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어쩌면 새드엔딩 :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글 입력 2019.01.1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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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나와 당신



“멜로는 엇갈림의 서사다.” (김영하의 영화 낚시, 중앙일보, 2002) 소설가 김영하는 멜로라는 장르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시간이나 공간, 방향 중 한 가지라도 엇갈려야 성립하는 장르가 멜로라고 설명한다. 나와 너의 사랑한 시간이 맞지 않거나, 나와 네가 한 공간 좌표 위에 있지 못하거나, 혹은 나와 네가 바라보는 방향이 다를 때, 그럴 때 멜로의 서사는 시작된다. 기차 떠난 뒤에야 땅을 치는 로맨스 소설계의 ‘후회물'부터 같은 공간을 공유할 수 없었던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의 방향이 달랐던 팬텀과 크리스틴 등 수많은 엇갈림이 무수한 갈래의 멜로를 만들어왔다. 그걸 보면서 재차 느낀다. 김영하의 말마따나 “엇갈리지 않고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텔레토비지 멜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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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애시대>(2006) 스틸 컷. ㅣ SBS

  


그래서 멜로의 새드엔딩은 ‘돌이킬 수 없는 엇갈림’에서 비롯된다. 태생부터 엇갈릴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인 설정값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같은 시간에, 공간에 아예 존재하지 못하는 곳으로 떠났을 수도 있다. 혹은 엇갈린 각도를 구부리지 못해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랑에 빠져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 엇갈림을 엇갈린 채로 내버려 두느냐, 판판히 펴서 조우하게 하느냐가 멜로의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을 가른다. 해피엔딩은 성춘향과 이몽룡처럼, 또 옛 로맨틱코미디의 주인공들처럼, ‘그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여야만 가능한 것. 엇갈림의 굴레를 풀지 않는다면 다시 마주친다 해도 사랑을 이룰 가능성은 희박하다. 처음 만났을 땐 반갑다고 뽀뽀뽀 할 순 있지만, 헤어질 때 또 만나자고 뽀뽀뽀 할 순 없는 노릇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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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라랜드>(2016) 스틸 컷.



근래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멜로인 영화 <라라랜드>는 그 엇갈림의 미학을 마지막 10분, ‘상상의 플래시백’ 시퀀스로 풀어낸다. 영화는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첫 만남부터 조금씩 엇갈렸던 순간들을 ‘~했다면’이라는 가정법을 통해, 일직선으로 펴낸다. 상상 속 그들은 사랑을 이루고 행복하게 웃는다. 하지만 꿈은 깨기 마련이고 막은 내리기 마련이니. 상상의 플래시백이 끝나고 두 사람은 각자가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 '꿈'을 위해 엇갈림을 택했던 두 사람은 '꿈'을 이룬 서로의 모습을 마주하며 웃는다. 그 미소는 자신에게, 또 자신이 사랑했던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과거의 연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랑했던 시간도, 공간도, 방향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의 삶도 나쁘지 않다는 것. 슬픔과 환희가 있‘었’던 마법 같은 사랑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이 되었다는 것. 당신은 그 마법 같은 순간에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엇갈림’의 미학을 풀어낸 방식이다.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는 이 멜로의 서사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이 작품은 2006년에 캐나다에서 초연을 올렸고, 2009년엔 브로드웨이로 진출했는데 관객 수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적은 내지 못했다. 공동 프로듀싱을 맡았던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2010년에 이 작품을 국내에 들여오기 시작했고,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는 이번 2018~2019 공연까지 국내에서 총 다섯 시즌을 개막했다.


여타 뮤지컬과는 달리 화려한 움직임과 킬링 넘버, 그리고 잦은 무대 전환은 없다. 한 사람의 기억을 구현해놓은 책방 무대는 고즈넉하고, 넘버는 담백하며, 무대 전환은커녕 암전도 드물다. 하지만 <스토리오브 마이라이프>는 국내 뮤지컬 마니아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으로 이젠 기획사의 레퍼토리 중 하나로서 자리 잡았다. 그건 이 뮤지컬이 돌이킬 수 없는 '엇갈림의 미학'과 기억의 문제를 엮어냈기 때문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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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콘셉트 사진. ㅣ 오디컴퍼니

 


주인공 톰과 앨빈 사이를 로맨스적 관계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한국 프로덕션의 해석을 보자면 더욱더 그렇다) 톰과 앨빈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막역한 친구 사이이고, 함께한 시간만큼 서로의 존재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관계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함께'엔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한다. 함께 공유한 시간, 하지만 달라진 생애. 그 사이의 관계와 사건, 감정이 이 일관된 톤의 뮤지컬을 끌고 나가는 동력이다.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는 기본적으로 두 인물의 ‘돌이킬 수 없는 엇갈림’을 말한다는 점에서 멜로의 작법과 유사하다. 하긴 멜로를 이성애적 연애사로 정의한다면 영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멜로의 기본 가치인 ‘사랑’과 ‘사람’을 아주 근본적으로 돌려놨을 땐 그렇게 이상한 수사도 아닐 거다. 수년 동안 함께 해온 앨빈과 토마스는 점차 시간과 공간, 방향의 엇갈림으로 멀어지게 되고 앨빈은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를 좇는 건 당연히 남겨진 토마스의 몫이 된다. 기억의 책방을 뒤지며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는 것. 이게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의 기본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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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공연 사진. ㅣ 오디컴퍼니



토마스는 죽은 앨빈의 송덕문을 써야 한다. 그게 이 극이 토마스에게 부여한 과제다. 공덕을 기리며 짓는 송덕문(Eulogy). 기본적으로 죽은 앨빈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토마스는 자신의 잘못과 죄책감, 후회와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의 '시간'과 '공간', '방향'이 어떻게 엇갈렸는지 추적해야 한다, 목도해야 한다, 가슴 깊이 느껴야만 한다. 시간과 공간과 방향이 틀어진 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다. 일직선으로 펼 수 없다. 어쩌면 이 똬리는 평생 토마스의 가슴 속에 후회로 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다면, 그 감정은 충분히 헤아릴 만한 것이다.

  

“죽으면 좋은 얘기만 해주네.” 새드엔딩이 불가피한 이 상황에서 토마스는 앨빈의 송덕문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앨빈이 왜 죽었는지, 자신은 그 죽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가 보여주는 기억의 문제는 이 이야기를 마냥 새드엔딩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과거를, 기억을 돌아보는 그의 여정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괴롭고, 마치 내 얘기 같기에 힘겹겠지만, 그 힘듦만큼의 감동을 안길 거라 자신한다. 어쩌면 지금 당장은 와닿지 않을지 몰라도, 언젠가 누군가를 잃었을 때, 회복 불가능한 관계를 얻었을 때, 기억으로 걸어간 사람의 자취를 그리워할 때 한 번쯤 앨빈과 토마스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까. 놓쳐본 사람은, 잊어본 사람은, 후회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목놓아 울어버리고 싶은 그 엇갈림의 통렬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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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
- The Story of My Life -

일자 : 2018.11.27 ~ 2019.02.17

시간
화, 목, 금 8시 / 수 4시, 8시 / 토 3시, 7시
일, 공휴일 2시, 6시

(월 공연 없음)

장소 : 백암아트홀

티켓가격
R석 66,000원
S석 44,000원

제작
오디컴퍼니 주식회사
롯데엔터테인먼트

주관
오픈리뷰(주)

관람연령
8세 이상 관람가

공연시간
1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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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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