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소통하지 마세요. 불편하게 하세요.

글 입력 2019.01.12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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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불편한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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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시 좀 넘어서. 지하철에 오른다. 애매하고 한가로운 시간. 자리는 많다. 감은 눈꺼풀 위로 비치는 오후의 낡고 긴 빛이 익숙하다. 따사롭기도 하고 아주, 아주 조금 애처롭기도 하다. 꼭 나 같다. 마음껏 애처로움에 몸을 맡겼다. 눈꼴시운 자기연민을 한껏 받아주고 있었다.


옆에 모녀가 앉는다. 유모차에 앉은 아이는 엄마가 건네준 핸드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무슨 영상이 재생되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소음이 귀를 찌른다, 누군가 떠들고, 깔깔깔 웃고, 불규칙한 효과음이 한 데 섞인. ‘이런’ 시간이라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 건가. 왜. 뽀얀 피부에 양갈래 머리를 하고서 작은 액정을 보고 천진하게 웃는 너를, 실눈을 뜨고 잠시 보았다. 미워하고 싶어진다.

 

그래… 아주 어린 네게 이어폰을 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어. 주위에 피해를 준다는 걸 알면서도, 영상을 끄면 칭얼댈 너를 감당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그런데 내가 왜 그런 것 까지 생각해야 하지, 너는 누군데.

 

갑자기 전화가 오고 엄마는 전화를 받고 핸드폰을 ‘뺏긴’ 너는 크게 소리를 지른다. 감았던 눈을 뜬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떼를 쓰는 너를 가만히 쳐다보는 나의 이성은, 그대로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 아 나 널 이해하지 않아, 너의 엄마도 이해하지 않아. 정말 최악이야, 다 최악이야…




#055. 불편한 예술


 

어떤 손님이 주말에는 노래를 부른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카페의 누군가 말했다.

 

“여기 다 예술하는 사람들이에요.”

 

‘예술?’ 이상했다. 공예, 영화, 미술 그리고 노래… 다 예술 '분야'라고 불리는 것이긴 하지. 그런데 아직도 예술은 내게 분야로 총칭하기 어려운 단어다. 그렇다면 분류하려는 목적으로 말하지 않는 예술은 뭐지. 무엇이기에 예술 '한다는' 사람들이 예술 '안 하고' 혹은 못 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지.

 

“예술 하세요.”

 

스무 살, 친구와 홍대 근처에서 도자공예 체험을 할 때 거기 있던 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수업 중 ‘나중에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문득 예술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중’이라는 단어가 꽤 멀게 느껴졌나. 어찌됐든 지금이 아닌 나중에는, 예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나. 어렸어도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어렴풋이 예감했나보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자기만의 확신에 찬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조금은 단호히, 그렇게 말했다. ‘예술 하세요.’ 지금도 그 말이 나에게 마법처럼 작용했다고 믿고 있다.

 


창작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줄 것이고, 나로부터 나를 해방시킬 것이고, 내가 머무는 세계의 한계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 (p.33)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p.34)


<쇼코의 미소>, 최은영

 


스물 한 살, 처음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이제 10년이야.” 그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땐 몰랐다. 엄마는 ‘그림’이 얼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 개념인지 알았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 아직 10년은 지나지 않았지만, 곧 올 것 같다. 엄마, 나 그 말을 뱉은지 10년 되는 날엔 예술 하고 있을까. 그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예술일 수는 있을까.

 

 


#056. 불편한 고백


 

새해가 되었다. 최저시급은 올랐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는 이상한 기사를 보았다. 최저시급과 생계를 생각했다. 생계와 생존을 위한 예술은, 예술이 맞는지 생각했다. 누군가 ‘시인이라서 30만원을 버는 게 아니라, 시인이기 때문에 30만원에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 문장이 한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그런 문장이 누군가를 뿌듯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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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준 고마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까, 참았던 말을 기어코 하고 말았다. 하지만 워낙 오래전부터 했던 생각이라 후회는 없었다. 다행히 비슷한 처지라, 이해받았다. 나는 30만원에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시인은 못 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솔직한 마음으로, 자신에게라도 당당해지는 편을 택하는 수밖에.


 


#057. 불편한 상대


 

아주 오랜만에, 아주 가까이 지냈다가 헤어진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헤어졌었다. 아니 내가 도망갔었다. 도망간 날 당신들은 이해했다. 기다려주었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당신들과 함께한 시간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시간은 흘렀어도 당신들의 얼굴을 다시 마주한다면 지나간 아픈 시간은 저절로 떠오를 테니까, 결과가 자명해서 나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들이 나에게 준 사랑과 은혜는 정말 고마웠어요. 고마웠어요… 그 사실만은 변치 않을 거예요.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우리가 앞으로 뭘 더 같이 해야 할까요. 그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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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만 남아도.




#058.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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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학교가 좋았어, 00학교가 좋았어?”

“00에 다닐 땐… 슬펐고, 00에 다닐 때도 슬펐어요.”

 

이미 불편해진 우리, 그러나 대화라도 최대한 불편하지 않기 위해 서로 열심히 애쓰는 와중에 나와버린 말이었다. 가벼운 질문에 이상한 대답. 그때 그렇게 느꼈는지 나조차 몰랐지만 말하고 보니 진심이어서 그 사실에 놀랐다. 당신들은 잠시 침묵했다. 나를 아주 사랑해주었던, 지금도 그럴지 모를 한 사람이 침묵을 깼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실 거야.”

 

말도 안 돼.

 

그 말을 듣자마자 나직이 마음 저 바닥에서부터 울리는 의심. 동시에 그 의심을 한껏 누르는 어떤 확신. 의심은 논리가 바탕이었고, 확신은 경험이 바탕이었다. 의심은 합리적인 이성이었고, 확신은 이성이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하고 온화한 무엇이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비논리적인 일이 논리를 이긴 경험이 잦았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마치 지금을 위해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그러나 이 두 가지 마음은 서로 다투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공존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물처럼 한 데 섞였다.

 

말도 안 돼.

 

한 번 더 생각해도 문장은 말이 안 돼. 그렇다는 걸 머리로 너무 잘 알겠는데 또 그렇게 될 것 같아. 벅차오르는 기대감이 아니라, 또 그런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는 처연한 예감에 마음이 미어졌다. 그렇게, 하실 건가요. 갑자기 마음에 큰 파도가 일렁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입에 힘을 주었다. 더 이상 당신들 앞에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서, 당신들의 위로는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아서. 아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냐고, 그러시면 좋겠다고.

  


 

#059. 불편한 (두)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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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하나. 지인의 도움으로 장만한 스타벅스 다이어리에는 '살고 싶다'는 야심찬 문장을 적었다. (In case of loss와 상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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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최애 사진이 가득한 시즌 그리팅 다이어리에는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라는 문장으로 한숨을 쉬었다. (To do list도 아닌)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지기만 할 때가 있다. 평소와 똑같은 어떤 이의 말이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서 좀처럼 빠져 나오지 않고 자꾸 생각날 때가. 그럴 땐 내 마음 어딘가 고장 나 버린 거다. 그러니 남 탓을 하는 건 어리석을 뿐이고, 안에서부터 천천히 질문하고 기다려야 한다. 내가, 나를 기다려야 한다. 그랬냐고. 너에게 그런 일이 있었냐고. 얇은 유리 잔을 다룰 때보다 더 섬세한 손길과 눈짓, 말투로 일단은 너부터 살고 보자고.

 

 


#060. 소통하지 마세요. 불편하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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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엉망이었을 때, 편지를 받았다.
답장을 여기에 보낸다.


저는, 당신이 어떤 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래서 끝내 소통에 실패한대도 자신만의 세계를 꼭 지켜냈으면 합니다. 부서지지 말아요.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어쩌면 불편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저는 그걸 두려워해서 소통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편하게 만드는 게 두려워서. 두려움, 그게 제일 나빠요. 저는 당신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변하지 말아요. 소통하지 마세요. 불편하게 하세요.
 

“그런 영화를 찍을 수 없으면,

제가 영화를 만들 이유는 없을 테니까요.”

 

편지를 준 이가, 언젠가 했던 말.

바꿔 본다.

 


이런 글을 쓸 수 없으면, 내가 글을 쓸 이유는 없을 테니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으면, 내가 그림을 그릴 이유는 없을 테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없으면, 내가 말을 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

이렇게 살 수 없으면, 내가 살 이유는 없을 테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초에 가난한 자에게 부유한 선택지는 주어지지 않았다.


요새 '애초에'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마음에 든다.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렇게 무언갈 정의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원래부터 너에게 선택지는 없었다고. 네가 삶을 그렇게 오해했다면 학창 시절이 요구해 온 오지선다 양식의 폐해가 꽤 깊었나 보다, 알고 던져버리라고. 많은 선택지 중에서 네가 하나를 잘못 고른 게 아니라고. 많은 것 중 하나가 아니라, 그것이 아니면 안 될 이유가 애초부터 있었다고. 너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되었기에, '왜 그것이니, 왜 그렇게 살아.' 라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다고. 그 대답을 요구한 사람을 증오했던 시간은 어쩌면 당연했다고, 현명한 감정이었다고. 나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이 들 때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설령 그 행동이 남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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