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무튼, 책을 읽어야 한다. [문화전반]

글 입력 2019.02.04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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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첫 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수년 전에도 세웠던 목표를 다시금 다짐했다. 그것은 바로, 다독(多讀). 책 많이 읽기. 수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다짐을 했을 게 뻔하다. 2019년 1월이 다 가고 벌써 설 연휴를 보내고 있는 지금, 과연 몇 명이나 성공했을까.


나는 읽은 권수는 별 볼일 없어도 어쨌든 목표를 수행했다. 2권. 잡지와 르몽드를 포함하면 4권. 만화책도 포함하면 8권. 양심적으로 잡지까지만 계산해서 4권. 한 달 동안 도합 4권을 읽었다. 1주일에 1권씩 읽은 꼴이다. 참 애매한 수치다. 열심히 읽었다고 스스로 칭찬하기에는 모자라 보이고, 그래도 나름 꾸준히 읽었다고 평가할 수준은 되는 것 같고. 굳이 변명하자면, 1월 중순까지는 매일 현대미술사 수업을 듣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었다! 그러니까 1월 한 달 간 나의 독서 실태에 대한 평가는 A~C에서 B정도 주고 싶다.


원래 습관을 들이는 첫 단계가 가장 어렵지 않은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는데, 출발선을 넘었다는 데 의의를 두려고 한다. 참고로 올해 읽은 책 2권은, 정세랑 작가의 <옥상에서 만나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 광인의 수기>이고 잡지 한 권은 <뉴 필로소퍼 4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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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해진다. 즉, 정직해진다는 말이다. 여태껏 해온 것처럼 ‘올해는 책 좀 읽어야지!’하고 결심해봤자, 나라는 인간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 드디어 인정했다. 작년에도 나름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은 했다. 시도했던 방법은 일단 도서관에서 많이 빌리기. 그 결과 도서관에서 빌린 후, 반납기간이 다가올 때까지 1페이지도 읽지 않고 그대로 도서관에 반납한 책이 수십 권이다. 진심으로 스스로의 게으름에 질려버린 나는 2019년에는 독서가 아닌 다독을 결심하며 조금 더 실질적인 노력을 들이기로 했다. 바로 기록과 공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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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서를 하며 2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책 속 문장이다. 내가 평소에 내뱉고 싶었던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문장 등을 발견하면 바로 폰 메모장에 적는다. 아래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적은 문장이다.



11p 그들은 가까운 지인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 으레 그렇듯이 죽은 것은 자기가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을 느꼈다.


26p 이반 일리치의 삶은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했으며, 그래서 대단히 끔찍한 것이었다.


31p 그들로 하여금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 이렇게 격의 없이 대해 주다니>라고 느끼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며 그 사실 자체를 즐겼던 것이다.


67p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삶에 스며든 독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82p 이러한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반 일리치는 위안이 될 만한 다른 방어막을 찾았으나, 이 방어막들은 잠시 그를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는가 싶다가도 곧 무너져버렸다. 아니, 무너졌다기보다는 속이 보이도록 투명해졌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84p 모든 이들의 관심은 그가 과연 언제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게 될 것인지, 과연 언제 사람들을 그의 존재로 인해 야기된 의무와 압박에서 해방시켜 주고 자기 자신도 고통에서 자유롭게 될 것인지에 쫄려 있었다.


100p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이 하도 뒤엉켜서 이제는 뭐가 뭔지 도무지 가닥조차 잡을 수 없었다.



톨스토이의 문장은 흠칫, 하고 속을 들킨 기분이 들게 할 때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문장에 반응하게 된다는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나에게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바꿔 말해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한동안 내 머릿속을 차지한 물음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을 말한다.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 ‘어떻게 살 것인가 – 어떻게 죽을 것인가? -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 생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실하고 자유로운 삶은 쉽지 않겠지? 분명히 어려운 길이다.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모른 척 외면하면 소설의 주인공처럼 뒤늦게 후회하며 죽어갈 거야. 앞으로 어떤 태도로 삶과 죽음을 대해야 할까...‘


생각에 꼬리를 무는 것. 독서를 하며 얻는 즐거움 중 하나다. 골치가 아픈 고민은 멈췄다가 기록해둔 문장을 보고 다시 이어진다. 문장을 기록하는 건 분명 좋은 습관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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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독서 과정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서 과정의 기록은 ‘완독’에 매우 효과적이다. 수기는 금방 피로해져서 어플의 힘을 빌리는데, 내가 쓰는 어플은 ‘데일리북 pro’다. 이 어플을 통해 읽은 날과 페이지를 기록하여 독서에 걸린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옥상에서 만나요>의 경우 총 280페이지를 읽는 데 3일이 걸렸다.


어플의 첫 페이지에 한 달간 읽은 책이 표시된 달력이 있는데, 여기에는 완독한 책만 표시된다. 내가 책을 끝까지 보고 반납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기능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든 끝을 봐서 달력에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달력을 보고 있으면 꽉꽉 채우고 싶은 욕구가 돋는다. 하지만 이렇게나 활활 타오르는 의지는 금방 꺼질 가능성이 높다. 난 금세 게을러지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택한 방법이 공개다.


누구에게 어디에 공개할 지는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나는 SNS에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앞에서 말했듯이 1달에 4권이 적은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도 아니기에 남에게 알리기 조금 머쓱한 기분으로 올렸다. SNS를 팔로잉하는 지인들이야 내가 책을 몇 권 읽는지 알 바가 아닐 테니, 크게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에게는 효과가 있었다. 2월 말일에는 최소 5권이 표시된 달력을 올리고 싶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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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꾸준히 읽는 습관을 들이고 싶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 정말로. 나처럼 독서가 몸에 배지 않은 사람은 계획적으로, 의무적으로, 꾸역꾸역 책을 읽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아무튼, 책을 읽어야 한다. 기록과 공개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스스로 진지하게 독서에 대한 다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독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독을 결심하기까지’로 이어집니다)



[오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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