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상의 눈물 [도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세 개의 이야기
글 입력 2018.12.1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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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된 '우상의 눈물'. 이 책은 우상의 눈물을 포함하여 전상국 작가가 직접 엄선한 9개의 단편을 담고 있다. 9개의 이야기가 하나 같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인간 내면에 숨겨진 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내 자신의 실체가 벗겨지는 것마냥 불편함을 느끼다가도, 어느새 작가만의 개성이 듬뿍 담긴 문체에 빠져들게 된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세 개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플라나리아 (2002)



사실 이 이야기는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냥 책을 덮어버릴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소재 자체도 독특할 뿐더러 난해하고, 어딘가 불쾌하기까지 했다. 도저히 술술 읽히지가 않는 이야기였다. 환상적 기법으로 쓰인 '플라나리아'는 이 글은 줄거리를 나열하지도, 시간순으로 진행되지도, 장소가 일정하지도 않다. 그래서 다 읽은 지금도 내가 이 책을 잘 이해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낀 그대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어느 날 내가 사라져도 놀라지 말아요. 때가 되면 떠날거니까."



과학교사인 주인공은 플라나리아를 연구하는 것에 집착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절벽 아래서 죽어가던 여자를 데려와 동거를 시작하는데,  그녀가 어느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는 사라져버린 그녀를 떠올리며 그녀가 언젠가 했던때가 되면 떠날거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실험 중 소리소문 없이 증발해버렸던 플라나리아를 떠올리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 마디로 플라나리아의 특성을 남녀 사이의 관계에 빗댄 소설이다.



"플라나리아, 그거 음성 주광성이잖아. 그 상황에서 햇빛을 피하는 방법이 달리 뭐 있겠어. 그냥 녹아버리는 수밖에."



그는 플라나리아가 사라졌던 사건처럼 마치 그녀가 '증발'이라도 해 버리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라져버린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나 상실감을 떠올리며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을 수록 주인공이 무서워졌다. 여자를 향한 남자의 사랑은 애정이라기보단 집착이었으며, 그 집착은 특히나 그녀의 몸에 대한 집착이 컸다. 그는 그녀와 애정어린 대화를 나누지도, 서로에 대해 크게 궁금해 하지도 않는 관계를 유지했다. 정신적 교감 따위는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주인공 혼자만의 독단적인 생각이 이어질 뿐이었다.

여자가 정말 스스로 도망친건지, 납치라도 당한건지, 동료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이 안 되는 ' 네가 죽였잖아'처럼 주인공이 죽인건지.. 읽는 내내 혼란을 느꼈다. 마지막에 여자와 재회를 하지만 정말 그 여자가 맞는 건지, 여자는 정말 남자를 기억하지 못 하는지 등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아버렸다. 줄곧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던 것과는 달리 에필로그는 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다시 재회한 남자를 향한 자조어린 비웃음을 가득 담아서.

사실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다. 다만 교사라는 직업이 전해주는 도덕적인 이미지로 철저히 가리고 있던 남자의 위선적인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죽어가는 여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남자가 처음 느낀 감정은 욕정이었다. 벌거벗은 하체를 보며 느낀 욕정. 이 이야기에는 열 세살 난 제자와의 성관계 이야기가 '갑자기' 등장한다. 전개와 전혀 관계없이, 정말 뜬금없이 등장한 이 부분을 통해서 여자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던, 욕정의 대상으로 여기던 남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상의 눈물 (1980)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난 문제아 중에 문제아 '기표' , 그리고 그러한 기표에게 엄청난 신체적 학대를 당하고도 기표를 미워하지 않는 '유대'. 선생의 말에 아랑곳 않고, 항상 무성한 소문에 둘러쌓여 있으며 반 전체를 군림하는 기표는 유대에게 두려움보다도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어쩌면 자기만의 독단적인 판단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많은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처럼 비춰졌던 것 같기도 하다.



"무서웠다. 어른들의 음흉스러움.
알면서도 모른 체
시치미를 뗀 그 저의는 무엇인가."


유대가 기표에게 학대 당했다는 사실을 담임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리려 하지 않았다. 왜일까? 아직 유대가 자신에게 온전히 호의적이지 않다는 걸 느끼니까? 그걸 기표의 약점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얼마 후 반장 또한 기표에게 당하게 된다. 반장은 끝까지 누구에게 당했는지 밝히지 않지만 누가 범인인지는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은 모두에게 알려져서 반장은 일약 스타가 되어버린다. 반 학우를 위해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 했다는 명목으로. 유대는 직감한다. 반장이 일부러 학대를 당하길 원했다는 것을... 담임 또한 이미 알고 있었을 터. 그의 머리 속에서 철저히 계산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반장이 유대를 비롯한 상위권 학생들을 은밀히 불러서 기표에게 컨닝페이퍼를 만들어주자고 제안한다.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질 것이라 하며 아이들을 설득한다. 하지만 결국 시험 당일 컨닝페이퍼를 받고 분노한 기표로 인해 들통이 나 버리고, 반장을 선두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임을 고하며 이 사건은 '학우를 향한 우정어린 배려'로 미화된다. 유대는 이 또한 담임이 반장을 불러들여서 시킨, 모두 계산된 행동임을 직감하게 된다.



"신은 악마를 결코 영원히 추방하지 않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에 그것을 이용할 뿐이야."



기표를 변화시키겠다는 명목으로 담임과 반장은 반 아이들 앞에서 기표의 가정사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들은 그간 기표가 문제를 일으켰던 것에 대해서 모든 것이 가난으로 인해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포장한다. 그리고 기표를 향한 경제적 도움을 제안하며 반아이들로부터 영웅이 된다.

그 후로 기표는 급격하게 말 수가 줄고, 학교도 꼬박 꼬박 나왔으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기표와 반 학우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토대로 한 영화가 계획되기에 이른다. 그런데 영화 사전미팅 바로 전날부터 기표는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기표의 집에서 발견된, 자신의 여동생을 향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담임이 자신을 이용해서 자신의 명예를 세우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배려라는 이름하에 행해지는 '정신적 폭력'을 견디지 못 하고 도망쳐 버린다.

명예에 눈이 먼 위선적인 어른의 모습을 가감없이 꼬집어낸 이야기. 신체적 폭력을 일삼는 아이를 정신적 폭력으로 다스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가장 여운이 남는 이야기.




우리들의 날개 (1988)



뜻하지 않은 기쁨 뒤에는 으레 그 기쁨이 무언가에 의해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위구심이 일게 마련이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게 마련이고 드디어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 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처음의 그 기쁨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이기 예사다.

여자아이는 자손으로 인정하지 않던 그 시절, 이미 남자 아이가 있던 집안에 또 다른 남자아이 '두호'가 태어나는 경사가 생긴다. 하지만 두호는 부모님에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두호의 할머니, 그리고 두표의 엄마가 찾던 용하다는 점집에서 두표를 불길한 존재라 말했기 때문이었다. 두호의 존재가 두표의 아버지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쉽게 말해 두호로 인해 두표의 아빠가 죽게 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두호가 태어난 후 아빠에게는 불길한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죽게 만들고, 다리 한 쪽을 쓸 수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하는 등 계속해서 사고를 낸다. 이런 사건이 계속될수록 엄마는 병적으로 두호를 두려워한다. 점쟁이의 말이라 믿지 않던 아빠까지도 두표를 멀리하게 된다.



"두호가 죽은 뒤, 마음 덜 괴려우려고 그렇게들 열심이라 그 얘기군요."



두호의 형, '나'는 어느날부터인가 두호가 혼자 숨어서 뭔가를 먹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집안 사정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도 발견한다. 부모님은 언제 두호를 멀리했냐는 듯이 두호에게 음식이며 장난감을 제공하고, 두호를 사랑으로 감싼다. 나는 질투 이상의 이상함을 느끼게 되는데, 두호가 점점 말라가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고모를 찾아가서 두호를 둘러싼 비밀을 아는 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하고, 점쟁이로부터 두호가 얼마 못 살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는 슬픔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집안의 화는 이제 없겠구나 하는 안도감... 두호가 죽은 뒤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두호를 그렇게도 아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았다. 뱃속 깊은 데서 위로 뿌듯하게 치밀어 오르는 어떤 힘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날개 꺾인 이 어린 새의 어깻죽지에 새살이 돋을 때까지 내가 그의 날개가 되어 퍼더거여 주리라, 그런 마음 다짐이 어금니에 씹힌 때문이다."



어느 날, 나 또한 두호를 멀리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 두호의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표정이 되려 두려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나는 한 밤 중에 두호를 산기슭에 버리고 올 계획을 세우고, 산에서 도망치다가 끝내 다시 두호를 찾아 낸다. 그리고 자신을 꼭 껴안는 동생 두호를 보며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날개 꺾인 어린 새 두호의 날개가 되어 기꺼이 보호해 주겠다는 의지와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두호 아버지의 사고가 정말 두호로 인한 것이었을까. 점쟁이의 말에 '두호가 곧 죽을 운명이구나'하고 죽음만을 예견하지 않았더라면, 자꾸만 말라가는 두호를 단 한 번이라도병원에 데려가 보았더라면 두호는 무사히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모든 비극이 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불러낸 결과는 아니었을까. 점괘에 대한 광적인 맹신이 불러오는 비극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준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두호가 불쌍하고 안타까웠던 이야기.




인간은 과연 도덕적인 존재일까.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서 풀어내는 하나 같이 파격적인 소재가 흥미로웠다. 거기다 작가의 개성 있는 문체로 인해 그러한 충격이 배가 되었다. 아홉개의 이야기 모두 그 충격에 끝에서 인간 내면의 숨기고픈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언젠가 한 번쯤 마주해야 할 진실임에 분명하다.



[유다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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