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KBS 연예대상 최초, 여성 대상 수상자의 탄생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12.2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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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KBS 연예대상의 첫 여성 대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KBS 예능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등의 MC로 다방면에서 활약했던 예능인 이영자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KBS, SBS, MBC와 같은 지상파 방송국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이 됐다.

KBS 연예대상은 1987년 ‘KBS 코미디대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2002년 ‘KBS 연예대상’으로 이름을 바꾼 뒤 현재까지 거의 매년 연말 방영되는 시상식이다. KBS 연예대상의 이름이 ‘KBS 코미디대상’이었던 시절부터 따져 보자면, 이 시상식은 약 25년간 꾸준히 대상 수상자를 배출해왔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1955년에서 2001년까지 시상식 자체가 아예 폐지되었던 기간을 제외한 것이다.)

그런데, 이 25회의 시상식 중 여성 대상 수상자는 단 두 명에 불과하다. 1990년 KBS 코미디대상에서 김미화가 대상을 수상한 이후 대상 수상자는 줄곧 남성 예능인이었기 때문에, 여성 예능인들은 여자 최우수상 수상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25년간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에게 대상의 자리는 유리천장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1990년 이후 2018년에 이르기까지 여성 대상 수상자가 없었던 것, 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여자 최우수상까지 수상한 여성 예능인들에게 유독 대상의 장벽이 높았던 것, 한 여성 예능인이 데뷔한 지 25여 년 만에 유명 시상식에 초대된 것 등은 모두 방송연예계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한 결과들이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올해 4월 TV 예능프로그램 상위 33편을 분석한 결과, 주 진행자의 83.8%가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16.2%에 불과했다. 전체 출연자 비율은 남성 64.6%, 여성 35.4%였다. 여성의 신체를 평가하는 것을 코미디 소재로 삼거나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남성 출연자들의 여성 혐오 발언이 그대로 송출되는 일도 다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과 수치가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능인 이영자의 대상 수상은, 그녀가 2002년 연예대상 개편 이후 유리천장을 깬 첫 여성 대상 수상자라는 점과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방송연예 분야에 만연한 성 불평등을 실감하게 한다는 점, ‘대상을 받는다면 개그우먼 후배들의 꿈을 더욱 넓혀주는 의미가 될 것’이라는 그녀의 인터뷰처럼, 다른 여성 예능인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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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번 연예대상 수상 결과를 지켜보며,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결은 다르지만, 필자가 루이즈 부르주아를 떠올린 이유는 그녀가 남성 중심적인 문화예술계에서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성이고, 적지 않은 나이에도 작품 활동을 통해 끝없는 열정을 보여주었으며, 다른 여성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삶의 모습이 남성 중심적인 방송연예계에서 대상이라는 최고의 상을 수상하며, 적지 않은 나이에 또다시 전성기를 맞이하여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예능인 이영자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무명 기간이 길었던 예술가다. 루이즈 부르주아가 60대 후반이었던 1970년대 말, 미국에서 페미니즘 미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그녀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 당시 미술계에는 남성 중심적 흐름이 만연했고, 이 때문에 여성 작가들이 미국의 유명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러나 루이즈 부르주아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회고전을 열며 현대미술의 거장이 되었다. 회고전을 열 당시 그녀의 나이는 70세였다. 이에 대해, 영국의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은 한 인터뷰에서 루이즈 부르주아에 대해 ‘루이즈는 여성 예술가가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그녀는 마지막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 회상했다.

그녀의 대표작 ‘마망’이 1999년 제작된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루이즈 부르주아가 작품 활동에 있어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녀는 여성 예술가의 이름 앞에도 ‘거장’이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트레이시 에민의 인터뷰처럼 여성 예술가가 계속해서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음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수많은 여성 예술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앞서 언급한 트레이시 에민 뿐 아니라 미국의 예술가인 제니 홀저 등을 포함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루이즈 부르주아를 언급한 바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는 지금까지도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계속해서 열정을 잃지 않았던 예술가로 기억되고 있다.

필자는 최초 여성 대상 수상이 이러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루이즈 부르주아가 그랬듯 여성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면서, 동시에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음을 증명해낼 시작점인 것이다. 더불어, 저평가되거나 ‘여성 예능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예능인으로서의 위치를 찾기 위한 노력의 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참고 자료



[김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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