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도서]

글 입력 2018.12.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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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 시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태도는?

2. 위 시에서 사용된 표현법은?

3. 위 시에서 다른 성격을 갖는 시어는?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 시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국어 영역에서 골칫거리는 ‘시’였다. 맞고 틀리는 것을 떠나서, 시 문제를 푸는 것은 나에게 버거웠다. 쓸쓸하고 슬픈 감정으로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답을 맞히기 위해 그 답을 골라야만 했고, 이해할 수 없는 ‘은유법’과 ‘상징법’의 차이를 감으로 느끼며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는 답을 맞히기 위해 화자와 일심동체가 되어야 하는 아주 피곤하고 따분한 작업이었다.


다가오는 2019년을 맞이하여 나는 내가 싫어하는 시를 읽어보기로 했다. 이제는 정답을 골라야 하는 수험생도 아니고, 짧은 시 위로 형광펜을 그어대며 선생님의 설명을 적어야 하는 학생도 아니니까. ‘시알못’인 나는 내 생애 첫 번째 시집으로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것을 골랐다. 목표는 딱 하나다. 시집에 담긴 수십 개의 시 중에서 단 하나라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시를 만나는 것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많은 설명을 담지 않은 간결한 문장들이 많은 말 대신 여운을 남긴다. 명확한 것보다는 불명확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나의 취향과 잘 맞는 소설들이다. 정확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강 작가가 쓰는 소설 속 표현들이 ‘시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한강 작가는 ‘시’로 등단한 시인이자 소설가였다. 한강 시인의 첫 번째 시집<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을 고민 없이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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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소설에서는 주로 고통받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불안과 고통은 특정한 사건에서 시작됐다기보다는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근원적 고통에 가깝다. 이 시집 속 시에도 이러한 주제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예찬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서 별것도 아닌 하찮은 것으로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기도 한다.




파란 돌


십 년 전 꿈에 본
파란 돌
아직 그 냇물 아래 있을까


난 죽어 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투명한 물결 아래
희고 둥근
조약돌을 보았지
해맑아라,
하나, 둘, 셋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내가 가진 방식과 비슷해서 이 시가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죽음에 큰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고, 그런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팔을 뻗어 파르스름해진 돌을 줍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에 다시 삶에 대한 의지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또다시 기어코 아픈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 살아있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효에게. 2002. 겨울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의 일부이다. 뒷부분은 아이에 대한 사랑의 내용이 담겨있다. 시에서는 사건의 원인이 아닌 그것이 드러나는 양상을 표현하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밀려드는 파도가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두려움, 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때는 어김없이 생겨나는 그 두려움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 옆에서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 한 사람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 바다의 파도 앞에서는 이 시를 떠올릴 것만 같다.


*


시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것으로 그 첫 만남을 시작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작품의 해설 부분에 실린 말처럼, 결코 언어를 수단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를 그저 느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이다.



[조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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