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미도 인내다 [문화 전반]

유행 다 지난 컬러링북 체험기
글 입력 2018.12.1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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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찔러보는 것을 제일 잘합니다. 덕분인지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해봤습니다. 새로운 취미 만들기가 취미라고 할까요. 재작년엔 컬러링북이 한창 유행할 때라 대형 서점에 가서 1,000피스짜리 퍼즐과 컬러링북을 샀습니다. 충동구매였던 만큼 금방 기억 속에서 잊혀져버리고 말았죠. 퍼즐은 몇 주 걸려 완성시켰지만 컬러링북은 함께 산 파버 카스텔 색연필과 함께 서랍 속에 깊이 잠들고 말았습니다. 어젯밤, 뭔가 센치해져 가만히 방 안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연 서랍 속에서 다시 발견한 컬러링북은 먼지 하나 없이 재작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안티-컬러링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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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무늬 표지의 컬러링북 소제목은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었습니다. 이렇게 목적이 뚜렷한 책도 오랜만이었습니다. 사실 컬러링북 자체가 집중해서 색칠공부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리라고 만든 책이니 당연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SNS에 ‘집순이 취미 추천’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던 취미기도 했죠. 저는 안티-스트레스와 시간 때우기라는 두 가지 효능이 얼마나 될지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작은 부분까지 색칠해야 했고, 집중해서 세세하게 색칠하지 않으면 통일성을 찾아볼 수 없는 엉망진창 그림이 되었습니다. 눈이 빠질 정도로 집중해서 열심히 색칠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있었습니다. 색칠하느라 구부렸던 목이 뻐근하게 아파왔습니다. 일단 시간 때우기라는 목적은 성공인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로 스트레스가 풀렸느냐, 하면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빨리 그림을 완성하고 싶긴 한데 색칠할 부분은 많고, 뭔가 색은 맘에 안 들고, 전체적인 색 배합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이 그림은 끝낸다는 생각으로 이 색연필 저 색연필을 굴려가며 분노의 컬러링을 했습니다. ‘인내심 기르기’라는 숨겨진 세 번째 효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성질 급한 저는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의 안티가 되어버렸습니다.

 



동경의 프레디 머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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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아닐까요? 작가는 글로, 화가는 그림으로, 가수는 노래로, 행위예술가는 행위로 자신의 욕구를 표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체능보다 국영수 위주의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저는 예체능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피아노 학원이나 그림 학원도 길어야 3개월이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대학생이 된 후 항상 예체능에 대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었을까요?


최근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며(무려 3번) 작곡을 진지하게 배워보고 싶어 작곡 프로그램을 알아보기까지 했습니다. 가끔 답답하고 터질 것 같은 심정을 노래로 표현하면 얼마나 짜릿할까 생각하기도 했죠. 학원비가 너무 비싸서 일단 미뤄놨지만요.

 

컬러링북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SNS에 자신이 한 컬러링을 자랑하는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색칠만 한 것이 아니라 음영까지 넣고 같은 색으로 명도와 채도까지 조절한 정말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죠. 컬러링북 입문의 입문자였던 저는 컬러링북을 그런 식으로도 쓸 수 있다는 걸 애초에 몰랐습니다. 사실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처럼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열심히 흰 면에 색을 칠하며 제가 했던 생각은 ‘보라색을 중심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펼쳐봐야지’가 아니라 ‘보라색 또 어디에 칠해야하지? 한 번에 다 칠해버려야 되는데’였으니까요.




인내가 달아야 열매도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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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이야기 할 때 지겹게도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바로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한 번씩 창작의 고통을 겪어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개학 바로 전 날, 우리의 최초의 창작물이 일기장에 펼쳐졌죠. 하지만 예술에서 이야기하는 창작의 고통은 그 정도와 범위가 다릅니다. 일단 영감을 받아야 하고, 무엇을 만들어낼지 생각해야 하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해야 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하는데 또 정답은 없습니다. 예술가들 중에 미치광이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그 고통을 견뎌야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하는데, 글쎄요. 인내가 달고 열매도 달 수는 없는 걸까요? 창작의 고통을 꼭 고통으로 느껴야 할까요? 꼭 하기 싫은 부분을 참으면서 해내야 명작이 탄생하나요? 기다리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저는 괜히 이렇게 시비를 걸고 싶었습니다.

 


어쨌든 시간 때우기로 시작한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은 그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다시 서랍 속으로 천천히 사그라져갔습니다. Ever after...



[김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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