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혐오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애니메이션]

원피스 『어인 섬』편으로 보는 세상의 변화
글 입력 2018.12.18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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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다 에이치로는 분명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만화 원피스의 2부 첫 장편 에피소드인 <어인 섬> 편은 원피스의 주제의식을 매우 공고히 드러내주는 에피소드다. 이 글을 통해 원피스를 잘 모르는 독자들이라도 원피스가 어떤 철학을 가진 작품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 중에서도 '차별'은 눈에 띄는 주제다. 오다 에이치로는 '차별'이라는 커다란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국가를 설정하고, 변화의 신념을 대표하는 영웅적 인물과 증오를 상징하는 악당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타협할 수 없는 두 개념은 어떻게 맞물리고 어떤 맹점을 드러낼까? 그리고 '시민'은! 그 격동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고 어떤 행동을 하는가? '가해자' 즉, 차별하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집단 내의 갈등 폭발은 우리에게 새롭고도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매우 생동감 있고 전개를 예측할 수 없는 이 스토리를 같이 따라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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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 섬'은 바다 10,000m 밑에 위치한 섬이다. 바다 밑에서 자라 육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 덕분에 어인 섬은 심해에서 유일하게 햇빛이 비치는 곳에 위치해있다. 이 섬에는 어인이 살고 있다. 세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땅인 레드라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꼭 지나야 하는 섬으로, 아름답고 유명한 관광지인 이 나라는 사실 보기와는 달리 행복하기만 한 장소는 아니다. 어인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차별받아온 종족이다. 어인이 육지에 나가면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된다. 어인은 납치당해서 암암리에 운영되는 노예 경매장에서 팔려나간다. 그래서 이들은 햇빛을 갈망함에도 불구하고 바닷속에서 살 수밖엔 없다. 즉, 어인 섬의 존재 자체가 결국 차별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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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무거운 문제를 안고서 존재하는 어인 섬에는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이 있었다. 어인으로 구성된 태양 해적단의 선장 피셔 타이거와 선대 여왕인 오토 히메이다. 이 두 영웅에 대해서 자세히 탐구해보자. 먼저, 피셔 타이거는 성지 마리 조아에서 천룡인(세계 귀족)의 노예였던 어인과 인간을 구한 영웅이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천룡인을 상대로 벌인 이 일로 피셔 타이거는 세계 정부에게 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그래서 피셔 타이거는 탈출시킨 어인들 과 그를 따르는 또 다른 어인들을 모아 태양 해적단을 만든다. 또한 노예 마크를 덮는 타투를 만들어 해적단의 표식으로 삼아, 본래 노예였던 이들을 숨겨준다.

하지만 피셔 타이거는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된다. 태양 해적단은 어느 섬에서 인간 노예 아이를 만나 그녀를 고향에 데려다주게 된다. 그러나 이는 세계 정부의 함정이었고, 노예 아이의 고향에서 피셔 타이거는 해군의 급습을 받고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만다. 배로 옮겨진 피셔 타이거는 치료를 받는다. 선의는 수혈을 하려 했지만 피셔 타이거는 그것을 거부했다. 수혈을 위해 확보한 피가 인간의 피였기 때문이다. 피셔 타이거는 어인 족을 구한 영웅이었고, 어인 섬을 변화시키길 원했지만, 그는 도저히 인간과는 타협할 수 없었다.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는 사실 육지에서 끔찍한 노예생활을 경험했던 장본인이었다. 가까스로 도망친 그는 여전히 붙잡혀있는 그의 동족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마리 조아를 찾아가 노예를 해방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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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로 어인 섬을 변화시키려면 인간과 타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한번 각인된 노예생활의 기억은 인간에 대한 분노를 없애지 못하게 했다. 결국, 피셔 타이거는 끝끝내 수혈을 거부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부탁은 그가 인간으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을 어인 섬에 알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인 섬의 미래를 위해 피셔 타이거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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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두 번째 영웅인 오토 히메는 왕궁에서 내려와 직접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사는 친절한 여왕이었다. 그녀의 숙원은 어인 섬의 육지 이주였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매일같이 시내에 내려가 시민을 설득하고, 서명을 부탁했다. 그러나 오토 히메의 좋은 평판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거부반응을 가진 어인 족에게 '인간은 생각만큼 나쁜 종족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여린 몸으로 육지까지 강행해서 천룡인에게 어인 섬 육지 이주 동의 서명을 받아온 그녀의 용기와 노력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야 만다. 그녀가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세계 회의에 제출할 수많은 서명서를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오토 히메도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서명서를 얻는 도중, 그녀는 인간이 쏜 총에 맞고, 서명서도 함께 불태워진다. 그녀가 자식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피셔 타이거의 유언과 비슷했다.



"범인이 어떤 자라도 날 위해서 화내지 마렴. 날 위해서 분노나 증오에 사로잡히지 마렴."



두 영웅이 어인 섬을 위해서 싸웠던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같았다. '증오를 대물림하지 않는 것'.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증오와 끝까지 싸웠던 그들은 알고 있었다. 결국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다음 세대라는 것을.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의 개정도 정치적 논쟁도 아니다. 시민 의식의 변화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는 다음 세상이다. 다행히 영웅의 의지는 잘 이어졌다. 이후 오토히메의 자식들이 자라고 밀짚모자 일당이 어인 섬에 왔을 때, 반란이 일어난다. '신 어인 해적단'을 결성한 호디가 왕족들을 인질로 삼고 나라를 뒤엎으려 하는 것이다. 이때,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오토 히메를 죽인 범인은 인간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 총을 쏜 것은 당시 국왕 군이었던 호디였고 그는 인간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일부러 인간을 범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당시 꼬마였던 시라호시 공주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홀로 진실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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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의 바람은 시라호시 공주의 가슴에 싹을 피웠고, 그녀는 혼자서 매일매일 그 작은 싹을 지켜왔다.



"험한 꼴을 당해 그 상대를 증오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널.. 얼빠졌다고 말한 저 남자처럼. 하지만 그 증오를 인지하고 혼자 떠안고 있는 건 결코 겁쟁이가 할 수 있는 게 아냐."


-로빈



영웅의 신념은 다음 세대에게 계승되었다. 이 싹은 언젠가 어인섬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 것이다. '의지의 계승'! 이것은 원피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영웅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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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악당 호디는 놀라운 정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예전 어인 해적단의 의지를 이어받은 것도 아니었고, 인간의 차별을 직접 받아본 적도 없었다. 그저 어릴 때부터 인간을 증오하는 어인들 사이에서 자라났고, 그는 '증오'라는 감정을 스스로 무섭게 키워왔다. 그리고 그는 그 감정에 잡아먹히고야 만 것이다. 그의 행동은 자신의 신념을 위한 것도 아니며, 그저 증오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그는 단지 인간에 대한 어인의 '증오' 그 자체다. 이는 사회적 편견이 어떻게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히는지를 보여준다. 만들어진 편견은 다음 세대가 가지는 가치관의 근간으로 자리 잡는다. 이것은 우리가 사회적 문제와 끝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다.

결국 국왕군은 밀짚모자 해적단의 도움을 받아 호디를 무찌르고 어인 섬의 평화를 되찾아 놓는다. 왕국 멸망의 위기를 겪은 어인 섬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까? 시민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지상에 가고 싶다는 말에 "뭐? 지상에는 어인을 싫어하는 무서운 인간이.."하고 걱정하는 말을 먼저 무심코 하게 되지만, 곧 바로잡는다. "아니, 그런 녀석도 가끔 있는 것 같고, 물론 밀짚모자처럼 강하고 좋은 녀석도 있고." 이 대화는 ​시민 의식의 변화를 나타낸다. 드디어 시라호시 공주의 싹이 퍼지기 시작했다.


영웅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는 그들과는 달라야 한다! 인간을 증오하지 말라."였다. 증오의 연결고리를 끊으려는 시도는 선진적 시민 의식을 심으려는 의지였고, 그들이 몸 바친 신념이었다. 차별의 대상인 어인은 그들 속에 심어져있던 증오를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인간의 차례다.


*


차별 대상이었던 어인들의 의식 성장에서 우리는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까? 오다 에이치로가 그린 어인 섬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과 매우 맞닿아있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있는 우리 사회를 비추는 듯하다. 그러나 어인 섬의 영웅들은 중요한 가치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증오를 대물림하지 말아야 한다.' 얼마 전 보았던 『대화의 희열』에서 천종호 판사가 출연해 소년법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유희열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혐오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요." - 「대화의 희열」 中, 유희열



진정으로 세상이 바뀌려면, 변화해야 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시민이다. 증오라는 감정은 사람의 내면을 뒤흔들고 집어삼키려 한다. 우리가 정말로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증오와 혐오의 감정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취해야 할 자세를 진지하게 숙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변화의 가능성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광장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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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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