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만의 방식으로 본 <아쿠아맨> [영화]

글 입력 2019.01.0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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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까지 말하는 스포주의*


처음 이름을 보았을 때 멈칫했던 ‘아쿠아맨’은 생각보다 오래된 히어로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이 캐릭터는 현대 CG기술의 힘을 빌려, 단어 그대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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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수트, 한 땀 한 땀 빛나는 비..늘?


처음엔 이름도 촌스럽고 수트도 부담스러워서 보지 않으려 한 영화였지만, DC물이라는 것을 알고 호기심이 들었다. ‘DC는 묵직한 영웅, 마블은 가벼운 히어로’ 이런 구도였는데 그 경계를 허물고 한 바다인간이 튀어나왔다. 포스터만 보면 마블 히어로에 가까운 아쿠아맨은 제작비로 $1.75억을 쓰고 (1월 3일 기준) $8.66억을 벌었다. 이정도면 세계적 흥행이라고 말해도 괜찮은 수치인 것 같고 주위 사람들의 평가도 긍정적인 편이다.

여기서 나는 DC 코믹스를 읽어본 적 없는 관람객으로서 철저하게 영화만으로 <아쿠아맨>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슈퍼 히어로 영화팬도 아니고 DC 팬도 아닌 일반인이 읽는 <아쿠아맨> 



1. 너무 많은 정체성과 물음표 가득한 주인공

주인공 아서는 처해진 입장이 여러 가지이다. 소시민, 부자, 군인이 갑자기 운명을 마주치는 것과 달리 아서는 고대 전설처럼 예비된 운명의 주인공이다. 왕과 등대지기의 아들(계급), 후계자이자 반역자(상황), 왕이자 영웅(캐릭터), 육지와 바다의 교집합(역할) 등 각각의 배경이 교차하며 아서라는 캐릭터를 만든다. 그는 아틀란티스를 구하고 육지도 구해야 하는 동시에 어머니를 살해한 아틀란티스를 증오하고 육지에서는 조롱받는 위치에 있다.

글로 쓰면서도 숨이 찰 정도로 아서라는 한 캐릭터가 마주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준비된 시련들을 이겨내고 영웅왕이 되는 서사가 기본이지만 무엇을 중점으로 잡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혼혈? 반역? 왕? 영웅? 육지? 바다?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현실적 가난함과 힘 있는 자의 의무라는 두 가지가 뚜렷하기 때문에 시리즈가 계속 나와도 캐릭터가 단단하다. 반면 <아쿠아맨>은 캐릭터가 없다. 영웅 전설을 그대로 푼 것도 아니고,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도 없다. 캐릭터의 고민과 선택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면, ‘아쿠아맨’은 수렴청정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타고난 운명과 힘으로,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메라와 벌코의 인도로, 영웅/왕이 된다.”

만약 저 수많은 대립 점들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풀어내었다면 <아쿠아맨>은 DC 유니버스의 일부가 아니라 이 영화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었을 것 같다. 하나하나가 흥미로운 갈등이고 오늘날 잘 쓰이지 않는 영웅왕이라는 컨셉과 ‘바다(육지)’와의 가교역할은 정말 특이하다. 특히 바다와 육지라는 서로 다른 두 문명을 한 인물이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쿠아맨>에서 아서는 땅의 아들이자 바다의 왕이라는 말을 썼음에도, 바다 모험에 벅차 육지에 대한 언급이나 내적, 외적 갈등은 사실상 없었다.


2. 이분법적 선과 악

대립구도는 크게 선(아서, 메라), 악(오션 마스터, 블랙 만타)으로 나타난다. 아서와 오션 마스터는 왕좌(정통성), 육지, 어머니를 두고 대립하고 메라와 오션 마스터는 정통 아틀란티스 인으로 같지만 전쟁-정의에 대해 다툰다. 블랙 만타는 대의나 정의에 신경 쓰지 않고 아서에 대한 개인적인 동기로 적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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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상 아서, 우상 메라 vs 좌하 블랙만타, 우하 오션마스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쿠아맨>은 너무 욕심을 부렸다. 2시간 조금 넘는 러닝 타임 동안 최대한 아틀란티스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선과 악이 애매해졌다.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러나는 것이 있을 텐데, 영화는 시종일관 시각적으로 보여주기에만 급급하다.


#아서 vs 오션 마스터

왕좌에 얽힌 이야기를 떡밥처럼 여기저기 뿌려두었지만 불의 고리, 포세이돈의 삼지창, 두 번째 불의 고리로 쉽게 해결해버린다. (결국 폭력과 권위)
육지를 둘러싼 갈등 양상은 뚜렷한데 뒤의 숨은 동기가 미약하다. 왜 육지를 공격하는지, 왜 육지를 지켜야 하는지 굉장히 단순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몰입이 안 돼)
어머니에 대한 형제의 복잡한 마음이 후반부에 슈퍼맨vs배트맨처럼 해결된다. (DC 왜 그러니..)


사실상 메인 플롯은 아서의 성장과 갈등보다 신밧드의 7대양 모험기처럼 메라와의 해양 왕국과 종족 탐방기에 가까운 모습이다. 해양의 신비함을 최대한 보여주고 싶어한 것이라면 그 의도는 적중했다. 바다라는 아쿠아리움을 둘러본 듯이 재밌는 2d 체험이었다. 대신 히어로물에서 다뤄야 하는 선과 악에 대한 관점은 밋밋했다. 오션 마스터의 동기와 아서의 동기는 첨예하게 부딪히지도 못했고 피셔맨 왕국을 점령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날치기였다.

DC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가볍게 접근하고 싶었다고 해도, 심각하게 가벼운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고민도 없고 고통도 없고 단순한 이분법적 접근으로 캐릭터에 대한 사실감이 뚝뚝 떨어져갔다.


#아서 vs 블랙 만타

복수라는 동기가 공감되지 않는 빌런, 디자인도 애매하다


어린이용 히어로물이 아닌 이상 빌런은 우리가 믿는 선과 악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블랙 만타의 악은 ‘아버지의 복수’라는 동기 자체는 괜찮지만 그 죽음이 아쿠아맨으로부터 100% 비롯된 것이 아니며 상당 부분 그와 그의 아버지의 잘못이 크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파워레인저 악당처럼 뜬금없이 등장하여 주인공을 괴롭히는 느낌이다.

더불어 요즘 빌런 트렌드인지 모르겠지만 소말리아 해적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던 빌런이 무려 현대문명도 아니고 타 문명의 과학기술을 분석하고 재조립하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 능력이면 해적질보다 과학자로 전향해서 괜찮은 기술 특허 하나 만든 다음 군수기업에 파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 두 명의 빌런이 러닝 타임 내내 이야기를 휘저으면서 꽤나 정신없었다.


3. 바다문명에 대한 조금 넘쳤던 기대

문명에 대한 묘사. 영화는 잘못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부분이다. 코믹스에서 비롯된 스토리이고 가벼운 슈퍼 히어로물을 지향하는 이상 크게 부각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쉬웠다. 영화의 무대는 거의 육지, 가끔 하늘, 더 가끔 우주로 나간다. 바다는 같은 지구 내에 있음에도 메인 배경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만큼 이곳은 우리 육지 인간들에게 낯설고 무서운 곳이다.

그런데 이런 바다에, 육지만큼 혹은 그 이상의 문명이 있다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바다라는 환경 속에서 그들은 어떤 발전 단계를 밟아왔고 그 변화는 육지라는 곳과 어떤 식으로 다를까?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정치, 사회, 문화의 발전 단계와 많이 다를까? 혹은 우리보다 더한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을까? 서로 다른 두 문명이 만났을 때 어떤 식으로 대화해야 하는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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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랬던 문명의 차이


육지와는 다른 바다스러움, 바다만의 특징을 바랬다. 어쩌면 나는 <아바타> 같은 영화를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쿠아맨>은 엄연히 히어로 문법을 따르고 있고, 타자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다뤄야 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억울했다. 왜 바다가 육지와 같은가? 아틀란티스가 처음엔 육지 문명으로 시작했었어도 오랜 시간동안 바다에서 적응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은 왜 보여주지 못했을까?


4. 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영상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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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생물 좋아..! / 아래는 주인공의 변신씬, 오글거리지만 효과적!


사실 위의 여러 의문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쿠아맨>은 영상으로 만족했다. 바다라는 환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모든 움직임(액션)이 새롭게 즐거웠다. 단순히 걷는 것과 헤엄치는 것에서부터 싸울 때의 움직임까지 달랐다. 개개인의 물결묘사는 전쟁이라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묘사와 또 달랐다. 그동안 호흡과 매질의 흐름은 육지에서 움직일 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다. 배경을 바다로 옮기자 묻혔던 것들이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러닝 타임 동안 거의 바다 속 세상 위주로 보며 촉촉했지만 이외에도 육지에서 보는 바다나 사막 등의 다른 환경들도 나와 줘서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곳을 탐험한 느낌이었다. 바다도 깊이에 따라 색감이 자유자재였고 어두운 곳부터 밝은 곳까지 채도가 다양했다.

삼지창이나 총을 활용한 액션은 사실 지루했지만 대규모의 전쟁 장면이나 가축화된 바다생물의 액션은 말 그대로 눈이 핑핑 돌아갔다. 특히 카라덴..! 짧은 시간 동안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후반부에 졸린 정신을 깨워줬던 이 캐릭터 하나로 <아쿠아맨>은 표값을 했다. 얼핏 보면 <해리포터>의 바실리스크 같기도 했다. 슬리데린 이후 혼자였던 바실리스크는 볼드모트를 만났고 카라덴은 초대왕 이후 처음으로 아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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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씬스틸러였던 카라덴


말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의 등장은 의무로부터 카라덴을 해방시켰다. 아서의 진정한 힘은 낯설고 그로인해 두려운 것들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카라덴, 육지인, 바다인 등 타자를 배척하기 전에 먼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 그것이 아쿠아맨.



짤막한 덩어리들

1) 10분의 법칙 : 영화의 소개와 관객의 몰입도는 초반 10분에 달려있다. <아쿠아맨>도 슬쩍 시간을 확인해보니 딱 10분 안에 부모님 연애부터 주인공 유년시절이 끝났다.
2) 메라는 고전적인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떠오르는 빨간머리, 초록 옷(지느러미)였다.
3) 바다 스타일 : 첫 번째 불의 고리에서 문어가 북을 치며 시작한 부분과 메라의 해파리 드레스
4) 쿠키 영상이 유니버스 암시가 아니라 블랙 만타 재등장 예고여서 아쉬웠다.
5) 감독 제임스 완 : 오싹하게 익숙한 감독의 이름이 걸려 검색해보니 <쏘우>, <인시디어스>, <컨저링>, <애나벨>, <분노의 질주>, <라이트 아웃>, <더 넌> 등을 찍으신 그 분이었다. 어쩐지 트렌치 종족이 나올 때부터 영화 색깔이 달라지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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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 트렌치 추격씬, <아쿠아맨>의 당당한 씬스틸러 중 하나(한 종족)


개인적으로 이때 바다의 무서움이 강렬하게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왜 바다 사람들이 트렌치를 무서워하는지도 여실히 느꼈다. 영화가 슈퍼 히어로 장르라 다행이지, 일반 영화였으면 호러(..)

제임스완과 아쿠아맨에 대한 인터뷰는 씨네플레이를 참고! 여기로


총평 : 세계관을 보여주느라 급급하여 서사와 캐릭터가 중구난방, 그러나 영상은 예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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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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