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신선함과 거리감 <FILO no.6>

'대상'이 아닌 '수단'으로서의 영화
글 입력 2019.02.20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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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영화란 '영화관에 가서 보는 영화'를 뜻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기억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적게 혹은 크게 상업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상업성의 유무를 영화의 정의 중 하나라고 받아들이는 나에게 '영화'라는 매체는 쉽게 주류와 비주류로 나눠진다. 너무나 단순하게도 나에게 영화란,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주류' 영화와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는 상업성이 배제된 '비주류' 독립영화라는 2가지 부류로 나뉜다. 지긋지긋한 이분법적인 사고다. 내 사고가 얼마나 얕은 사고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논리로 생각의 한계를 분석하기 이전에 나에게 '영화'라는 매체가 남기는 개념은 딱 이 정도였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나에게 <필로>라는 영화 비평 잡지는 영화라는 매체의 방대함과 입체적인 성격에 대한 경험을 조금이나마 겪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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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O no.6>

필로 6호


The Best Film of 2018

In Search of Cinema, Language, and Love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






그 경험이 어떤 것이었는지 설명하기 이전에, 잡지의 구성 방식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영화 비평 잡지라는 말 그대로, 이 잡지에는 여러 국적의 평론가들이 각자 선정한 지난 2018 베스트 영화 10개 목록들과(The Best Film of 2018) 그 영화들에 대한 다양한 비평이 담겨 있다. 잡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비평으로만 이뤄져 있다. 내용 구성 중 가장 큰 기준은 바로 평론가들이다. 평론가들의 베스트 10 목록에 따라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영화, 영화 소개 등등이 주가 아닌, 개개인의 평론가들을 우선적인 기준으로 그들의 비평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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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평론가 중심으로 잡지가 구성되어있다.



사실 처음 이 잡지를 접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점은 거리감이었다. 잡지를 읽기 시작한 후부터 얼마 전에 본 키스 해링 전시가 계속해서 떠올랐는데, 아무래도 그의 전시에서 내내 강조했던 "동떨어진 예술의 엘리트성을 넘어 대중성을 우선으로 여긴다"는 그의 신념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잡지는 내게 '예술의 엘리트성'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이유는 잡지에 담긴 비평들을 적은 평론가들에게서 바로 그 '예술의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꾸만 학부 때 배웠던 철학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것도 한 몫했다. 영화 비평 잡지에서 레비나스를 접할 줄이야..


게다가 일단 내가 본 영화가 없었다. 이 잡지에서 찾을 수 있었던 내가 본 영화는 잡지의 마지막 '독자 투표'에 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잡지를 읽기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약간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그들만의 대화를 엿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위에서도 적었듯이 평론가 중심으로 내용이 구성되었기 때문에, 잡지에 담긴 비평은 보다 많은 대중들을 위해 적혔다기보다는 평론가들 제각각의 개성과 취향이 짙게 배어있었는데, 가장 처음 잡지에 등장한 평론가들의 문체나 쓰는 단어들과 관심이 (조금은 더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적이고, 추상적이고, 시적이었던 것도 잡지의 첫인상을 더 멀게 느끼게 한 데 한몫한 것 같다. (감히 말하자면, 잡지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작은 빛>에 대한 평론인 '빛으로 왼 주문'과, 두 번째로 등장하는 '미완의 작업'이란 두 글이 잡지를 통틀어 가장 어려웠던 글이었다.)



예를 들어,

"신체적 표면에서 여전히 숨 쉬는 기억의 잔상들을 잠시나마 활성화하는 빛의 운동이다."나 "명백한 의미가 결여된 상황들을 서사적으로 말이 되게 만들 임무를 맡은 주인공들은 사실상 픽션의 효용과 남용에 대한 알레고리를 상연한다." 등과 같은 문장들을 접했을 때 이해하기까지 꽤나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해야 했으며, 그럼에도 결국 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문장들을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꽤나 길게 적은 첫 고비를 넘겨 진입장벽을 넘어서면 모종의 감각이 나에게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실제로 처음 두 글을 넘기면 보다 읽기 쉬워진다.) 이때 위에서 계속 말했던 '평론가들 중심'으로 구성된 내용이 큰 역할을 한다.


위에 적은 예시처럼 일반인에게 낯설고 어려운 문체로 비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간단한 편지(이메일)만 쓰기도 했다. 10가지 영화 모두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누군가는 한 가지 영화를 아주 깊고 자세하게 들여다봤다. 그들이 영화에 요구하는 것 혹은 받은 것들도 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영화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보고, 어떤 사람은 언어라는 수단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추상적인 무언가에 집중하고,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대상을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하거나, 영화가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 자체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다양한 비평-평론가를 통해 내가 얻은 인상적인 느낌은 나보다 영화라는 매체를 더 집요하게 사랑하는 그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들에게 영화는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매개체'였다. 단적인 예로 베스트 10 목록에 대한 거부감이나, 영화에 '순위'를 매기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짧게나마 표현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화가 나에게 쉽게 소비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는 것과 다르게, 그들에게 영화는 마치 언어와 같다. 그들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영화에 담겨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그것을 영화가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집중한다. 언어가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각기 다양한 말들로 어떤 것을 표현하고 담아내려 하고, 또 그 말들을 받아들이는 누군가가 또 각기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언어가 표현하는 '수단'인 것처럼 그들에게 영화 또한 수단이며 매개체이다. 그렇기에 항상 사람마다 다르게 와 닿는 말들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것이 애매한 것처럼, 영화 또한 비교되고 평가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태도를 자주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 속 영화는 다양하고, 방대하고, 입체적이다. 잡지에 실린 평론가들은 영화 자체를 분석한다기 보단, 자신과 '영화라는 수단에 담겨 있는 것들'과의 연결 지점에서 평론을 시작한다. 그만큼 그들의 평론은 평론가 자신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또 동시에 자신의 평론이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이라는 듯의 뉘앙스를 결코 풍기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 그러니깐 '나'의 느낌 감각 경험 생각을 중요시 하지만, 그것을 객관적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표현하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자신의 견해인 이 비평을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전달해주려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자신의 느낀 바를 자신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만 집중했다고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그리고 이 부분이 내가 잡지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다. 동시에 신선했던 경험이기도 했다. 보통 잡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칼럼니스트들의 글이 다듬어진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과 다르게, 이 잡지에 실린 그들의 평론은 좀 더 날 것이었다. 평론가들 자신이 직접적으로 글에 드러나는.






흥미로운 잡지였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과 견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여러 평론가들의 2018 베스트 10에 자주 등장하는 <더 포레스트>, <카우보이의 노래>, <하이 라이프>, <사령혼>이라는 영화에 관심이 생겼고, <라 플로르>라는 14시간짜리가 영화가 있다는 사실은 내가 얼마나 좁은 범위의 영화를 보고 살았는지에 대한 충격도 줬다. (14시간 짜리라니...!!!) 중국 공산당의 대약진운동 속 자볜거우 강제노동수용소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듯한 (다큐 형식인 듯하다.) 왕빙의 <사령혼>이라는 영화는 긴 러닝타임을 가졌음에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현실이 담긴 영화는 (게다가 국가-사상과 그에 희생된 개인은 더더욱..) 가볍게 볼 수 없어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봐야 할 것 같지만, 감독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그저 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영화에 대한 평은 영화를 봐야겠다는 확신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정성일 평론가의 '육체, 목소리, 역사 2 - 마오의 채무'라는 <사령혼>과 감독 왕빙에 대한 글이 와 닿았고, 이 글 외에도 이 잡지에는 왕빙이란 감독에 대한 글이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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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도 있었다. 역시 거리감이다. 진입장벽이 높다. 몇몇 글은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에 좀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잡지에 실린 글들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굳-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글의 문제라기보다는 이 분야의 이런 분위기 밖에 있는 내가 그 안을 들여다볼 때 생기는 진입장벽이 커서겠지만, 글쎄 뭐랄까. 다양성과 개별성이 전적으로 존중되는 분위기가 오히려 그 밖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의 개인적인 상상을 보태보자면 잡지의 모든 면이 잡지 편집자분들의 영화에 대한 태도나 취향, 개념이 담뿍 담겨있다는 느낌이었는데 그래서 모든 면에서 한결같이 내가 배제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리뷰를 쓰며 잡지 속 평론가들을 계속 '그들'이라고 지칭한 것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읽는 내내 내가 속해있지 않은, 나와 융화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신선했고 그래서 아쉬웠다.



PS1. 아 적어도 좀 더 읽기 쉬운 평론을 잡지의 앞쪽에 있게끔 순서를 구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처음 잡지를 접하시는 분들에게 잡지의 첫 두 글에서 부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기를.


PS2. 잡지의 편집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든다. 목차 시작 평론가들이 뽑은 10개의 영화들을 나타낸 페이지부터 중간중간 삽입된 영화 장면이 담긴 이미지와 글들의 위치 구성까지 읽기 쉬운 디자인으로 구성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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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 잡지 FILO 6호를 읽고 적은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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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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