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필로(FILO) 6호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글 입력 2019.02.21 22:4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FILO>


KakaoTalk_Photo_2019-02-21-22-37-53.jpeg
 



1.



If you’re not ready to love,

How can you be ready for life?*



“우리가 영화와 언어를 탐색하는 건 맞는데 사랑도 탐색하나?” “해야지! 사랑이 제일 중요하지!” 술기운 탓이었나. 멋부린 구석이 있는 표어에 대한 자기 합리화인지 몰라도, 사랑이 안 되면 영화나 언어가 다 무어냐며 목소리를 높였던 것 같다. …. 스스로 의식하든 못하든 평생 사랑을 찾아 헤매지 않는 이가 있을까. 내친김에 더 우겨보자면, 사랑 자체가 탐색의 과정이다. 그 대상이나 시점은 자기의지와 무관하다. 경험으로 깨닫게 되듯, 사랑이란 무엇을 누구를 사랑해야 할지 알아서 하게 되는 것고 아니고 이때 이렇게 하겠다고 해서 그때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새 사랑의 출현에 위풍당당해지기도 하고 옛사랑의 귀환에 흔들리기도, 두루두루 엷게 사랑하기도 하나만 깊이 사랑하기도, 아름다운 사랑을 맘껏 자랑하기도 추한 사랑을 남몰래 이어가게 되기도 한다. 그렇듯 미리 정해진 상대도 순서도 방식도 없는 사랑은 늘 현재적 활동이고, 뭐니뭐니해도 최고는 지금 하는 사랑이다.


_ 공동편집장 이후경, <편집의 글, 우리 사랑 베스트> 중



*SOKO의 We Might Be Dead By Tomorrow의 가사 중 일부다.




2.



2018년 한 해 동안 영화를 99편 봤다. 99편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고 하자니 어떤 영화는 눈물을 참지 못할 만큼 감동적이었고 어떤 영화는 졸리거나 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심심풀이 땅콩을 까듯 가볍게 본 영화와 공부하듯 작정하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영화. 그런 식으로 아흔 아홉 편의 영화 리스트가 생겼다. 보거나 읽었고, 보는 데에도 뚫어지게 보거나 흘겨보는 등, 99편의 영화는 모두 다른 보기를 통해 봤다. 나름의 기준을 정하거나 선호도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일은 몹시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백 편에 달하는 영화는 그저 ‘2018의 영화’라는 제목 아래 영화를 본 시간 순으로 정리되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속 형제는 나란히 앉아 오직 진실만을 쓸 것을 약속하며 글쓰기 훈련을 한다. 그들이 글을 쓰는 방식은 이와 같다. “우리는 또한 ‘호두를 많이 먹는다’라고 쓰지, ‘호두를 좋아한다’라고 쓰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좋아한다’는 단어는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 나는 ‘좋아한다’는 말을 사용하고 싶을 때 그들의 글쓰기 훈련을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들이 옳다. 좋아한다는 말에는 역시 정확성과 객관성이 부족하기에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지난 한해 동안 영화를 아흔아홉 편 봤다’라고 한다.


그러나 영화를 그만큼 봤다는 사실을 많고 적음의 심판대에 올려두고 나면 다시 문제가 생긴다. 얼만큼 많이 보아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기준은 몹시 애매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해의 보통 몇 편의 영화를 보는가, 유명한 평론가들은 영화를 보는 데에 얼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다가 그들도 넷플릭스나 왓챠에 가입해서 영화를 볼까? 혹은 그들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얼만큼의 영화를 봐야하는지, 그것은 호두를 많이 먹는 일과는 너무나 다른 결이다.


이후경이 말했듯 사랑은 (그러니까 영화에 대한 사랑까지) 두루두루 엷게 사랑하기도 하나만 깊이 사랑하기도 하는 것이며, 덧붙여 오래된 사랑, 그 하나를 평생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새로운 사랑에 너무나 쉽게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다. 때문에 몇 편의 영화를 보았느냐, 많은 작품을 보았느냐로 영화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하다. 나는 결국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짐작하지 못한 채 지난 해 내가 본 영화들의 목록을 들춰보았고, <FILO> 6호에 실린 영화 목록과 비교해보거나, 어림짐작해도 200시간에 달했을 그 시간들을 생각해봤다.


<FILO> 6호에서는 그간의 초대 필자들, 감독과 평론가, 정기구독자, 6호 텀블벅 후원자들이 그들의 2018년 베스트 10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총 123명의 감독과 134편의 영화는 결국 그들 각자의 사랑, 그들의 최고의 사랑이었으며, 2019년을 맞아 얼핏 과거가 되어버렸고, 그러나 과거라는 이름으로 평생 현재를 침범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한 열 편의 영화를 살펴보는 일은 결국 그들의 사랑을 살펴보는 일이어서 나는 이따금 나와 공통의 것을 발견하고 놀라거나 지독히 그 사람만의 성향을 보며 질리기도 한다. 무엇을 어떻게 사랑했든, 그것이 뜻밖의 것이었든 예정된 운명이었든 영화는 사랑과 같이 필수불가결의 것이다. <FILO> 6호는 결국 베스트 사랑에 대한 이야기, 베스트 사랑의 탐구 과정이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책




3.



그들이 열 편의 영화를 꼽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 유쾌한 일이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하다. 베스트 목록이라는 것은 얼마간 불공평한 일이기도 하며(장미셸 프로동), 베스트를 꼽는 일이란 끔찍하고 지독한 과제기도 하고(클레어 드니), 2018년에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 당장 별 게 떠오르지 않기(카세 료)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고심 끝에 만든 영화 목록을 살피고 짧거나 긴 글들을 읽으며 깊은 사랑을 봤다. 그건 그들의 영화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는 감독이 영화에 담아낸 사랑이었고, 또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어 짧게 옮기고(기록하고) 싶다.


*


내가 홍상수 영화만이 갖는 대상과의 거리감 안에서 무언가를 구하며 살아왔구 하는 새삼스런 자각 같은 것이었다. 그 거리감을 해명할 방도를 지금도 갖고 있지는 못하나, 거기에 아끼고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최선의) 마음이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조심스레 여투어두고 있다. 간단히 말해 홍상수 영화는 자신이 찍고 있는 인물들, 인물들의 말, 그렇게 이루어지는 작은 세상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 (중략) … ‘아주 천천히 다시 쳐다보는 것’은 사랑의 행위다. <풀잎들>에서 지영이 연애하고 있다는 말에 “좋다. 사랑이 최고야. 나머진 뭐 다 그게 안 되니까 하는 거야”라고 응수하며 보이는 천진난만한 경수의 표정을 홍상수 영화는 정말 아끼고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간절하고 무구한 시선과 말들은 우리 삶에서는 쉽게 구겨져서 다른 시선, 다른 말들 속에 덮여버린다. 아니면 가녀린 풀잎이나 새싹 같아서 온전히 보호되기 어렵다. 현실에서 솔직함이나 정직은 그 자체로 실현되기 힘들다. 그렇다는 것이 홍상수 영화가 현실의 결핍과 부재에 대한 보상 지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게 다’라고 할 때, 홍상수 영화는 언제나 그 ‘다’에서 움직인다. 아니, ‘이게 다’일 때만 홍상수 영화는 움직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반영이든 표현이든 재구성이든 홍상수 영화는 그 자신의 영화적 시간을 전체화하고 세계-내적-존재로 실페화하려는 움직임을 포기하지 않는다.


_ 정홍수*,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중



한 편의 영화를 보며 깊은 감흥을 느꼈다고 한다. 그 장면을 공들여 솜씨있게 묘사하며 영화가 주었던 그 순간을 되새기고 기억하려 애쓴다. 누군가 무엇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누군가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누군가는 글을 쓴다. 다른 것들에 쉽게 덮이고 혹은 무참히 밟혀버릴 것들에 대해 소개하고 글을 남기는 일.  그리고 <FILO> 6호를 위해 열 편의 영화 목록을 추리는 일. 그런 일들을 떠올리면 사랑이 보인다. 우리의 베스트 사랑에 대한 기록을 보는 일이 좋다. 누군가의 사랑을 듣고 보고 읽는 일은 언제나 또 다른 사랑을 불러오는 법이다. 나도 가만 열 편, 혹은 스무 편, 영화들을 꼽아본다. 베스트 사랑을 기억한다. 



*정홍수는 문학 평론가다. 그는 <FILO> 6호에 영화 열 편을 선호도순으로 번호를 매겨 나열했다. 개봉 순서나 가나다순 무순에 비하면 선호도순이 주는 어떤 확신 또는 자신감 마저 느껴졌다.


KakaoTalk_Photo_2019-02-21-22-44-07.jpeg
 
KakaoTalk_Photo_2019-02-21-22-44-17.jpeg
 

필로 FILO NO.6

- 2019.01/02 -



펴낸곳 : 매거진 필로 편집부


분야

잡지 > 예술/대중문화/영화


규격

170 * 240 mm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8년 12월 27일


정가 : 14,400원


 

[양나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