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 어른인 것을요 _ 동생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들어주어야 해요
글 입력 2019.01.2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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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 18일, 동생이 태어났다. 지금으로부터 딱 11년 전이니, 딱 우리는 그 시간을 함께 보낸거다. 그 시간들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기보다는 힘든 시간들도 종종이다. 누군가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딱 그런거지만 동생은 좀 더 유난스럽다. 너는 언제 그래서, 어른이 될까?


먼저 그 애에 대해 설명하기 전,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종종 '성숙한'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꼰대스러운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하는 이 정의가 애매한 단어는 사회적으로, 혹은 우리의 잠정적 무의식 속에서 '규정해 놓은 기준에 맞는 사람'으로 연결된다. 공식적으로 어른이 되는 20살은 곧 의무교육을 모두 마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기이다. 즉, '어른'이 된다고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때는, 정확하게 사회화 과정이 완료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을 단 영화의 주인공은 혜영과 혜정이다. 둘은 자매관계이며, 동시에 혜영은 혜정의 보호자 관게에 있다. 어렸을 적부터, 혜정은 중증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혜정과 음악과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며 공연을 준비하는 일 등 수많은 일들이 펼쳐진다. 다른듯 같은 일상들의 연속이다.


앞서 말했듯이 필자에게도 동생이 있다. 두 명이지만, 이 글에선 막내의 이야기만을 하게 될 것 같다. 그 아이 생각이 영화의 내내 맴돌았기 때문이다. 동생은 옛날부터 유난이었다. 어렸고, 또 더 자유분방했다. 누군가 말하기를 ADHD였다. 그것을 가진 친구들은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필자의 동생은 말이 많았다. 또 못되게 굴기도 일쑤다. 우습게도 노자의 성악설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일들도 종종이었다. 또 그 애는 물음이 많다. 그리고 어쩔땐 일부러인지 물었던 것을 자꾸 묻는다. 그러다가 그 속엔, 그 아이의 언니의 좌뇌를 때리는 질문이 덩그러니 나온다.


때는 3일전이었다, 그 애는 잠자리에 누워 그 옆에 누운 필자에게 '왜 아빠는 나를 무시해?'하고 물었다. 핸드폰 게임을 하고 싶어하던 동생에게 아버지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자러가라고 강압적으로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 아이에겐 아빠가 자신을 무시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이렇게 나의 좌뇌를 맞은 순간엔 생각하게 된다. 그 아이에게 어디서부터가 훈육이고 어디서부터가 '어린 존재'에 대한 무시와 강압인지. 어디서까지가 무언가가 나보다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행하는 차별과 무시인지. 그 친구와 지내다가 생각하게 된다.


밖으로는, 그 아이와 지내면 불편한 사람이 되어야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웃어 넘길 수 없는 상황들의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어른이 되면'의 감독이자 출연자인 혜영언니, 온라인 상에서는 '생각많은 둘째 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어떤 유투브 영상의 댓글에서부터였다. 그 댓글에서 '둘째 언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장애인이 일상 생활에서 내는 소리에 익숙하지 못한지 알았다고 말했다. 영상 내내에 담긴 화면 밖 혜정의 소리에 달린 사람들의 "옆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는 뭔가요"라는 댓글에 대한 답변이었다. 둘째언니는 그렇게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영화에 담았다. 또 그것을 트위터의 글들과, 영상들에도 열심히 담고 있다. 정부지원금을 주기 위해 보러간 면접에서 면접자가 서른살이 넘은 혜정을 세살 아이처럼 대하는 모습을 말한다. 그렇게 장애인의 인권을 한발짝 앞으로 이끈 누군가를 검색창에 치면 바로 아래에 나오는 단어는 '메갈'이다. 메갈은 요즘 왜인지 몰라도 부정적 이야기를 할때나 언급되는 데 등장하는 장소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무래도 '어른이 되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혜정이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밴드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그녀의 모습은 진짜로 음악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필자의 동생도 멋쟁이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애는 레고, 혹은 수학 문제 등을 풀어내는 것을 잘한다. 그리고 인사를 잘한다. 심성이 착하기 때문인지 -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내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은 아닐런지 망설여지지만 - 혹은 무언가에 꽂히면 그것을 반복해야 하는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근 몇년간 그 아이는 인사에 꽂혀 가족 모두에게 외출마다 정석의 인사를 건넨다. "언니 다녀오세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사랑해"라며, 교과서적이지만 감정은 잘 느껴지지 않는 그 아이의 인사들. 그것들은 인간 세상에 애착을 갖게 한다. 그런 것들이 있다. 혜정씨의 춤과 동생의 인사처럼 주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하루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종종 댓가도 없이 받게 된다.


그래서 들어줘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감싸주고 함께 하는 것이 때론 큰 힘이 들 수도 있지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너무 사람에 지쳐 그와 한 방에 있고 싶지 않을때도 있고, 또 반복되는 질문에 '그 질문 저번에도 했잖아'라며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종국엔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다시 그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동생 뿐만 아니라 필자도, 비정상인 뿐만 아니라 정상인도 쉽사리 누군가를 화나게 할 수 있는 존재이니까. 우리 모두와 똑같이 더이상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작음이라는 특성에, 어떠한 부족함에, 모든 것을 덮어씌우면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도 가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 이제는 생각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봐줄 능력도 없는 사람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고 누군가를 굶기지 않고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필자에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영화가 알려준 것은, 어른이라는 단어에 누군가를 끼워맞추고 강압을 건네지 말자는 것이다. 모두들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혜영언니는 혜정언니의 말을 들어준다. 대답하기 어려운 말들에는, 그저 동생의 말을 따라하고 반복한다. 그리고 필요한 대답을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을 해주고, 그 말을 들어주고, 한박자 쉬더라도 다시 반응과 대답을 건네주는 것. 무시가 아니라 말이다.


그런데 왜 이 세상엔 그런 어른들이 자꾸 안보일까. 혜정언니와 필자의 동생같은 사람들은 왜 필자가 탄 지하철과 지나다니는 공간들에서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의 '어른'에 대한 기준이, 존중할 '존재'들에 대한 기준이 너무 편협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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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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