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빛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썬샤인의 전사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再生) 할 수 없다”-단재 신채호
글 입력 2018.12.0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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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국사를 다시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다시'라는 말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학생 시절의 나는 필수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능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국사'와 '근현대사' 과목을 공부하지 않았다. 공부한 적도 없었다. 한 번은 근현대사 과목에서 19점을 맞은 시험지를 펼쳐놓고 웃기다며 친구들과 깔깔댄 적도 있었다. 어쩌다 잘 맞은 친구를 보면 그 시간에 국영수를 더 하라며 우스갯소리도 늘어놓았다.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과목에 집중하라고.


역사를 다룬 영화를 보면 애국심이 불타올랐지만 영화관을 벗어나며 불길은 쉽게 사그라들었고, 역사 논란으로 논란이 되는 아이돌을 보며 몇 차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잠깐이었다. 어떻게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고, 어떤 왕들이 조선을 통치했고, 일제 강점기 때 누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지를 모른다고 해서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좀 모른다고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나를 똑똑하다고 말했다. 영어를 잘하니까, 책을 많이 읽으니까, 대학에 잘 갔으니까 다들 나더러 똑똑하다고 했다.


그러다 한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에서 시작됐다. TV에서 최태성 선생님의 강의를 본 것이다. 독립투사들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 강의를 찾아봤다. 무료라길래 호기심이 생겼다. 그냥 1강만 들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강의를 클릭했고, 이내 커다란 감정이 나를 덮쳤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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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실을 알고 그 사실들을 암기해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공부하며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함이라고. 이미 시대를 앞서 살다간 사람들과 대화하며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


우리가 배우게 될 역사 속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있다. 각 시대는 저마다의 과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싸워왔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결과물을 꿈꾸면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선조들이 싸워서 이룩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100년  뒤 후손들은 역사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게 될 것이고, 우리가 직면한 과제가 있었다고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 나는 이 시대의 과제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우게 될 사실들은 후에 점점 잊힐 수 있지만, 역사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남긴 고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게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다. 그때 비로소 역사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최태성 선생님의 열띤 강의를 들은 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잊어선 안 되는 것들을 잊고 살던 내가, 그런 와중에도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내가, 19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스레 펼치던 내가 부끄러웠다. '역사' 같은 건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생각하던 나 자신이 미친 듯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난 한국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썬샤인의 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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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게 될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은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작가 김은성은 세월호를 통해 이 이야기를 구성하게 되었다고 밝히며, '세월호를 시작점으로 삼되 너무 직접적으로 다루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잊어선 안 되는 이야기들 ㅡ 한국 전쟁, 제주 4.3 사건, 세월호 등 <썬샤인의 전사들>은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갖고 있는 비극적 사건들을 통해 슬픔, 상실, 죄책감을 관객과 직면시킨다.



시놉시스


인기 소설가 한승우는 3년 전 일어난 사고로 아내와 어린 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절필한다. 그를 쫓아다니는 의문의 상자를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꿈에 나타난 봄이의 부탁으로 어렵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년병 선호의 수첩이 흘러간 여정이 승우의 소설을 통해 펼쳐진다. 4.3사건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카투사가 되어 한국전쟁에 참전 중인 선호, 제주도의 동굴 속에 잠든 꼬마해녀 명이, 나무상자에 갇혀버린 전쟁 고아 순이, 화가가 꿈이었던 조선족 중공군 호룡, 만주 위안소의 식모 막이, 시를 쓰는 의대생에서 인민군 군의관이 된 시자. 수첩의 여정이 끝에 다다르면서 승우는 또 한 명의 상자 속에 갇힌 이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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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말해주듯 이 연극은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를 작품 속에 녹여내고 있다. 1940년대부터 2020년까지, 비극의 시간 속에 갇힌 아이들을 그려내며 <썬샤인의 전사들>은 우리에게 꿈꾸는 사람들, 그 꿈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나에게 이 연극이 어떤 의미로 와닿게 될까. <썬샤인의 전사들>의 원래 제목은 `작가들`이었지만 너무 평범하게 느껴져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김은성 작가는 "작가들의 다른 이름이 `썬샤인의 전사들`인 것 같았다. 어둡고 그늘지고 고통스러운 곳에서도 밝은 세계를 꿈꾸고, 그 세계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라고 말을 했는데, 이는 나한테 다시 최태성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꿈이 있던 사람들. 그 꿈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

햄릿의 재창작극 <함익>으로 잘 알려진 김은성 작가의 순수 창작극인 이 <썬샤인의 전사들>은 이미 2016년 초연 당시 평론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제10회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2015년 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최고은이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였다는 말에 더욱 기대가 된다. 연극은 2018. 12. 8(토) - 30(일) CKL 스테이지에서 평일 19시 30분 / 토, 일, 공휴일 16시 (월 공연 없음)에 만나볼 수 있다. 티켓 정가는 3만 원으로 인터파크, 대학로 티켓닷컴에서 예매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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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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