작자에 따라 각각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재미 또한 그 자체로 영화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극한직업>과 같은 새로운 부류의 흥행작이 탄생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이를 계기로 더욱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포용하는 영화계와 관객의 인식이 앞으로도 꾸준히 확산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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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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