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압도되는 비극,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사람은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
글 입력 2019.03.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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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엄청난 연극을 보고 왔다.



1. 지금까지 이런 연극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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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방 다리의 소극 다 보고나서의 감정적인 에너지 소모, 여운이 상당하다. 블랙코미디 작품이기에 어느 정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비극적으로 끝을 맺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초반부터 극적인 긴장을 유지하는 비극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있었다. 2시간 내내 관객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의 몰입을 이끈 정말 엄청난 작품이었다.

 

특히 나에게는 이런 연극이 처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연극이란 흔히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았던 유쾌한 형식의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무대 구성도 중간 중간 변형이 되고 코믹적인 요소나 노래가 가미된 뮤지컬 형식의 가벼운 연극이 내가 본 것의 다였다.

 

그러나 이 공연은 특별했다. 작은 소극장에서 무대 변화가 전혀 없다. 주인공들은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연극을 펼친다. 그들은 연변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둘이며 그들이 사는 서울 굴레방다리의 허름한 아파트 좁은 공간에서 매일 같은 연극을 펼친다. 그리고 그들은 삶과 연극을 넘나들며 그들의 연극 속에서 또 다른 여러 역할을 소화해 낸다. 여성이었다가 아이었다가, 동생이었다가 누나였다가 역할이 계속 변화한다. 이 모든 상황이 매끄럽게 진행된다.


3명의 배우는 쉬는 시간 없이 2시간을 토해낼 듯 연기한다. 발성과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가능하기 힘든 역할과 상황이었다. 연기를 하는 그들도 보는 우리도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는 엄청난 감정전이가 일어나는 작품이었다. 괜히 사다리움직임연구소를 대한민국 대표 연극극단이라고 칭하는게 아니었다. 정말 대단했다.



 

2. 비극을 보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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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며 문득 고등학생 시절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떠올랐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보고나서 기분만 나빠지는 이런 비극적인 내용이 왜 필독서인지 왜 오랫동안 회자되는 중요한 내용인지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을 이번에 이 연극을 보면서 잠시나마 깨달을 수가 있었다.

 

비극, 피하고 싶은 인간 내면의 감정들을 극적으로 꺼내놓는 이런 연극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을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 중에서도 비극을 가장 높은 가장 발전된 예술장르로 평가하였다. 우리는 삶을 모방하여 연극을 만들고, 연극을 보면서 삶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비극은 고귀한 행동의 재현이며, 즐거움을 주는 언어를 작품의 각 부분에 종류별로 따로 사용하며, 보고 형식이 아닌 드라마 형식을 띠며, 연민과 공포를 통해 이러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한다. 여기에서 '즐거움을 주는 언어'란 리듬과 선율을 가진 언어를 의미하고, '작품의 각 부분에 종류별로 따로 사용한다'라는 것은 작품의 어떤부분은 운율로만 진행되고 어떤 부분은 노래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한다. - 「시학」6장[출처]

 

이번에 내가 마주한 감정은 연민, 공포, 분노, 짜증, 답답함 등이었다. 마주하기 싫은 짜증나는 감정이 엄청나게 휘몰아쳤고, 이전에 나에게도 이러한 파괴적인 에너지를 느꼈던 경험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반대로 이러한 경험이 내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이처럼 비극은 내가 실제로 겪으면 괴로울 일을 거리를 두고 무대에서 보는 것으로 대체하여 심리적인 안도감과 재미를 불어넣어준다. 비극적인 상황을 관람하며 그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인 인식능력이 능동적으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비극은 모두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상황이다. 불행의 불구덩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일은 감정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피할 수 없는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감정이입이 훨씬 깊다.

 

그리고 이 감정적인 카타르시스 끝에 내가 떠올린 것은 비극적인 삶을 통해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었다.



 

3. 인간은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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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연극 책자의 소개 글과 내용이 살짝 거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서로서로 고립되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공연이라기보다는 가정 폭력이 낳은 잔상이 깊다고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변에서 온 아버지는 스스로 고립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인정머리 없는 뼈다귀 같은 서울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공포감으로부터 안전하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시작되었다고 보여 졌다.


스스로 고립된 아버지는 강제적으로 아들들을 바깥세계로부터 단절시킨다. 그들이 아버지의 폭력을 받으며 듣고 배워온 바깥 세계는 훨씬 더 위협적이고 무서운 세상이다. 공포감을 얻은 믿음은 그들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박탈해냈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 아들들의 모습에서 본 더 본질적인 상황은 폭력을 안전하다고 믿는 심리적 방어기제였다.

 

한 심리학 서적에서 오래 전에 보았던 문구가 기억이 났다.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사람은 불행한 상황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지만 손쉬운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고 만다는 것이었다. 나쁜 남자만 만나며 스스로를 불행 속으로 밀어 넣는 여성들, 매 맞는 아내들, 부정부패의 관습을 증오하면서도 결국 자신도 한통속이 되가는 사람들 등이 다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익숙한 불행으로 이 연극은 끝이 난다. 형은 스스로 이 연극을 끝내야겠다는 엄청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결국은 스스로 죽지도 탈출할 의지도 없이 끝이 난다. 동생 역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의문을 던지며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며 폭력 앞에 굴복하고 마지막장면에서는 도망갈 길 앞에서도 스스로 문을 닫고 만다. 그야 말로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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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비극적인 여운을 주는 이 연극을 쉽게 권할 수는 없을 거 같다. 그러나 이토록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전이를 받을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될까 싶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재미있게 봤거나, 엄청난 연기력과 분위기에 압도 당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면 그리고 불편한 감정을 기꺼이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번 달이 지나기 전에 꼭 보기를 추천한다. 분명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최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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