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명줄처럼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곡예, 고아 이야기

글 입력 2019.01.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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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생명줄처럼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곡예
고아 이야기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들이 어느 순간 모여 탑을 이루더니 찬란하게 빛난다. 다 읽고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받아든 기분이다. 예술 작품을 보면서 감수성에 젖는 것은 손에 꼽는 편인데, 아스트리드와 노아가 마지막 공연을 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사실 누구나 특별하게 느껴지는 주제가 따로 있으므로, 나도 내가 느낀 감동을 뭐라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한 간단한 감상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이 책은 생동감이 넘치는 책이에요. 아주 화려한 표현과 수사는 없지만, 상상력에 기대어 쓰여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몰입감 있어요. 좋은 책이에요! 사실, 이 책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떠올리게해요. 두 여성이 나오고, 책 전체를 함께 이끌어가는 화자이자 주연의 자격을 가지고, 그들의 질투섞인 복잡미묘한 감정이 단순한 차별을 넘어 마침내 위대한 것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그래요. 하지만 분명히 다른 이야기랍니다."

이렇게 말한다해서 내가 이 책에 가지고 있는 애정이 빛 바래지 않았으면 한다. 처음에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삐뚜름한 자세로 책을 읽다가 기어코 역을 지나치더니, 침대까지 멈추지 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세계의 거대한 폭력 속에서 꽃피는 두 여자의 연대는 책을 덮고나서 옛날에 읽었던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올라 다시 읽게 되었다. 프리뷰에서 예상했던 대로, 책을 읽고나니 더 이 두 콤비가 닮은 것 같이 느껴진다. <고아 이야기>를 읽은 모든 사람들에게,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아직까지 도저히 잊혀지질 않는 한 구절을 공유하고 싶다. <고아 이야기>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태양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그들의 곡예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신은 진실을 갖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신은 밤이 낮을 가리게 하시고,
낮이 밤을 따라잡도록 하신다.
신은 해와 달을 소용이 되도록 만드셨다.
해와 달은 정해진 주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신은 위대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다."

탈레반이 말했다.

"무릎을 꿇으시오."

"오, 신이시여! 용서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당신은 가장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함시라, 여기에 무릎을 꿇으세요.
그리고 아래를 보세요."

마리암은 시키는 대로 했다. 마지막으로.

천개의 찬란한 태양 중



하라미 마리암이 카불에서의 삶에서 얻은 것은 부조리와 순응의 태도밖에 없었다. 그 잔인한 전쟁터, 장소를 가리지 않는 폭격탄이 나의 어머니 아버지를 태워버리는 그곳에서도 그녀는 세계의 원리와 자비를 이해했다. 그래서 마리암의 마지막은 개인의 생존과 이익을 능가하는 고귀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라일라에게 행복과 자유를 선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라일라가 그녀에게는 새로운 태양인 것이다. 노아는 아스트리드에게 도움을 받던 연약한 존재였지만, 아스트리드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아스트리드에게 도움과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할때 더 특별하다. 노아에게 아스트리드는 새로운 태양이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아스트리드와 약속한대로 영원히 떠나지 않고, 아스트리드의 태양이 되어주었다.


<고아 이야기>의 아스트리드와 노아도 전쟁 속에서 서로를 질투하고 미워하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서로의 행복을 중시했다. 누가 우정이 사나이들의 전유물이라고 했는가. 폭격 속에서도 궁중 그네를 타며 서로의 손을 맞잡은 두 여자의 모습은 전장의 전우애만큼이나 뜨겁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두 여자에게는 '아이'로 대표되는 행복의 씨앗이 보다 직접적으로 몸에 깃든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읽으면서 <고아 이야기>가 <천개의 찬란한 태양>보다 더 미래를 지향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마리암이 죽기 전에 그녀의 지나온 삶을 고찰하고 새로 떠오른 태양인 라일라의 행복을 기원했다면, 노아는 그저 아이 테오를 안고 뛰라고 말했을 뿐이다. 두 소설의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 것도 이런 세세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공중그네 손잡이를 예술가의 손길로 가볍게 붙잡았다면, 이제는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 428p


오래전 기억을 머릿속에서 밀어내며 다시 한번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이제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점프해. 그리고 모든 걸 털어 버리자. - 436p



경계와 젠더를 넘어선 연대와 사랑은 개인을 초월한다. 마지막 그녀들이 보여준 곡예는, 서로를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어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어아이러니하게도 그자체로 아름답고 또 강력한 우정을 표상화한다. 이 장면에서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될 수 있을까! 아스트리드와 노아는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진정으로 이해한 후에는 서로를 위한 갈등과 배신 뿐이었다.


마지막까지 나를 막막하게 만든 것은, 작가가 영감을 받은 것이 사실에 기거했다는 점이다. 책의 도입과 결말에서 작가가 느낀 것을 조금이나마 공유할 수 있었다. 아스트리드가 도입 부분과 에필로그에서 전시회를 기웃거리고 감상에 젖는 장면은 한편으로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도 전시회를 돌아다니며 폭력 속에서도 꽃피는 뜨거운 인간애를 상상하고 이유를 추적했을 것이다. 아스트리드가 조심스럽게 비밀장소를 열어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작가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왠지 모를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이토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도 노아가 테오를 찾아낸 것처럼 그녀가 이야기를 찾아냈기 때문이겠지. 책의 표현대로, 생명줄처럼 위태롭지만 아름다운 곡예같은 이야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아같이 외로운 그녀들은 고아가 아니다. 마지막 순간, 그녀들은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존재하게 된다. 정말 사랑스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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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아 이야기> 줄거리

열여섯 살 노아는 독일 군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고,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순수 아리아인의 혈통이라는 이유로 독일 군대에 빼앗긴다. 그 후 조그만 기차역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갓난아이를 가득 실은 유개화차를 발견하고 나치에게 빼앗긴 자신의 아들을 떠올린다. 결국 유개화차에 있는 아이 중 하나를 안고 눈 덮인 숲으로 도망치면서 그녀의 인생은 한순간에 완전히 뒤바뀐다.

눈 속에서 아이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노아는 독일 서커스단에 거처를 마련하지만 그곳에서 버티려면 공중곡예를 배워야 한다.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서커스단의 주연 곡예사 아스트리드의 반감에도 굴하지 않고 버티며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 간다.

처음에는 라이벌 관계였던 노아와 아스트리드는 차마 말하지 못한 비밀을 숨긴 채 서로에게 의지하며 끈끈한 연대감을 쌓아 나간다. 하지만 두 사람을 지탱하던 우정은 크고 작은 사건들을 거치며 하나 둘씩 무너져 내리고, 상대의 목숨을 구할 만큼 서로에 대한 우정이 견고한지, 아니면 서로에게 숨긴 비밀이 그 우정을 망가뜨리도록 내버려둘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는데…….


*
도서 정보


제목: 고아 이야기(원제: The Orphan’s Tale)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미국소설

지은이: 팜 제노프(Pam Jenoff)

옮긴이: 정윤희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8년 11월 12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504쪽

정가: 14,800원

ISBN: 979-11-965176-0-1 03840

CIP제어번호: CIP2018034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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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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