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시 시작되는 신화, 지킬앤하이드 [공연예술]

글 입력 2018.12.1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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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뮤지컬을 종종 즐기는 편이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생소하기만 하던 때 <위키드>로 처음 발을 들였고, <레미제라블> 이후 좋아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공연을 볼 기회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반면에 금전 측면에서는 한층 여유가 생겼다. 대학 시절 할인받은 A석 끝자리에서 배우들의 정수리만 바라보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최대한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살핀다.

비싸기도 하고 접근도 쉽지 않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벅차오름을 느끼기 위해서다. 잘 만들어진 공연을 보고 있자면 수많은 사람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들의 성취감에 매료된다. 그렇기에 모든 출연진이 함께 나와 인사를 건네는 커튼콜의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

2018년 올해도 여러 뮤지컬을 만났다. <모래시계>,<맨오브라만차>,<닥터지바고>,<바넘>,<이블데드>.<웃는남자> 등이 그것이다. 간간이 줄거리도 연출도 넘버도 마음에 차지 않는 공연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명작 하나를 만나면 모든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어떤 공연은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자꾸 되뇌기도 한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또 하나의 명작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뮤지컬<지킬앤하이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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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던져 앞면인지 뒷면인지 맞추는 내기를 종종 하곤 했다. 그때마다 숫자가 앞인지 그림이 앞인지 투닥거리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 뮤지컬<지킬앤하이드>에도 앞면이기를 자처하는 두 얼굴이 있다. 선으로 상징되는 의사 지킬과 악으로 상징되는 살인마 하이드이다.

주인공 지킬은 사람의 마음속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스스로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성공하지만 분리된 악인 하이드를 통제하는 데엔 실패한다. 지킬과 하이드는 재차 충돌한다. 넘버<Confrontation>에서 그 대립은 절정을 보여준다.

한 영화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악역을 연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가슴 속에 묻어둔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하면 된다고. 연기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능을 마음껏 폭발하기만 하면 된다고. 지킬도 그러했던 거 같다. 마음 깊은 곳 증오하던 무능한 권력층을 살해하고 육체적인 사랑을 탐하기도 한다. 선과 악의 분리라는 거창한 명목은 핑계일 뿐 하이드는 그의 악의를 드러내기 위한 가면일 뿐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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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과 하이드, 선과 악, 낮과 밤, 귀족 여식과 술집 여자 등 공연 내내 다양한 양 극단의 두 면이 서로 대비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여주인공 루시가 이 대립을 대하는 태도였다. 선과 악의 공존과 그 중 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노래한다. 루시는 선과 악을 선택의 문제로 바라봤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하비 덴트(투페이스)는 양면이 모두 그림인 동전을 들고 다니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던 그는 불의의 사고를 겪은 후 한쪽 면이 검게 그을린 동전을 하늘로 던지며 선택을 운에 맡긴다. 기존의 하비 덴트에게서 루시가, 변해버린 투페이스에게서 지킬이 겹쳐보였다.



3)


언제부터였을까. 뮤지컬<지킬앤하이드>를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어느 새부터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어렸을 적 어린이문학전집 중 유독 얇은 두께에 끌려 읽었던 원작책의 기억,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지금이순간> 넘버의 가사와 멜로디, 좋아하는 배우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 그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이라는 명성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까닭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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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차오르는 흥분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선과 악의 분리와 정신질환 치료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등의 이야기 측면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조금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완벽했다. 홍광호 배우와 윤공주 배우는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모든 배우의 똑 부러지는 발성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허투로 들을 넘버는 없었고 연출은 깔끔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앙상블이었다. 대부분의 뮤지컬에선 단순한 엑스트라 정도로 소비되는 느낌이었는데 <지킬앤하이드>에서는 <Facade>나 <Murder, Murder>와 같은 주옥같은 넘버는 물론이고 주연들이 노래를 부르는 뒷공간에서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줬다.

다시 시작되는 신화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멋진 쇼였다.


[정영동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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