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 읽다] 김연수 - 기록되지 않은 역사들

그곳에 누군가의 일생이 있다.
글 입력 2018.12.16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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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세상을 살면서 ‘우리’라는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우리’란 고작 내 주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6년. 그해 겨울은 참 추웠다. 그해 날씨가 기억나는 건, 그날의 계절 속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으로 모인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캠퍼스에 모인 성도 이름도 모르는 학우들을 보며 난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분명한 건, 지금의 우린 그때의 우리와 달라졌다. 고작 내 앞의 흰 경계선을 넘은 것 같지만, 마치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넘은 듯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역사의 한 가운데에 우리가 있었다. 우리는 함께였기에 외롭지 않았고 그건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그걸 난 그 속에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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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의 그 시간이 역사책에 그리고 지식백과에 한 줄로 기록될 것이다. 내가 국사 시간에 웅얼웅얼 외웠던 개념처럼.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그 당시 모였던 사람들의 열기와 감정들은 절대 한 줄 따위로, 0이 채워진 숫자 따위로 설명할 수 없을 ‘진짜’였다고. 내가 온 몸으로 느낀 그게 진짜 역사였다고.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공적인 기록된 것들에 밀려 기록되지 않은 것들. 거기에 있는 진짜 일생에 대하여. 단 한 번 한 줄기 빛을 본 것만으로 그 빛줄기를 위해 걸어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시작한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




역사 :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국어사전에 올라온 역사의 정의다.


역사가 정확한 증거와 진실로 기록된 것이라 한다면, 강시우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강시우의 일생이 담긴 테이프를 먼 타국, 베를린 숙소에서 우연히 보게 된다. 이길용으로 태어나고 강시우로 다시 태어났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역사 속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일생을 알게 된다.


1987년. 평범한 일용노동자였던 이길용은 광주교도소를 나올 때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해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강시우가 됐다. 광주교도소에서 고문과 교육을 받으며 외적으로는 안기부의 프락치였지만, 실은 안기부의 간첩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조국은 민주화를 위해 걸어온 그의 일생을 진실이라 믿지 않는다.


그가 깨달은 이치보다 그가 안기부 프락치이자 간첩이라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는지, 프락치로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안기부 내는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를 물을 뿐이었다. 그의 삶이 무엇 때문에, 왜 바뀐 것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것이 그의 일생이었고 우리의 역사였는데 말이다. 민주화를 위해 그가 걸어온 길은 그들의 슬픔이 되지 못한다.


*


기록되지 않고, 사실로 인식되지 못해 걸러지는 것은 손안에서 흘러내리고 만다. 걸러졌으니 지금의 우리는 그들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기록되지 않은 순간들 속 일생을 바쳐 산 사람들은 너무도 많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어떤 것이 역사고 어떤 것이 역사가 아니라 가려낼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걸러지지 않은, 지금 우리가 역사라 부르는 것들은 진정한 역사라 볼 수 있을까.




나, 너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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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 물음을 많은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답한다. 역사는 '나'고, '너'이며 '우리'라고.



별들 사이에 선이 이어질 때마다,

그리고 그 모양이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 별자리들은 내게,

이 세상이 신비로운 까닭은

제 아무리 삼등급의 별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는 한,

사자도, 처녀도, 목동도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p.113



방북 예비대표로서 베를린에 간 '나'는 이길용이자 강시우. 사토 레이코. 헬무트 베르크이자 칼 하프너를 만난다. 그리고 나라를 넘어 서로 연결돼있던 ‘나’, ‘나’의 할아버지. 정민. 정민의 삼촌. 이길용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상수 이민호. 이상희. 사토 레이코의 아버지 사토 사부로. 그리고 한 사진. 그 사진을 찍은 피에르 루이소까지.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가 서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건 곧 연결된 우리는 한 세상을 이루기 때문에 그것을 지워내면 곧 역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역사는 수많은 개개인의 ‘나’가 있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나’들은 ‘하나’가 된다.




'나'로 존재할 것



그리고 '나'는 1991년, 자신이 사는 세상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외로움의 정체 또한 알게 된다.


사실 '나'는 대학생이었고 총학 선전부 차장이었지만 민주화에 열렬한 사람이라 하기엔 어쩐지 그 범주 바깥에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이유 없는 폭력이 일상이었던 세상은, 사람을 단지 그 자리에 있고 없고에 따라 삶과 죽음이 갈린 우연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와 필요에 대한 의문으로 혼란스럽게 했다. 그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마치 화면 밖에서 보듯이 살아온 것이다. 이방인처럼.


이제 ‘나’는 안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갈 실낱같지만 확실한 그 무언가를. 스스로 우연한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것. 그 누구에게도 나의 인생을 맡기지 않고 나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자, 눈을 감아봐.

그리고 가만히 느껴봐.

그 막막한 어둠이며,

계속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며,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마치 지금 막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들을 느끼듯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p. 254



이 역사는 이전의 역사다. 지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고, 그전과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난 이 책의 화자 '나'가 느끼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공감했다. 나 또한, 사회 속에서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고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일까 생각하곤 했기에. 그게 이 책을 집었던 이유였다. 나도 나의 이 외로움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


시대가 변해도 외로움과 두려움은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우린 끊임없이 시대를 거슬러 휩쓸리고 외로워진다.


그 순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 내가 선택해야 한다는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 다른 것이 그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네가 사는 방식이 틀렸다 누군가가 나를 부정해도 미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실낱같지만 확실한 무언가라고. 나의 삶에도 필요한 말이었다.


이 세상은 내가 있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행여나 그 세계가 너무도 외롭고 두려워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고 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이 외롭다 느끼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게 곁에 있는 사람이든, 인사해 본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이든, 저 멀리 베를린에 있는 사람이든. 우리가 모르지만 우리는 꽤 많은 사람과 연결돼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증거다.


3등급짜리의 별들이 모여 별자리를 이루듯, 비록 내가 보잘것없는 존재 같아 보여도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는 외롭지 않은 존재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나아가자. 이 세상은 결국 내 것이니.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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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작가 김연수.


내 생각 밑바닥 어딘가에 근본이 있다면 그건 김연수 작가가 될 것이다. 그는 그만큼 나에게 특별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문학으로 처음 접한 책도 김연수였고, 현대문학 작가들을 알게 해준 것도 김연수였다.


그의 글이 좋았다. 내가 더 많은 인생을 건너가야 알 수 있을 감정들과 깨달음을 책 속에 숨겨 놓아서. 참 어려운 이야기를 참 쉽게 말하는 사람이라.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울 정도로 깊어서. 책을 놓을 수 없고 책 전체가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간직하고 싶은 말들로 가득하다. 그만큼 무감각했던 내 마음으로 들어와 온갖 감정들로 꽉 차게 하는 작가다.


대표작으로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포함해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등이 있는데 이 중 어떤 책을 집어 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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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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