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증≫ 목마름은 목마름이다 [도서]

글 입력 2018.12.29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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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방영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폭력적인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연령 제한과 심의에는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TV 송출에서 허용되는 폭력성의 정도는 어디까지인가 많은 논의가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없다는 주장과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은 모방을 생산할 위험이 있으며 유사한 폭력의 실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반박이 있었다. 젠더 이슈와 관련한 논란과는 별개로 폭력성에 관한 논란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차피 제도적인 제재가 있으니 그 안에서라도 최대한 많은 것을 허용하고 제한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을 배제한 채 마냥 이상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러한 문제와 비로소 직면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쾌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강간 및 폭력, 마약과 욕설이 끊임없이 나온다. 이 책을 리메이크한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어떻게 시청각 매체로 가시화되어 상업적으로 출시될 수 있었는지 궁금할 정도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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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불륜 상대를 폭행하고 경찰을 퇴직한 후지시마 아키히로. 경비 회사에 근무하는 어느 날 헤어진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딸 가나코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름한 얼굴, 가녀린 몸 그리고 색깔이 엷은 커다란 눈동자. 가나코의 방을 뒤지던 후지시마는 여고생 신분에 잠깐 즐기는 기분으로 소유할 양이 아닌 다량의 각성제를 찾아내는데…….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나코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혼 후 친권을 포기하고 홀로 변변찮은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아버지가 실종된 딸을 찾아 나간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가 딸을 찾는 이유는 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잃을 것 하나 없이 추락한 자신이 아버지의 지위라도 되찾아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려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나마 살아가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망, 그 때문이었다.

그것은 후지시마의 다짐 섞인 대사에서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그가 아내인 기리코와 딸 가나코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아버지의 자격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또한 쉽게 운운할 수도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부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건 대부분의 독자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는 술을 마신 자신을 가나코와 단둘이 남겨지게 한 기리코를 탓하며 폭행의 죄를 부정한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복수


가나코는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공감대하에서 오가타와 깊은 정서적 관계를 맺었고 그런 오가타를 죽음으로 내몬 불량배와 조직에 복수하기 위해 아포칼립스에 잠입했다. 가나코가 치료받곤 했던 정신과 의사이자 가나코가 주선한 매춘에 가담하기도 한 츠지시마의 말마따나, 가나코는 매춘을 주선함으로써 아버지뻘의 남성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건, 결국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다. 똑같이 아버지에 폭행을 당한 오가타를 대신한 복수이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이자, 어린 소년·소녀를 성적으로 유린하는 데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폭압적 남성상에 대한 복수이다.



누가 가나코를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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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코는 자신이 매춘을 주선한 소녀의 어머니이자 선생님인 아즈마를 찾아가 딸의 매춘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충격을 받은 아즈마에게 “울기라도 해요? 비명이라도 지르고 있나요? 이건 그 애 스스로 선택한 결과예요”라고 아주 태평하게 말하면서. 마치 자신, 그리고 자신이 주선한 매춘에 의해 오히려 본인이 지배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고 합리화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즈마는 결국 가나코를 죽인다. 아즈마는 자신의 딸을 매춘에 가담시킨 가해자를 죽인 것이지만, 가나코는 동시에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다. 그리고 가나코를 그렇게 만든 것은 아버지 후지시마이다. 그래서 나는 가나코를 죽인 사람은 결국 후지시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가나코의 흔적을 밟아나가는 과정에서 후지시마는 자신이 몰랐던 딸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하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애초부터 후지시마는 가나코를 알 생각도 없었다. 가나코의 친구들에게서, 혹은 주변 불량배들에게서 가나코의 몰랐던 정보를 얻을 때마다 후지시마는 딸을 잘 알지 못한 아버지로서의 자책과 반성은커녕 알량한 질투를 할 뿐이었다.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그 지위를 이용해 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겼는데도 후지시마는 예전처럼 안정적인 가정의 가장이 되기를 원했고, 그러려면 ‘딸을 잘 아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에서 흠을 보이면 안 됐다. 그러나 결국 딸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당연히) 모르는 것투성이였고, 이상적인 아버지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현실적인 자신의 모습을 깨달을 뿐이었다. 딸을 추적하는 과정은 매번 자신의 추악한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종국에는 진실을 부정하는 자신의 모습 속에 혼란만이 가득했다.

도무지 자신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후지시마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아즈마를 죽이는 것이었다. 딸을 죽인 자에 대한 복수라는 명목이다. 죽이는 순간까지도 가나코에게 용서를 빌고, 자신의 회복을 소망한다. 그러나 그의 광기 어린 추적이 진정으로 딸을 위한 것이 아니었듯, 그 복수도 딸을 위한 부성애적 복수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부인 기리코에게 자행했던 폭력과 겹쳐 보인다. 그는 그냥 자기다운 짓을 했다. 추적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추악한 모습과 맥을 같이 하는. 그는 또 하나의 기리코를, 또 하나의 가나코를 죽였다. 이미 죽은 가나코는 그럼에도 그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없이 악하다. 목마름 뒤에 찾아와야 하는 카타르시스 역시 전무하다. ‘갈증’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을 잘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 하는 나로선 참 난감할 뿐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교훈을 얻을 수 없다. 프리뷰에서 이 책을 통해 어쩌면 모든 이들의 안에 있을 악을 직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그러기도 싫을 정도로 불쾌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여러 차례의 생각 끝에, 이 작품 자체를 그저 ‘갈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목마름은 목마름이다. 그 후에 찾아오는 단비 같은 존재를 통해 해소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봐도 좋게 해석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목마름을 직시하는 경험은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치 있다. 예상보다 더욱 짙은 불쾌함이 남을 수 있지만, 그만큼 더욱 긴 여운으로 의미 있는 감상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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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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