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갈증 - 인간의 추악함, 끝나지 않는 결핍

글 입력 2018.12.28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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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읽으실 때 주의를 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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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경찰이었다가 지금은 경비회사의 직원인 후시지마. 어느 날 후시지마는 전 부인으로부터 딸이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딸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니던 직장도 팽개치고 후시지마는 사방팔방으로 수소문 하고 다닌다. 그 첫 번째 단계로 먼저 딸 가나코의 방을 뒤져보게 되고 그 안에서 다량의 약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부터 후시지마의 태도가 바뀌게 되고, 3년 전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스토리는 진행된다.

사실 도서 <갈증>을 읽을 때 초반부에 나오는 단어 선택 때문에 굉장한 괴리감을 느껴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충분히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바꿀 수 있을텐데도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내의 보○에 각성제를 넣었다는 등의 단어와, "시끄러워"를 자꾸 "시끄"라고 번역, (욕설이 나오는 부분에 양해를 구합니다) 무엇보다도 여성혐오적인 단어로 사용되는 '시발년'을 더 심하게 '씨팔년' 이라고 사용했다는 점에서 불쾌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부분은 충분히 번역가의 재량으로 의역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미 이 시대를 오래 살아버린 남성 번역가이기에 정말 안타깝고 화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로 했다.

문체도 간결해서 읽기가 편했는데, 아마 이 번역만 달랐다면 좀 더 책을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19금 막장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하이퍼 리얼리즘이었고, 나는 실종된 딸의 이야기에 이입되면서 일말의 통쾌감도 느꼈다. 주변의 이미지만을 생각하여 타인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 아빠와 엄마, 그런 부모 밑에서 너무 일찍이 철이 들어버림과 동시에 큰 정신적 타격으로 인해 좋지 못한 길로 들어서게 된 딸, 그런 딸 옆의 영 좋지 못한 친구들까지. 이런 총체적 난국이 또 있을까.





어디까지나 딸은 나에게 속한다.



아버지 후시지마에게 참으로 많은 분노를 느꼈다. 이기적이면서, 내로남불이란 단어에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캐릭터였기에. 술에 취해 친딸을 겁탈해놓고서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신의 아내와 다른 사람의 아내마저 강간하면서도 자신의 딸이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못 본다는 인물.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 수록 그에게 주변인이 없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스럽게 느껴졌다.


아니, 황홀경에 빠진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놈들은 감히 그 곳으로 뛰어든 것이라고, 배덕이라는 이름의 큰 강이 흐르기에 그 피안에 펼쳐질 낙원은 더욱 더 아름답고 달콤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놈들은 필사적이다. 사람 목숨 몇을 빼앗더라도 그 존재의 비밀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룩을 감추기 위해 양동이에 든 물감을 뒤집어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행위라고 할지라도.



인간 내면의 추악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평가를 받는 작품답게, 딸을 찾아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가나코가 아니라 후시지마의 추악한 내면이었다. 자신의 딸은 절대 그러할 리 없다고 여기면서 정작 모범은 보여주지 못 하면서 술과 약물에 쩔어가고 광기어린 모습으로 변해가게 된다. 다시 단란한 가정을 제대로 꾸리고 싶다면서 자신에게 이혼통지서를 보내버린 아내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 하고, 딸은 자신이 생각한 모습을 벗어나선 안된다는 이기적인 생각들. 사람은 바꿔쓰는 것이 아니라고. 사실 아버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나코를 짝사랑했던 세오카 역시 추악함을 내보이는 인물 중 하나였다.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맘에 드는 이유는, 모든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용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국내 웹툰 혹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학교 폭력의 가해자가 제대로 된 사과 없이 피해자에게 좀 잘해주었다고 둘의 사이가 급격히 좋아지고 친해지는 장면이 꽤나 많이 보인다. 나는 그럴때마다 그 광경이 늘 거슬리고 불편했다. 갈증은 달랐다. 가해자 후시지마를, 피해자 가나코는 용서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행위를 안겨주기까지 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오가타를 죽음으로 내몬 모든 이들에게 철퇴를 가했다. (가나코에게 속아 피해를 입은 몇 사람은 자신이 피해를 입은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가나코를 좋아하고 따랐기에 이 부분에선 제외시킨다.) 물론 이 이유들은 절대 가나코의 행동을 정당화시킬수는 없다. 하지만 속이 시원했다. 가나코는 모든 이의 내면에 숨겨진 추악함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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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渴症,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 느낌 혹은 목이 마른 듯이 무언가를 몹시 조급하게 바라는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제목인 갈증은 책 안의 모든 등장인물에게도 포함된다, 시점의 주인공인 아버지의 (표면적으로만 완벽으로 보이는 가족애에 대한 갈증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역시 가장 그 단어에 어울리는 인물은 가나코인 것 같다. 몇 년 전 아버지란 인물에게 당한 성적 폭행,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그마저도 타인에 의해 잃게 된다. 만약 나에게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나는 그 현실을 다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자살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든 일들을 계획해낸 가나코는 머리가 좋고 꽤나 강인한 인물이다.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책의 제목은 갈증이었지만 원제는 果てしなき渴き로 '끝 없는 갈증'을 의미한다. 딸이 복수심을 가지고서 이 모든 것을 기획하였음에도, 그리고 그 계획들이 꽤나 성공적으로 끝이 났음에도 아마 가나코는 계속해서 영원히 무언가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을 것이다. 가나코의 갈증은 끝이 나지 않을 것이다.


"슬픔을 드러내는 방식이 꼭 누물을 보이는 것만은 아니죠. 그 아이는 자책했을 겁니다.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서서히 슬픔에서 벗어나 치유되어 가는 우리와는 반대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조차도 거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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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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