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이 되고 싶었던 사람들

결국 남은건 피해자 뿐
글 입력 2019.01.1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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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


 

'영주'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종로에 위치한 독립영화 전용 상영관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다.


아마 문화 초대가 아니었다면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는지 평생 모르고 지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만큼 서울 극장 안에 작게 마련되어있는 인디스페이스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었으며 매표소도 흡사 목욕탕 카운터를 연상시킬 만큼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CGV를 지나쳐와서 그런지 같은 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묘한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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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 내부는 내가 알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상영관과 매우 비슷했다. 시작하기 5분 전에 상영관에 들어갔지만 7~8명의 사람만 넓은 객석에 띄엄 띄엄 앉아있었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더 들어온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영주의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이야기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02. 영화 줄거리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졸지에 가장이 된 영주는 자신의 학업은 포기하더라도 동생 ‘영인’이 만큼은 책임지려 한다. 하지만 영인은 어긋나기만 하고,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동생 ‘영인’의 사고로 하나 밖에 없는 집까지 팔아야 할 상황에 내 몰린 ‘영주’는 부모를 죽게 만든 그들을 찾아간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 항상 줄거리를 미리 보면서 영화의 내용을 예상해보곤 한다. 열의 아홉은 내가 생각한 것과 얼추 비슷하게 흘러간다. 영화를 보기 전 내가 생각했던 영주는 나이는 어리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리고 부모를 죽게 만든 사람들은 뻔뻔하게 잘 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영화는 부모를 죽게 만든 사람들을 복수하는 영주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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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영주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동생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부 업체에 돈을 빌리려다 사기를 당할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다. 또한 영주의 부모를 죽게 만든 '상문'은 잘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사고 이후 죄책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상문과 그의 아내인 향숙을 찾아간 영주는 그들에게서 가족과도 같은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영주야 넌 좋은 애야.

아줌만 알수 있어


-향숙의 대사 中-



영주에게 상문과 향숙은 자신의 부모를 죽게 만든 사람임과 동시에 영주가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돈을 훔쳐 달아나려고 한 영주에게 동생 합의금 300만 원을 선뜻 쥐여준다. 만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영주에게 말이다. 그리고 상문과 향숙은 부모의 마음으로 영주에게 사랑을 준다. 집에 데려와 고기도 구워주고 새 옷을 사주기도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영주의 편이 되어주며 영주에게 우리 앞에 나타나줘서 고맙다고 말해준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스무 살 영주에게 상문과 향숙이 주는 애정과 관심은 그녀가 가장 필요로 한 것이다.




03. 영주, 그리고 가족


 

영화는 영주를 둘러싼 두 종류의 '가족'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교통사고로 죽은 부모와  동생 영인, 그리고 집 근처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고모와 고모부가 영주의 진짜 가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주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되려 영주를 불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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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의 부모가 영주에게 남긴 거라고는 오래된 아파트뿐이다. 그리고 고모와 고모부는 부모의 유일한 유산인 그 아파트를 빨리 팔아야 한다고 재촉하고 아파트를 팔지 않기로 한 영주를 차갑게 외면한다. 하나뿐인 동생 영인 역시 어긋나기만 한다. 물론 영주의 부모는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것이고 고모네가 정말 영주를 위해서 집을 팔라고 권유했는지 그리고 엇나간 영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한 이해를 바라기에 이제 막 성인이 된 영주는 너무 어리다. 그리고 영화는 오로지 영주의 시선에서 아직 애정과 관심이 필요한 영주의 모습과 감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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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상문과 향숙은 영주의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기꺼이 영주의 가족이 되어준다. 한편으론 상문과 향숙이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영주를 자식처럼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영주가 식물인간인 아들을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살갑지는 않지만 옆에서 얘기를 할 수 있고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영주는 그들에게도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렇기에 상문과 향숙이 영주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 영주 역시 상문과 향숙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다.



영주 그리고 상문과 향숙에게

'진정한 가족'은 누구일까?



극장을 떠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가족의 기능에 있어서 어느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서적 안정'을 가족의 본질로 둔다면 영주 그리고 상문과 향숙은 서로 가족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본다면 그들의 진짜 가족은 진정한 의미에서 가족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때론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 더 가족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04. 영화의 결말 (스포일러 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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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의 끝부분에서 그들은 진정한 가족이 되지 못한다. 영주는 더 이상 상문과 향숙을 속이고 싶지 않기에 그들에게 자신이 사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의 딸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 고백 저편에는 그 사실을 알고도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영주의 물음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못하다. 차라리 만나지 말아야 했다고 앞으로 미안해서 어떻게 영주를 보냐고 말하며 향숙은 상문과 함께 눈물을 보인다.


그 모습을 우연히 본 영주는 향숙이 사준 옷을 두고 그 집을 떠난다. 그렇게 영주 그리고 상문과 향숙은 두 번째 가족마저 잃게 되고 영화는 끝이 난다. 무척 찝찝한 결말이었다. 결국에는 환하게 웃는 영주를 보고 싶었지만 영주는 끝까지 울고 있었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 영주가 겪은 일들은 너무 암담하다. 영주가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상문과 향숙은 또 어땠을까, 그들은 좋은 사람이기에 전보다 더 큰 죄책감 속에 살아갈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나게 된 그들이었지만 결국에는 피해자 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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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감독 - 차성덕
출연 - 김향기, 김호정, 유재명, 탕준상
개봉일 - 2018년 11월 22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관 - 서울시 종로구 '인디스페이스'
상영시간 - 100분
 

[오현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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