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한국은 언제나 <골목의 전쟁> [도서]

글 입력 2018.12.2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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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리 동네를 벗어나 ‘서울’이라는 큰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곳들을 보았다. 강북, 강남, 구도심, 대학가, 주거지역, 공장지대 등 한 도시에서 정말 달랐다. 같은 동네도 몇 달 뒤, 몇 년 뒤에 가보면 크게 변해있기도 했다. 인사동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때를 그리워하듯 나에게는 삼청동이 그렇다. 관광지로 엄청 뜨기 전에도 어느 정도 개발이 되기는 했어도 ‘동네’라는 느낌은 있었다. 지금도 분명 사람 사는 곳일 텐데 거주민 없는 관광지 같다.

삼청동 외에도 자주 가거나 추천 받은 곳들은 카카오맵에 북마크를 해놓는다. 실제로 가봤던 곳들이 절반, 아닌 곳이 절반이다. 이렇게 ‘괜찮은 곳’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거리를 걷다보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꾸미기_카카오맵 북마크.jpg
나의 카카오맵 : 확대하면 더 가득가득


이미 뜬 곳과 뜨기 시작한 곳과 뜰만한 곳, 정부나 지자체가 투자한 곳과 자연스럽게 돈이 몰리는 곳 등. 이것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부동산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알겠지만 일반 소비자이자 이방인, 관광객에게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 거리, 동네의 분위기?

한번 관찰하기 시작하니까 신기했던 것은 홍대, 강남 같은 곳이다. 이 두 군데는 대체불가능한 상권이 어떤 곳인지를 보여주는 지역이다. 홍대는 개인적으로 삼각지대는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안가는 곳이지만 파생상권들이 좋다. 합정, 상수, 망원, 연남 등은 원조인 홍대입구와는 다른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이곳들이 계속 남아있다면 홍대 상권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강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이곳은 서울의 비즈니스의 상징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아무리 비싸고 아무리 특색 없어도 대체할 만한 곳이 없는 이상, 영원할 것 같다.

<골목의 전쟁>은 도시의 산책자인 내가 가졌던 이렇게 막연한 ‘느낌’들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합리적으로 해석해주었다. 사실 표지만 보면 부동산 관련 책일 것 같았고 교조적인 태도로 “이렇게 투자하면 안돼!”라고 말할 것 같았다. 우연한 소개로 일단 목차를 펼쳐보았는데 이 목차부터 의외로 재밌었다. 챕터와 사례가 누구나 한번쯤은 뉴스를 보며 생각해보았을 만한 것들이라 낯설지 않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데이터로 설득력도 있었다.

한 마디로, 글을 잘 썼다.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임대료 문제, 자영업 문제, 프랜차이즈 문제, 유행의 문제 등에 대해 호기심이 드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나 같은 사람)





<골목의 전쟁>은 총 9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유행, 카피캣, 운, 성공, 원가,
프랜차이즈, 골목, 대량생산,
전자상거래, 상권, 다양성,
젠트리피케이션, 자영업, 대리인 문제”

이 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유행템과 카피캣 브랜드, 골목-프랜차이즈-자영업 파트였다.


“SNS에서 핫한 아이템”이라는 문구로 여기저기서 홍보되지만 그 출처는 알 수 없는 무수한 유행템들 중 살아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관련 프랜차이즈는 계속 생기고 가맹점은 늘어날까?

제 살 깎아먹는 따라 하기, 카피캣은 왜 그렇게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걸까?

프랜차이즈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잡아먹는 나쁜 것인가?

상권의 흥망성쇠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씩 풀어보자.


1. “SNS에서 핫한 아이템”이라는 문구로 여기저기서 홍보되지만 그 출처는 알 수 없는 무수한 유행템들 중 살아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관련 프랜차이즈는 계속 생기고 가맹점은 늘어날까?

책은 유명 투자전략가인 리처드 번스타인이 소개한 이익 예상 라이프사이클을 변형한 소비자 관심 라이프사이클로 유행을 설명한다. 정보가 10 정도일 때 키운 아이템은 ‘힙하다’는 표현으로 SNS에서 떠돌게 되고 언론에 한 번 올라올 정도가 되면 이때부터 가맹문의가 늘어난다. 일반 소비자인 우리가 길거리에서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우후죽순 생겨나며 한 동네에 수 개씩 볼 수 있을 때에 극점을 찍는다. 사실상 이 순간 유행은 끝이 난다. 겉보기에는 가장 잘나가는 것 같지만 경쟁자들의 증가세, 흔해지는 브랜드가치, 식상해지는 유행 등 남은 것은 내리막길뿐이다. 서서히 대중의 관심은 사라져가고 가게를 넘기려 해도 처분이 어려워진다.


꾸미기_사이클.jpg
소비자 관심 라이프사이클 8단계


대만 카스텔라도, 무한 연어리필집도, 벌꿀 아이스크림, 치즈 등갈비, 고로케, 커피번, 생크림빵 등 갑작스러운 유행은 어느 날 끝이 난다. 지금도 그나마 장사가 되는 것은 한국인들 간식거리도 적합한 핫도그 정도? 식빵 집도 꽤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더 남을지 회의적이다. 여전히 밥은 한국인의 주식이고 식빵은 매 끼니마다 먹기엔 부담스럽다.

그럼 유행의 속도를 조절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프랜차이즈가 수익을 남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점포개발, 로열티, 유통. 이 중 로열티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본사에서 주로 이익을 남기는 루트는 점포 개발 수익, 즉 새로운 가맹점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위해 가맹 상담, 투자 설명회에서도 점포수를 늘리는 데에 혈안이고 설사 오래가지 못하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나올 수 있다고 유혹한다.

물건을 살 때 만원 깎는 것, 몇 백 포인트 사용에는 알뜰한 사람들이 왜 몇 억 투자라는 큰일에는 꿈을 꾸는 것일까? 남들은 망해도 자신만큼은 괜찮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2. 제 살 깎아먹는 따라 하기, 카피캣은 왜 그렇게 쉽고 빠르게 만들어지는 걸까?

유행 아이템을 하나의 브랜드가 선도했을 때, 우리는 곧 브랜드 전국시대를 만나게 된다. 이름도 비슷하고 브랜드 이미지- 색, 문구, 메뉴, 가격 등 -가 흡사한 유사 브랜드, 카피캣들이 원조의 성공과 함께 난립한다. 하나의 시장에서 차별화된 요소 없이 경쟁하는 원조와 짝퉁은 서로 경쟁하다가 몇 년 뒤 자멸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저렴하고 맛있고 새로운’ 아이템에 빠지더라도 관련 시장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곧 한계가 온다. 괜히 대기업들이 잘하던 사업 외에 새로운 사업으로 다각화하는 것이 아니다. 업계에서 확실한 일인자가 아니라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한다.

꾸준한 발전 없이 유행만 믿고 벌이는 사업은 모두가 죽는 시장의 황폐화로 끝을 맺는다.

아직도 기억나는 대표적인 카피캣들이 있다. 할매 순대국, 봉구비어, 쥬씨의 뒤를 이어 우후죽순 생겨난 그들. 하나하나 이름을 거론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비슷한 이름 혹은 컨셉으로 3개 이상은 봤던 것 같다. 저렇게 가맹점이 늘어도 되나 할 정도로 번화가를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버렸던, 그 많던 카피캣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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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할매순대국은 아직도 누가 원조인지 모른다(...)
쥬씨랑 봉구비어는 내가 기억하는 원조.


정말 똑똑하게 유행 사이클에서 돈을 벌고 싶다면 공차코리아 전 대표 김여진씨의 일화를 참고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위에서 소개한 소비자 관심 라이프스타일 기준으로 수익 극대화 기간인 (틈새 아이템~극점) 시기에 돈을 벌고 아쉬울 때 빠진 그녀의 행보는 340억 M&A로 결말이 났다. 참으로 몇 없는 유행의 모범사례이다. (조선비즈 : 만화가 아니다…茶에 꽂힌 26세 주부 7년만에 340억 M&A의 주인공으로)


3. 프랜차이즈는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잡아먹는 나쁜 것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파트였다. 프랜차이즈나 대기업 하면 알게 모르게 드는 반감이 있었다. 막연한 선악구도에 길들여진 생각은 저 두 그룹과 대적하는 쪽을 ‘착한, 선한, 약한, 보호해야줘야 하는’이라는 결론으로 흐른다. “골목상권에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면 생존권 침탈” “전통시장 근처 종합쇼핑몰은 상인들의 죽음” 같은 자극적인 제목에 홀렸던 것 같다.

상생하는 것, 좋은 말이다. 같이 파이를 쪼개며 함께 먹고 사는 아름다운 사회다. 그런데 언제까지?

프랜차이즈의 장점은 ‘표준화, 원가절감, 매뉴얼화, 품질보증/관리’이다. 흔한 예시지만, 우리가 해외 어디서든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망설임 없이 들어가는 이유기도 하다. 소비자는 내가 먹던 것을 다른 곳에서도 거의 비슷한 품질, 가격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는다. 국내에서도 낯선 동네에 갔을 때 어느 집이 괜찮은지 모를 때면 백종원 시리즈나 자주 먹던 브랜드로 들어간다. 위생, 맛, 가격 등 기본은 되니까. 반면 인터넷에서 맛집이라고 검색해서 찾아간 개인 밥집에서 실망한 적은 많다. 관광지라고 비싸게 받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서비스, 위생, 재료품질 등이 프랜차이즈에 기대한 것보다도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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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품질보증서, 백종원은 개인이 브랜드다.


음식점이 좀 막연하다면, 빵집은 어떨까? 나는 파리바게트를 선호하지 않지만 빵이 먹고 싶으면 일단 여기에 간다. 동네 빵집이 3곳 정도 있지만 맛, 종류 등이 별로다. 파리바게트는 하다못해 포인트 적립이라도 되고 폐기도 제대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가끔 다른 동네에 유명한 빵집 분위기로 가게를 꾸민 곳을 들어가 보면 앙버터빵, 버터프레첼 등 SNS나 방송에서 인기를 탄 메뉴들을 하나씩 들여놨다. 그런데 겉보기에만 그럴싸하고 하나 먹어보면 돈이 아까울 때가 꽤 있었다. 정말 괜찮은 빵집들이 가아끔 있어서 종종 시도해보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결국 파리바게트로 간다.

전통시장은 다른 동네에 놀러갈 때 관광의 의미로 방문하는 것이지, 일상에서 머물고 싶지는 않다. 다른 것은 다 감안해도 위생이, 정말, 아쉽다. 전통시장 특유의 오픈된 가게디자인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눈에 보이니까, 견디기 어렵다. 프랜차이즈도 더러운 것으로 적발된 곳들이 꽤 있지만 그래도 ‘품질관리’의 측면에서 적당히 믿고 들어가는 것이 크다.

개인이 집단인 프랜차이즈를 이기려면 넘어야 할 산들이 있다. 메뉴 개발, 홍보, 진열, 디자인 등은 그들이 가진 유무형의 자산이다. 프랜차이즈는 소비자가 원하는 맛과 디자인을 개인이 경쟁하기 힘든 가격으로 제공하고 소비자는 그것에 저항하기 어렵다.


4. 상권의 흥망성쇠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3번은 “악”인 프랜차이즈/대기업 프레임을 벗어난 새로운 시점이어서 먼저 다뤘을 뿐, 사실 상권 그 자체를 위해서 지금처럼 많은 프랜차이즈는 필요 없다. 그 옛날, 내가 꼬꼬마였을 때 명품과 유행의 중심지였다는 압구정은 최근 가보았을 때 쇠락한 도심지의 모습이었다. 000길의 시작이었던 압구정 근처 가로수길은 매우 심각하게 대기업 브랜드, 프랜차이즈들로 가득 차있다. 구경이라도 해볼까하고 걷는데 재미있는 것은 애플 스토어 하나뿐이다.

자본 있는 브랜드가 뜨는 상권에 하나 둘 들어오고 특색 있던 가게나 공방을 그 수만큼 떠나보낸다. 신선함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강남 같은 그 거리에 실망하고 다른 ‘힙’한 곳을 찾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원래 살던 거주민, 상인들은 쫓겨나고 임대료 대비 매출 문제로 프랜차이즈들이 차차 빠지고 결국 그 상권은 죽는다.

대표적으로 이대와 신촌은 옛날 대학문화를 주름잡았다고 하지만 중심가 외에는 꽤 쇠락한 느낌이 든다. 위기를 느낀 임대업자들 측에서 임대료를 몇 년간 동결하고 지자체에서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돈도 썼다고 한다. 최근 청년, 영세 사업가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것 같다. 홍대라는 큰 연계상권이 있고 기본적인 대학가 매출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지, 보통 저 정도의 자정노력으로 침잠하는 상권을 키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뜨는 상권을 보려면 그 상권을 이루고 있는 거리, 시설, 가게의 다양성을 보고 지는 상권을 보려면 건물의 임대료와 공실률에 주목하자. 책에서는 서울숲과 성수동 카페거리를 비교하며 똑같이 뜨는 상권이어도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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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떨어져 있는 두 상권


서울숲은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큰 공원이라는 휴식처와 근처 작은 골목들 사이에 있는 수많은 밥집들이 매력적이다. 가게들도 전형적인 곳부터 특색 있는 곳까지 골라갈 수 있다. 반면 성수동 카페거리는 분명 괜찮기는 한데 짧게 한 바퀴를 돌고나면 끝이다.

약간 오기가 생겨서 근처 골목을 이리저리 몇 번 더 걸어봐도 거의 일하는 공간과 공장 등으로 차 있어서 혼자 걷기에 심심했다. 더불어 걸어서 근처 서울숲이나 건대까지 가기에는 멀고, 버스타기에는 아까운 애매한 위치기도 하다. 중간의 완충지대라도 있으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가는 도중의 풍경은 꽤나 삭막하다.





한 줄 평

<골목의 전쟁>은 생산자에 대해 갖는, 생산자 자신과 소비자의 오해를 명쾌하게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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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내용 외에도 제조원가, 레몬시장에 대한 이야기, 임대-임차-부동산업자와 관련된 대리인 문제, 최근 떠오르는 대량생산품(식품 쪽은 HMR) 문제 등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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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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