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몸을 넘어선 몸

책 <포스트 바디> 리뷰
글 입력 2019.02.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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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바디
: 레고인간이 온다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자연



나의 몸된 조건은 나만의 독특한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중략) 내 몸이 바뀌면 내가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255쪽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생존에 유리한 무언가를 갖고 태어난다. 인간은 뛰어난 뇌를 가진 덕에 자신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오늘날의 인간은 전지구적 관점에서 '암세포'라 불릴 정도로 왕성한 적응력과 번식력, 파괴력을 자랑한다. 물론 자연재해는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인류는 자연재해 예보 기술을 발전시키고 재해 발생시 체계적인 대처법을 마련하는 등 예상치 못한 자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류도 정복하지 못한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연, 즉 우리 자신의 몸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생로병사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태어난 이상 늙고 병들며 죽을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느 순간 모두 깨닫는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자신의 시간이 흐르며 나이들어가는 육체를 극복할 수는 없다. 책 <포스트 바디>는 그 당연한 사실을 뒤집을만한 기술을 소개하며 몸 이후의 몸. 미래의 몸이 얼마나 달라질지, 달라진 몸이 우리 존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야기한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 질병을 더 효과적으로 치료하게 된다든가, 평균수명이 몇 년 더 늘어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책이 다루는 미래는 '포스트 바디 시대'로 새롭게 명명될만큼 몸에 관해서 지금껏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뒤바뀌는 때이다.



미래는 곁에 와 있다



포스트바디는 결정된 바디가 아니다.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환경과 공조하면서 다시 생성하는 몸이다. 브루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캐서린 헤일스는 라투르와 비슷한 이유에서 우리는 항상 포스트휴먼이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들의 연장선 위에서 '우리는 이미 항상 GMO들이었고, 우리의 몸도 항상 GM바디, 포스트바디였다'고 말하고 싶다.

119-120쪽


유리병에서 태어나 아무런 감정이 없는 아이들, 프랑켄슈타인이 시체 조각을 붙여 만든 괴물 등 때로 우리 몸에 적용되는 과학 기술은 여러 이야기나 미디어에서 극단적으로 다뤄지곤 한다. 책에서 인공자궁 기술과 유전자 변형 기술, 뇌 임플란트 등 우리 몸에 변화를 가져올 여러 기술을 만나며 흥미로웠던 점은 우리가 막연히 미래의 것이라고만 여기던 기술이 이미 현실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이보그를 사전에 명시된 것처럼 '생물 본래의 기관과 같은 기능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기계 장치를 생물에 이식한 결합체' 로 정의한다면, 사이보그는 이미 현실에 존재한다. 정의대로라면 시력이 나빠 안경을 쓰거나 이가 없어 틀니를 쓰는 사람도 사이보그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가 너무 '인간적인' 사이보그라는 생각이 든다면 닐 하비슨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예술가이지만 색맹이 있던 그가 색을 인식하는 기능이 있는 마이크로칩을 뇌 속에 심어 색깔을 소리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게 벌써 15년 전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인류 최초의 사이보그'라고 선언했다.

인공지능 분야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2015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알파고는 '알파고 마스터'를 그쳐 어느덧 '알파고 제로'라는 새로운 버전이 등장했다. 알파고 제로는 기존의 알파고 시리즈가 인간이 이미 학습한 바를 바탕으로 학습하는 것과는 달리 기본적인 바둑 규칙을 바탕으로 해 자체적인 학습을 한다. 그는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결에서 89승 11패를 기록하며 자체 학습의 우수함을 증명했다.

물론 현실에 스며든 기술 외에, 지금으로서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다. 원한다면 데이터의 형태로 영생을 살아갈 수 있기에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세상이나 인공자궁의 발명으로 수정부터 출생까지 체외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이 그러하다. 이런 기술이 상용화될 미래에는 바꿀 수 없는 몸, 주어진 몸을 토대로 쌓아올린 철학과 생활 방식은 무너질 것이다. 포스트 바디의 시대는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아니면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까. 그때는 예술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인간의 근간을 이뤄온 사랑, 유대, 가족과 같은 형태가 이어지질도 미지수다.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혁명이란 사회의 기본적 구조 자체에 생기는 질적인 변화를 일컫는다. 그렇게 사회 구조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변화가 생긴다면 먼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중략)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중요하고 절박한 질문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부 전문가의 학문적이며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일상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몸으로 부대껴야 하는 실존적인 질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18쪽



<포스트 바디>의 부제는 '레고인간이 온다'이다. 이제는 레고를 조합하듯 몸도 선택의 영역에 포함된다. 자유로워질수록,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행복하기보다는 혼란에 빠지기 쉽다. 책에 막바지에서는 혼란스러운 포스트 바디의 시대에 기술을 사용하는 일은 '자기애와 허영심의 문제'라고 일축하며 목숨을 살리는 일과 같이 꼭 필요한 일에는 기술이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기술 사용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꼭 필요한 일'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자기애와 허영심의 경계는 모호하고 때로 둘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의 가치관으로 미래의 기술을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미래에서 결국 중요해지는 건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뻔한 결론일 수도 있겠지만 더이상 몸이 유효하지 않은 시대에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의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 속에는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포함되지만 이제는 인간이 무엇인지도 재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찰없이 맞이한 미래는 혼란 그 자체일 것이다. 바탕이 단단하지 않으면 오롯이 자신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도 행복하기 어렵다. 점점 몸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 되어간다. 어떻게 사느냐를 넘어서 자신을, 그리고 인간 존재를 무엇으로 정의하며 사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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