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젊은 작가 박상영과 오늘날, 한국 [도서]

글 입력 2019.01.2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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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스포주의*


한 시대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과거의 자료를 찾는다. 당시의 영상, 신문, 인터뷰, 사용물건, 책, 논문 등 흔적을 더듬는다. 본격적인 연구라 아니라 그저 호기심에, 단순한 목적으로 찾는 경우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선택할 것이다. 처음엔 쉽게 설명해주는 역사교양서를 찾아볼 것이고 흐름을 알고 나면 더 생생한 것을 찾을 것이다. 을사늑약부터 해방까지 이어진 시대의 혼란을 알기 위해 조선 후기부터 근대를 다룬 역사책을 읽을 수 있지만 염상섭의 <삼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지나온 시대는 역사로 갈무리되어 평가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아직 역사가 아닌 현실이다. 매일은 라디오, 티비, 신문에서 말하는 뉴스와 인터넷, 유튜브, 팟캐스트 등에서 새롭게 생성되는 뉴스들로 가득 차있다. ‘오늘날’을 알고 싶다면 어떤 책을 봐야할까? 추상적 흐름을 알고 싶다면 미래학 쪽의 책이나 트렌드 관련 책을 선택하면 된다. 여기에 더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 ‘한국’을 알고자 한다면?

1차 자료는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다. 실시간으로 현장에서 접하고 있는 모든 언어, 현상, 물체가 곧 오늘날 한국이다. 그러나 조금은 추상화해서 사고할 만한 것이 필요하다면 역시 인문학과 문학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둘 중에서 또 선택하자면 명료한 언어로 내가 원하는 분야의 정리되거나 논쟁 중인 정보를 알고 싶다면 전자이고, 전반적인 분위기와 명료하게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알고 싶다면 후자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누구를 읽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도 문학을 좋아하지만 계보를 알거나 작가 이름을 꿰고 있지는 못하다. 이 때 내가 보는 것이 문학동네의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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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상은 문학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한 문학상으로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 작품이 심사 대상이다. 총 7편을 선정하고 이중 1편을 대상작으로 삼는다. 한 해마다 선정되는 새로운(혹은 작년에도 있었던) 작가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만 만나봐도 지금을 더듬어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나는 2018년에 이 작품집으로 박상영을 처음 만났다.



작가 박상영


1 더 높이 기대하지 않게 된 사람들의
2 서로 알고 자신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듯한) 기만행위를
3 특유의 분위기로 : 어딘지 꼬릿하게 냄새나는


나는 작가를 글의 분위기로 떠올린다. 열 손가락 넘을락 말락한 작가들 중 박상영의 분위기는 특이하다. 호불호가 확실히 갈릴 것 같다. 그의 글에는 소설의 환상이 없다. 등장인물은 환상을 그려도, 그런 그들을 보는 독자는 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글은 시원하게 텁텁하다. 소재나 인물 자체에 대한 공감이라기 보단 – 일반적이진 않으므로 – 그들의 태도 때문이다. 더 나은 미래나 더 좋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냄새나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기분 나빠지는 것도 아닌, 어딘가 우스운 삶.

인터넷에서나 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번 생은 망했어”의 실천 버전이 소설에 담겨있다. 소확행을 꿈꾸는 이유는 대확행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큰 가치에 헌신한다거나, 공동체에 자부심을 가진다거나, 열심히 노력하면 물질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는 현실에 하나씩 N포한다. 소확행은 대확행보다 쉽고, 달성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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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처럼 살자, 다만 그러기위한 충분조건은.. (난이도 급상승)


'아무것도 아닌 나'라는 불유쾌한 현실에서 소확행을 실천하다. 나나랜드에서 나를 위해 살아간다. 그런데, 그 욕구조차 정말 내 욕망일까?


..근대문학이 담보하는 ‘다른 삶’의 가능성은 그들에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보인다.

이대로라면 그들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타인 지향의 인정 욕구 속에서 허우적대며 일회성의 현실도피로 일생을 살아갈 터다. 이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황폐화된 내면과 윤리적인 파탄을 반영하는 인간형이다.

...

박상영은 도덕과 윤리를 결여한 채 타인 지향의 평평한 자의식에 갇힌 군상들의 시선을 빌려 오늘날 절대다수의 한국인에 의해 물질적으로 구성된 ‘한국적인 것’의 한 측면을 어떤 사회과학적 통찰보다 정확하게 형상화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의 구심점을 해체하는 한국사회 전반의 외곽지향 현상이다.

- 윤재민 문학평론가




단편집 중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부산국제영화제>

단편집 제목과 같은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꼭 읽어보길 바라며, 나는 다른 것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 소라는 인스타그램이라는 나나랜드에서 살아간다. 그녀를 둘러싼 작품 둘.


01 소라의 세계

처음엔 작가가 같은 이름을 일부러 쓴 다른 작품인줄 알았으나, 두 작품은 연결되어 있었다. 먼저 쓰인 것은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남자의 시점에서 여자친구 소라를 보고, 최근 쓰인 <부산국제영화제>는 소라의 시점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남자는 소라를 자기집착과 허영의 화신으로 본다. 그에게 소라는 인스타그램에 빠져 살고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고 무책임하게 개를 사고(심지어 자기에게 떠맡기고) 자아과잉의 영화를 만들고 툭 하면 우는 여자이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만 보면 정말 그렇다.

작품 바로 다음에 배치되어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로 오면 좀 더 진짜에 가까운-진짜가 있는지는 의심이 가지만- 소라가 나온다. 남자가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듯 소라도 커야하는 것들이 적당히 큰 연하 군인 태혁을 만난다. 태혁은 서로 특별해지는 관계가 되고 싶어 하지만 소라는 그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낀다. 인스타그램의 가짜 모습처럼, 서로 쓸데없는 관계, 언제든 쿨하게 헤어질 수 있는 관계를 원한다.

소라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도 그것의 무의미를 알고 있다. 무의미한 것들로 이루어진 가상의 자신이 있는 장소를 '나'라고 여기고 있다면,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소라가 있는 여기는 무엇일까?


02 인스타그램과 소라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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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소라가 되고 싶은 #는 무엇이었을까? <부산국제영화제>의 끝은 ‘나 #박소라’에 대한 자기고백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정의하지 못했다. 빈 #에 쓰였어야 하는 것은 자기욕망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조차 말할 수 없는 삶의 무능함 속에, 사회 속의 #정체성을 적다가 #현실을 적다가 #과거를 적다가 #() 멈추어버렸다.

#개
치아가 어긋나고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품종견이라고 하지만 의심스러운 혈통.
운명처럼 잡혀와서 사랑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했지만
끝내 도망간 개, #개, #패리스힐튼, 자유

#인스타그램과_소라와_개

는 지금을 박차고 어쩌면 더 위험할 수도 있는 밖을 향해 나갔다.
소라는 안과 밖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스타그램은 소라의 안이지만 실제는 밖, 현실은 소라의 밖이지만 실제로는 안.
인스타그램, 위험 없이 아늑한 소확행의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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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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